매거진 Live Report

문화는 성적순이 아니라고요.

패스코드(PassCode) 내한공연 후기

by 황선업


메탈과 아이돌, 그리고 일본의 교집합이라면 아마 많이들 베비메탈(Babymetal)을 떠올릴 것이다. 찢어질 듯한 디스토션과 광폭한 드러밍, 이와 함께 펼쳐지는 멤버들의 퍼포먼스. 일본의 아이돌 뮤직은 본래부터 어느 정도 록 사운드의 영향권안에 있던 와중에, 요 몇년간 페스티벌을 위시한 록과 아이돌 신의 동반성장으로 그 결합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록 페스티벌에 덴파구미잉크나 모모이로크로버Z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 나오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으며, 리얼세션과 동반에 무대를 펼치는 것은 더더욱 흔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10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내한공연을 펼친 아이돌 그룹 패스코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그룹이다. 라우드 록과 EDM, 칩튠, 사우팅과 스크리밍을 접목한 음악과 마디마디가 끊어질 듯한 댄스의 결합을 무기로, 공연에서 보여주는 극한의 엔터테인먼트 성을 통해 점점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 금번 공연은 9월부터 3개월간 19공연으로 진행되는 < Taking you out Tonight! Tour 2018 > 일환으로, 본인들로서도 첫 해외공연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공연장인 홍대 웨스트브릿지 홀은 공연 전부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팬들로 인해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동창회 같았다고나 할까. 항상 카페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활동하던 동지를 처음으로 만나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일은 비주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순간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좋아해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임과 동시에 하나의 삶의 이벤트 같은 것일 터. 일본에서 원정 온 매니아들과 함께 어우러져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 역시도 음지에서 오랜 시간동안 일본음악 마니아 생활을 해왔고 오프라인에서의 기쁨과 흥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오프닝을 장식한 메스그램의 무대는 꽤 놀라웠다. 사실 사전정보 없이 갔는데, 잘 매만져진 믹스처 록과 각 멤버들의 뚜렷한 개성,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지영의 가창력이 한데 어우러져 현장의 반응을 제대로 이끌어내고 있었다. 오랜만의 공연이라고 했는데,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본 공연 전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을 120% 해내고 있었다. 4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었음에도 관객들은 그들의 무대에 성원을 보내주었고, 본 공연 만큼이나 열띤 호응이 이어졌다. 좋은 밴드는 배정시간에 관계없이 그 매력이 드러나는데, 정말 단순한 시간때우기 용이 아닌 합동공연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퀄리티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충분히 표출하고 있었다.


이어 잠시 준비시간을 거쳐 메인공연이 시작되었다. 막이 올라가고, 첫 곡으로 간택된 것은 최근 선보인 싱글곡 'Tonight'. 초반의 보컬에 이어 터져 나오는 이마다 유나의 전매특허 샤우팅. 헤드라이너의 등장을 알리는 포효와 함께 관객들 역시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공연 순간순간, 몸짓 하나하나에 환호를 보냈고 생각지 못한 환대에 멤버들 역시 필사적인 퍼포먼스로 이에 대한 감사의 신호를 선사했다.


러닝타임은 전반적으로 타이트하게 이어졌고, 기본적으로 3~4곡을 연달아 선사하며 높은 텐션을 공연 내내 유지해갔다. 격한 안무에 지칠 법도 하건만, 그런 기색 없이 백댄서 없이도 무대를 꽉 채우며 라이브까지 해내는 멤버들의 모습은 프로의 의미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이에 보는 이들도 최선을 다해 놀고 즐기며 좀처럼 오지 않을 시간을 가슴 속에 새겨놓고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다 각자가 아닌, 밴드와 아티스트, 관객이 모두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그룹멤버들부터가 세션들은 함께 무대에 서는 또다른 멤버로 여기고 있었고, 관객들 역시 세션 소개 시간에 각 연주자들의 행동에 리액션을 보내며 그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은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무대 중간중간 MC 시간에는 "우리 예뻐? 귀여워?" 같은 준비해 온 한국어로 공연장을 찾은 이들을 배려했고, 대부분의 멘트를 맡은 미나미 나오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고 나니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며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One step beyond', 'Ray' 등 라이브 정석 곡들이 세트리스트를 장식했고(참고로 패스코드는 같은 투어라도 일자별 세트리스트의 차이가 꽤 있는 편), 공연 중간중간 아이컨택과 클랩 유도 등으로 관객들을 조련하는 모습이 역시 아이돌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9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곡 'Miss Unlimited'로 열기를 최고조로 만든 후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첫번째 날의 공연은 마무리되. 공연장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군데군데 서려있었다.


일본 음악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나라보다 딥한 결과물을 내놓는 나라다. 다시 말하면, 어느 취향을 가진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언제든 만나볼 수 있는, 이로 인해 삶의 행복을 구가하기 용이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패스코드 역시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신들을 보러온 이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고 있었다.


문화수준이라는 것을 꼭 해외에서의 성과와 성적으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결국 문화라는 것은, 한류라던가 빌보드 성적에 앞서, 소외받는 사람 없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절대다수의 행복을 채워주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팀의 개성, 그리고 그것을 무대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와 이를 통해 발하여지는 팀의 매력은 그러한 명제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었다. 공연장을 찾은 모두와 함께 만들어간 축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미나미짱, 팬이 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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