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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Jul 10. 2017

아이돌이 될 수 없는 곳에서의 그녀는.

올해 초 였던가.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한 여성 솔로 래퍼의 데뷔작이 꽤나 크게 홍보가 되고 있었다. 주체는 일본의 거물 레이블 빅터. 이름은 챤미나(ちゃんみな). 음, 챠..챤미나? 일본 이름 같지 않은데. - 사실 이때 알아챘어야 했다. - 호기심에 앨범을 들어봤다. 약간은 어수선했다. 공격적인 래핑은 분명 인상적이었으나, 아직은 여러 레퍼런스에 몸을 맞춰보는 과정인 듯했다. 그래도 빅터발 신인의 첫 앨범이니 누구 유명한 프로듀서 한명쯤 붙일만도 했을텐데. 소속되어 있는 레이블이나 크루같은 것도 없는 건가. 라는 생각 잠시. 뭐, 한국이었다면 빼박 한 3~4년 연습생하다가 아이돌 그룹 내 랩 담당 멤버로 데뷔하겠네. 라는 생각 꽤 오래. 그의 이름 '챤미나'가 '장미나전미나'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고 그가 원래 한국에서의 활동을 목표로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러고 나서 몇 주가 지난 후였다.   


그녀의 시작도 오디션이긴 했다.

초등학교 시절 빅뱅의 '하루하루' 뮤직비디오를 보고 감동을 받아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는 그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하프 코리안이다. --일에서 각각 거주한 이력이 있는 만큼 3 국어에 능하다는 것이 강점. 원래는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 비행기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친한 친구가 가지 말라고 잡아서라는 극히 10대다운 이유로 일본에서의 활동을 다짐했단다. 작년 4 일본판 < 고등래퍼 > < BAZOOKA!!! 고교생 RAP 선수권 > 출연, 파워풀한  스타일과 개성있는 스타일링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더니 1년만에 스스로 모든 곡의 작사를 소화한 데뷔작 < 未成年(미성년) > 발표,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 그녀가 한국에 왔다면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 가만 생각해봤다. 어느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거쳐 걸그룹 멤버로 데뷔하는 것이 첫째. < 언프리티 랩스타 >와 같은 예능에서 먼저 소비된 후 싱글 한 곡씩 던지며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래퍼가 둘째. 어느 길로 가건 확실한 것은 그녀의 이름 앞에 '회사명'이 호처럼 붙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장미나'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한 앨범을 데뷔작으로 내걸 수 있었을까. 나아가 지금보다 더 좋은 음악활동, 좋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강렬한 사운드와 현란한 비주얼의 조화. 괜찮은 래퍼가 등장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안지영은 한 인터뷰에서 TV엔 걸그룹만 나와 당연히 가수를 하려면 걸그룹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아이돌을 꿈꿨다고 말한바 있다. 이처럼 노래를 잘하는 이도 랩을 잘하는 이도 춤을 잘추는 이도 심지어 작사작곡에 능한 이들도 모두가 아이돌신으로 흡수되는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또 하나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면 바로 이름 앞에 소속사나 레이블명이 필수사항처럼 붙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계급처럼 작용해 순식간에 서열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TV 출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것은 < 쇼미더머니 >의 심사위원부터 < 프로듀서 101 >에서 연습생들에게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 속에서 가수의 정체성은 집단의 이미지에 먹히기 마련이고, 가수는 그저 소속사의 일원으로 자리할 뿐이다. 우리는 늘 티비 중심의 음악환경이나 일부 기획사들의 독점을 문제시하지만, 이 과정에서마저 가수 개인은 언급되지 않는다. 방송사-소속사 간 관계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그 중심에 있어야 할 노래하는 이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주체성을 상실해간다.     


이미 이들에게 있어 소속사명은 이름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와 별개로 최유정은 사랑입니다.)


이처럼 국내 대중음악신에 있어 개인의 정체성이 소속사의 이미지로 흡수되는 현상은 TV가 대중문화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뜨기 위해선 예능 한군데라도 뚫어야 하는 것이 소속사의 상황이고, 방송사는 화제성을 고려해 유명 기획사의 이들을 '신인이라도' 우선적으로 섭외한다. 이처럼 성공의 루트가 TV출연으로 일원화되어 버린 지금의 음악 신에 있어서,  마치 대기업에 들어가듯 거대 기획사와 계약, 그 기획사의 이름을 호처럼 사용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것이다.     


꽤 큰 기획사 소속 아이돌이 되는데 성공, 커리어가 쌓인 후 기획사를 나온다고 치자. 그 커다란 간판을 내리는 순간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초라했는지 깨닫게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대기업에 있던 어떤 직장인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 마냥 여기고 있다가, 퇴사 후 결국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그 곳의 시스템 덕분이었고 그곳에 적응한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과 그닥 다를바 없다. KPOP과 한류는 공장라인을 발전시키듯 시스템의 고도화가 곧 고퀄리티의 결과물로 직결되는 산업화를 심화시켰고, 거대자본이 좋은 음악, 상품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소속 가수들은 철저히 그 시스템하에 종속되기를 자처하고, 결국 그 속에서 개인이 할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회사의 이름 없이는 제대로 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감만을 나타내게 될 뿐이다.


SM을 나온 이후 선보인 앨범들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


10대의 나이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상적인 랩으로 주목을 받은 그녀. 반대로 일본의 아이돌 포지션과는 어울리지 않기에 그 길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곳에서,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솔로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여기에는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빅터의 추진력과 음악매체의 다원화, 어떤 장르든 일정 수요를 담보할 수 있는 시장상황 등의 좋은 여건이 전제가 된다. 이처럼 아이돌이 될 수 없는 곳에서의 그녀는, 오로지 '장미나'라는 존재감만으로 원하든 원치 않았던 거친 담금질을 시작한 상태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은 그저 가정일 뿐,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것보다 나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다만 나는 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나라였으면 당연히 아이돌에 도전했을 이가 아이돌이 될 수 없는 곳에서, 그렇기에 어떠한 소속사의 이미지가 가수의 정체성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미치는 곳에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성장해 나가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리얼리티, 오디션,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방송사의 이해타산이 개입된 서사에서만 가요계 스타가 탄생하는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서사가 완전히 배제된 성공이다. 그 또한 그러한 서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뷔과정을 겪었지만, 이후 앞두고 있는 것은 다른 이와의 경쟁이라던가 절실함에 대한 눈물을 통한 공개적인 동정팔이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을 때때로는 버거울지라도 즐겁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비밀스러운 성장이길 바란다. 부디 그녀의 성장을 통해 현 시스템에 균열을 가할 자그마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한국에서도 조만간 멋진 여성 래퍼로 역수입 될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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