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자와 카요코, 그 기묘한 러블리함
처음 ‘ミューズ’(2018)라는 곡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땐,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상이었다. 여러모로 잘 정돈된 프로로서의 실루엣이 우선적으로 다가왔기 때문. 2014년 메이저 데뷔 후 자신만의 보폭으로 서서히 침투해 왔던 그는,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되는 변화무쌍함을 나에게 선사했다. 조금씩 과거로 향하며 새롭게 알게 되는 그의 일면엔 좀처럼 외면할 수 없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고 할까. 나만 알기엔 아까운 매력으로 넘치는, 요시자와 카요코는 그런 아티스트다.
아직 인지도가 그렇게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뮤지션들이 그 독창적인 세계관을 극찬하고 투어 티켓은 가면 갈수록 구하기 힘들어지는 등 정체성 강한 음악을 통해 어느덧 굳건한 팬층을 다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 이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곡은, 일거에 인지도를 올린 바로 이 ‘残ってる’(2017)라는 노래다.
まだあなたが残ってる 体の奥に残ってる
아직 당신이 남아있어 몸 안에 남아있어
ここもここもどこかしこも あなただらけ
여기도 여기도 어딘가에도 당신투성이야
でも忙しい朝が連れて行っちゃうの
하지만 분주한 아침이 데려가 주겠지
いかないでいかないでいかないでいかないで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 마
私まだ昨日を生きていたい
나는 아직도 어제를 살아있고 싶어
친구로부터 “오는 중에 아침에 귀가하는 듯한 여자를 보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써내려간 이 노래는, 전날 연인과 밤을 보내고 새벽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여자의 마음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에 선보였던 ‘ひゅるリメンバー’(2014) 역시 ‘감기에 걸린 연인과 키스를 한 다음날 옮은 감기가 그를 떠오르게 한다’는 이야기였음을 떠올려보면, 범상치 않은 사고와 발상이 자아내는 예상밖의 공감대가 그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유년시절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 소학교 3학년 시절 주변과 잘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석, 이후 통신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중학교 졸업식 전 1주일을 빼고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수다나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결국 일반적인 사회에서 배제되고만 그 상황이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되묻게 한 경험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프리스쿨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냐고 묻자) “학교 안 간 사람들끼리의 무언가가 있어요. 학교에 가지 않으면 그것 만으로 자신을 전부 부정해 버리죠. 아이들에게는 학교생활이 자신의 세계의 거의 100%를 차지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이 국민이 아닌 느낌이 들고, 밖을 돌아다니면 안된다라던가 남의 눈에 띄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랄까, 유대관계가 강해진 것 같아요.”
(’14.5.14, Natalie 인터뷰 중)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그에게 있어 학교를 그만둔 직후의 2년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꿈에 나온 마녀를 따라 빗자루를 타는 연습을 하고 마녀와 같은 마음으로 생활하는 ‘마녀수행’ 기간이었기 때문. 부모님에게 많은 폐를 끼쳤던 탓에 지금은 그때가 부끄럽다 언급하곤 하지만, 결국 그의 데뷔를 장식한 ‘마녀’라는 캐릭터 구축은 이 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이후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중학교 졸업식만은 참가하자라는 생각으로 1주일간의 예행연습에 참석 했지만, 본인만이 공석인 많은 추억들에 파묻혀 괴로움 만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자신을 구원해 중 영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바로 삼보마스터였다.
“전차남이 유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世界はそれを愛と呼ぶんだぜ’를 들었어요, “너를 위해 노래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라는 가사가 왠지 나 자신을 향해 노래하는 것 같아서. (중략) 삼보마스터를 마음의 연인으로 믿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통신제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음악을 하고 싶어서 경음부에 들어갔죠.
(’14.5.14, Natalie 인터뷰 중)
순간순간의 대응이 서툴렀던 그에게 음악은 안성맞춤이었다. 즉흥적인 발화 대신 완성된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실패했던 예전의 마녀수행과는 달리 이상적인 존재로의 변신욕구 또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렇게 음악에 몰두했던 그는 2010년 야마하 주최의 < The 4th Music Revolution > 오디션에서 ‘らりるれりん’을 통해 그랑프리와 오디언스 상을 동시 수상하며 프로로 전향하게 된다. 제도권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언의 불안감에 압박받던 그는, 결국 독특한 자의식과 개성을 잃지 않은 유일무이의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의 노래에는 수많은 타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ブルーベリーシガレット’에서는 일진을 좋아하게 된 얌전하고 수줍음 많은 여학생이, ‘キルキルキルミ’에서는 자신이 잘못했을 때 앞머리를 자름으로서 자신에게 벌을 주는 사춘기 소녀가, ‘地獄タクシー’에서는 연인을 살해하고 도망가는 택시 안에서 몇번이고 나는 지옥에 갈 거라고 이야기하는 여인 등 각각의 인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앞서 이야기했든 그에게 있어 노래는 ‘누군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구현해주는 수단. 각 노래마다 인물의 연령, 상황, 직업 등의 설정을 구체적으로 정하며 곡을 써나간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을 잘라파는 예풍이라면, 만든 곡이 모두 그 당시 저의 빈 껍데기가 된다는 거잖아요. (과거와 현재의) 차가 확실히 벌어지니까. ‘아, 저 노래는 이제 부를 수 없겠네’ 같은 느낌이 될 것 같아요.”(’17.10.4, Billboard JAPAN 인터뷰 중)
그는 이처럼 노래 속 이야기를 실제 경험으로 메우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남성 싱어송라이터들에 비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사생활을 파는 가수’로 치우쳐 보는 현 세태를 꼬집으며 말이다. “이거 본인 경험이죠?” 하며 대중들이 노래 속 가사를 아티스트의 실제 경험으로 착각하는 순간, 그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호칭이 족쇄가 되어 버린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자신은 철저히 작가로 머물고 싶기 때문에 노래 속 화자를 자신으로 일치시키는 것엔 거부감이 있으며, 대신 픽션 안에 논픽션을 삽입하는 정도로 충분한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물론 곡에 따라 실제 자신이 투영된 정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 지금의 마음가짐을 아로새긴 ‘ストキン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게 된 자신을 돌아 보는 ‘泣き虫ジュゴン’ 등 초기 작품은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넘버들. 초기 작품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유년시절을 졸업한다’라는 전제하에 작업된 결과물인지라 그런 경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점점 실제 자신과 거리를 벌린 이야기꾼으로서의 활약이 돋보이는 최근의 작품들을 주로 접해왔다면, 이러한 초창기 발표곡들의 천진난만하면서 엉뚱하고, 약간은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더더욱 빠져들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상식 밖의 사고와 생각들이 무시받고 폄하당하는 시대. 그 안에서 자신을 깎아 세상에 적응하는 대신 본인만의 세계를 굳건히 지켜온 한 뮤지션의 고군분투는 분명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평범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을 지나, 끝끝내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잊고 있었던 섬세한 감정과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을 선사하는 기묘한 러블리함의 요시자와 카요코. 꿈은 꿈에서 깨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녀수행을 많은 이들과 함께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서 뭔가를 받는 것으로 밖에 소원을 이룰 수 없으니까. 저는 마녀에게 끌려가는 꿈을 꾸고 나서, 줄곧 마녀수행을 함으로써 마녀의 힘으로 자신을 바꾸길 바랐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날 때, 처음 후천적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손으로 잡은 능력이나 아름다움 같은 바라왔던 것들. 저에게는 그것이 곡을 만드는 일이지만, 그것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보다 귀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스스로 잡아낼 수 있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15.3.4, Natalie 인터뷰 중)
(다음주에는 주요 트랙들을 통해 음악세계를 엿보는 요시자와 카요코 Playlist가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