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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Feb 13. 2019

아이돌인 당신, 행복하십니까.

아라시의 활동중단으로 살펴 본, 아이돌이라는 역할극의 단면

"저희 아라시는 2020년 12월 31일을 기해 그룹으로서의 활동을 휴지(休止)합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3년 전 스맙(SMAP)의 해산소식이 일본 열도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지만, 일말의 안도감이 돌았던 것은 아라시가 그 자리를 어느 정도 대신해주리라 믿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폭탄발언으로 국민 아이돌의 자리는 순식간에 공석이 될 위기에 처했고, 하이틴 스타의 산실이던 쟈니즈의 미래는 미궁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더불어 데뷔 20주년을 맞아 50회의 돔 공연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던 팬들은, 졸지에 얼마만큼의 기간이 될지 알 수 없는 고별투어를 앞둔 상황에 처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일자와 장소를 잘 보도록 하자. 당신이 일본여행을 피해야 할 날짜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년에 걸친 쟈니즈의 행보는 극히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토키오, 뉴스, 캇툰 등 주요 그룹의 멤버들의 사건사고소식이 줄을 이었고 일부는 탈퇴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이별이긴 하지만 소속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타키앤츠바사도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젊은 세대 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섹시존의 마츠시마 소우와 최근 데뷔해 좋은 기세를 선보이던 킹 앤 프린스의 이와하시 겡키가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 이처럼 쟈니즈는 2016년 스맙(SMAP)의 이후 그야말로 거듭되는 악재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라시의 활동휴지 발표가 방점을 찍은 셈. 이번 일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오노 사토시는 “이 세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에도 흥미가 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게 없다. 일단은 휴식을 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지의 반응은 어땠을까. 초반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더불어 ‘무책임하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동안 쉼 없이 활동해 온 그룹을 이해하고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다. 그만큼 대중도 그들에게 빚진 것이 많을 것이기에.

아나운서 아오키 겐타는 트위터로 "무책임이란 말이 나왔던 것이 분하다"라고 언급했다가 많은 이들의 비난으로 인해 사과했던 일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일련의 사건들이 멤버-소속사간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거쳐 상호 합의하에 이뤄진 점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스맙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쟈니즈의 태도다. 오랫동안 헌신해 온 이들과의 매듭을 아름답게 짓지 못했던 3년 전과 달리, 아라시만큼은 의견을 수용해가며 함께 활동중단이라는 대안에 손을 맞잡았다는 사실. 여기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어느 정도 시대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내부의 자각과 동시에, 스맙 해체 과정에서 불거진 소속사의 이미지 악화에 기름을 부을 수 없다는 의견이 더해졌을 것이다. 해체가 아닌 활동휴지 그리고 2년이라는 유예기간, 팬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남겨 놓음으로서 최소한의 완충시설은 구비해 놓은 셈이다.

당시엔 기무라 외의 멤버에 대한 공개처형이라는 의견도 분분했던 사과장면

그렇다고 사무소의 운영방식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 쟈니즈의 많은 그룹들이 개인시간이 거의 없는 빽빽한 스케줄을 길게는 2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으며, 기자들은 언제나 그의 사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건수를 찾는다. 직업 특성상 나이를 먹어도 연애나 결혼에 대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콘서트 직전에 기자들을 모아 놓고 마치 죽을 죄를 진 것처럼 사죄를 하는 등 공개처형 시간이 기다린다.      


일본의 연예 평론가 미스기 타케시(三杉 武)는 “쟈니스 연예인은 보수본류의 아이돌 노선, 배우노선, MC노선으로 나뉘어져 있다. 배우 노선은 팬이 좀 준다고 한들 타격이 비교적 적어 결혼이 허용되기 쉽지만, 보수 본류의 아이돌이 되면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인정 받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연간 3000억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이기에 소속사는 열애에 의한 손실을 묵과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들에 대한 열애금지 조항은 30살을 먹든 40살을 먹든 불문율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인로서의 삶이 그들에게는 가장 요원한 꿈인 것이다.          


아이돌은 활동기간이 길어질 수록 진짜 나를 잃어가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기 마련이다. 벌써 데뷔 20년차가 가까워 오는 아이돌 그룹 퍼퓸의 멤버 카시유카는 음악잡지 < Rockin' on Japan >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나아갈 뿐”이라 언급하며, 내면적인 중재를 통해 혼란을 극복했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그 고뇌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스스로 결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활동 자체에 제동을 걸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이익관계에 얽혀있는 입장이기에 일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한 꿈의 무대이기에 자기 세뇌를 하며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낼 뿐. 그 과정에서 다행히 자신이 하는 일을 행복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해 안 좋은 방향으로 폭발하는 경우를 우리는 다수 목격해 왔다. 아이돌 신의 해묵은 딜레마다.        


아라시의 활동중단은 폭탄이 터지기 전 도화선에 붙어있는 불을 가까스로 끈 것에 가깝고, 여기에는 같은 팀 멤버의 이해와 사무소의 흔치않은 협조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한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다행인 일이라 생각한다. 거대한 수입이 인간성의 천대에 대한 방어기제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아이돌로서의 자신과 실제의 자신의 동기화가 실패했다고 느낀 순간 그는 영리하게도 즉각 브레이크를 밟았고, 다시금 오노 사토시라는 인간을 찾을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는 아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대중들은 연예인이 아닌 ‘인간 오노 사토시’까지는 이해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돌은 언제까지고 아이돌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으이구 쟈니즈 이 인간들아. 아직도 PV 하나를 안 푸냐 ㅠㅠ

2019/02 황선업 (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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