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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Sep 28. 2019

각기 다른 자아, 그에 수반하는 잠재력

King gnu, 험난한 제이팝 신을 돌파해나가는 혁신 집단

설마설마하고 봤던 < Viva la rock >에서의 라이브가 떠오른다. 확성기를 들고 나온 츠네다 다이키에 초장부터 압도당했던 그 기억이. ‘Slumberland’가 끝나고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온 말은 다름 아닌 “대박이다”라는 네 글자. 8곡, 30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망주이자 힙한 신인으로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던’ 본인에게 아예 그냥 “의심하기 없기임다”라는 무언의 외침을 들은 셈이었다. 확실히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앞서 소개한 오피셜히게단디즘과 함께 올해 브레이크 한 신인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그룹과의 대면은 이렇듯 굉장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내가 봤던 셋리와 동일. 언제 잘릴진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주간 제이팝을 운영하다가 듣게 된 - 이걸 생각하면 주간 제이팝을 다시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 ‘Flash!!!’라는 곡 덕분이었다. 필 충만한 신시사이저와 코러스 라인, 펑키한 기타 리프가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그와 대비해 후렴구는 확실한 멜로디 라인과 보컬로 일본음악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 모습. 분명 제이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스타일의 곡조였다. 분명 ‘이건 먹히겠다’ 싶은 완성도. 더군다나 시대의 바람도 딱 그들을 받아들이기 좋을 정도로 살랑살랑 불고 있을 때였다. 


‘도쿄 뉴 믹스쳐’. 그들의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힙합, 재즈, 펑크(Funk) 등 자신들에게 필요한 요소들은 제한 없이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팝’이라는 카테고리로 마감질 하는 역량이 발군이기에 붙일 수 있는 신조어 일터. 이는 각 멤버들이 각기 다른 음악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본래 첼로 전공으로 클래식에 정통한 츠네다 다이키, 댄서를 지망함과 동시에 펑크(Funk) 등 블랙뮤직에 관심이 많았던 세키 유우, 재즈 세션으로 활동했던 아라이 카즈키, 이노우에 요스이나 튤립, 오브 코스와 같은 제이팝에 침착해 있었던 이구치 사토루가 모인 팀. 어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싸울 것만 같지만, 이를 극복해 하나의 ‘혼합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에서 흔치 않은 케미를 목격할 수 있다.


그룹의 커리어는 츠네다 다이키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까웠던 서버 빈치(Srv.Vinci)에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지금에 비해 일렉트로니카를 중심으로 보다 전위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시기. 고정멤버 없이 활동을 지속, 현 멤버 체제로 작업한 첫 전국 유통반 < Mad me more softly >(2015)를 통해 앞으로 해 나갈 음악의 초기 모델을 구축했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행보에는 시간이 필요해, 2017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및 US 투어를 마치고 나서야 도쿄 카오틱(Tokyo Chaotic)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의 ‘킹 누’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완수하게 된다. 2017년 5월의 일이다.


잘 들어보면 King gnu의 히트곡에 쓰인 몇몇 프레이즈들이 숨어있다.


개명 후 그 해 7월 바로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전, 3개월 후 킹 누 명의로 첫 작품인 < Tokyo Rendez-Vous >(2017)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으로 빚어낸 획기적인 음악성, 그 와중에도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고픈 욕망을 숨기지 않는 대중적인 면모.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 작품들은 그러한 야욕에 200% 부응하며 그 빛을 발한다. 힙합의 리듬감에 펑키한 기타 리프, 통렬한 선율이 인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는 ‘Vinyl’, 클래식한 피아노 선율의 인트로가 대중음악의 범주를 넘나드는 애수 어린 ‘Mcdonald romance’, 점층적 구성을 통한 반전 블록버스터 ‘破裂’ 등 메이저 이전의 첨예한 감성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앨범이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이들은 대중과 평단 할 것 없이 이들의 행보에 주목했고, 이듬해인 2018년 1월에 열린 단독 공연은 즉시 매진되며 추가 공연이 일찌감치 결정되었다. 이와 함께 활발한 페스티벌 출연을 통해 많은 록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 이어 하반기는 싱글을 연달아 발매. 7월 디지털 싱글 ‘Flash’를, 9월에는 애니메이션 < 바나나 피시 > 엔딩곡으로 타이 업된 ‘Prayer X’를 연달아 선보이며 음악적으로도 더욱 커진 스케일감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 되면 당연히 메이저 레이블 들의 러브 콜이 쇄도하기 마련. 두 번째 앨범 < Sympa >의 릴리스와 함께 소니뮤직 내 아리올라 재팬으로 이적하며 메인스트림으로 입성하였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밴드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노래가 발표된다. 바로 첫 드라마 타이업이기도 했던 ‘白日’가 그것. 슬로우 템포이면서도 역동성이 돋보이는 편곡, 각 소절과 후렴의 전조를 통해 예상치 못한 전개를 빚어내는 구성력, 두 보컬의 합이 빚어내는 시너지. 이 곡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예전 작품들까지 재조명을 받아 다수의 곡이 차트의 상위권을 점유하게 되었다. 피지컬이 아닌, 디지털 음원 발매로 이뤄낸 새 시대의 성공방정식, 그 한 축을 담당하는 뮤지션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는 현상이었다.


본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극대화. 타이업에 아주 걸맞은 곡이었다고 생각.


하반기 들어 첫 작품인 ‘飛行艇(비행정)’ 역시 기세를 이어 고공활강 중. 8비트의 정직하지만 강렬한 비트를 기반으로 록적인 어프로치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세계를 또 한 번 확장시키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장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는 작풍, 제이팝의 기존의 진부함을 걷어내고 그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에센스만을 취한 영리한 프로듀싱. 여기에 스튜디오 앨범과는 또 다른 ‘로킹’함을 보여주는 뛰어난 라이브 퍼포먼스까지. 너무나도 다른 이들이 모여 현 제이팝 신에 제시하는 ‘혁신’. 모두가 집단과 집단 간의 반목 및 견제에만 신경 쓰고 있는 현시대에서, 그 날 선 세력들이 만약 힘을 합쳤을 때 벌어지는 일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결과물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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