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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Jan 05. 2020

레이와 첫 홍백가합전, 어떠셨나요?

제 70회 < 홍백가합전 > 감상기

올해로서 홍백가합전도 벌써 70번째네요. 사실 저도 정보가뭄에 허덕이던 과거에는 홍백가합전이 방영되기만을 기다리고, 가족이나 친척들 눈치를 보며 누가 나오는지 채널을 살짝살짝 돌려봤던 기억이 납니다. 단 몇초였는데도 티비 브라운관에 나오던 일본 가수들이 어찌나 신기하고 반갑던지요. 이마저도 케이블 시대가 도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사실 아직까지도 많은 일본음악 팬들에겐 홍백가합전은 차마 놓을 수 없는 이벤트이긴 합니다. 여러 일음 커뮤니티들이 하나의 주제에 이만큼 북적대는 건 홍백가합전이 유일하니까요. 그럼에도 최근 이 연말행사에 대한 시선들은 하나같이 차가워지던 추세였습니다. 티비를 보지 않는 세대의 도래, 이에 따른 시청률 하락을 극복해보고자 연출이나 여러 기획들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음악은 뒷전이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 인기 척도에 상관없이 방송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용하는 섭외. 점점 홍백에 출연하기를 꺼리는 거물급 아티스트까지. 내외부적으로 여러 난관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지요.

올해의 사회자 4인방
출연진의 순서 및 곡명 리스트.



사실 시청률 하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아직도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홍백으로 한해를 마무리한다’라는 인식이 꽤나 강하게 새겨져있기에 2010년 이후에도 2015년과 2017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해 왔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대폭 하락, 37%대에 머무는 수치를 보이며 다시 한 번 위기론에 봉착했죠. 이에 맞춰 여러 매체들 역시 이 사태에 한마디씩을 보태는 분위기입니다. 대부분 과도한 기획과 메들리 남발로 인해 노래 본연의 감동을 차분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죠.


올해 훅 떨어졌네요.
홍백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들도 여럿 게재되었습니다.

저도 간만에 홍백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했는데요. 음, 역시 너무 난잡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올해 테마는 역시 스포츠. 올해의 럭비 월드컵과 내년의 올림픽이 큰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럭비 국가대표들이 현장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무대로 나와 코멘트를 하며 애국심을 적극 고취했고, 중간중간 럭비 대표팀의 하이라이트나 과거 올림픽 영상, 내년 올림픽에 출전하는 유망주들의 영상을 많은 가수들의 배경무대로 삼았죠. 여기에 과거 NHK 올림픽 주제가로 쓰였던 이키모노가카리의 ‘風が吹いている’나 유즈의 ‘栄光の架け橋’까지 가세하니 이것이 음악이벤트인지 아니면 스포츠 행사의 프로모션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반응해주거나 겁에 질려하거나 모른척하거나
유즈와 이키모노가카리의 추억팔이


자사를 위한 무대 역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우선 NHK 주최의 < 2020 응원송 프로젝트 > 오디션을 거쳐 결성된 푸린(Foorin)이 있네요. 아무래도 주최측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무대였는데, 이들의 노래에 맞춰 모든 출연진들이 억지로 함께 안무를 하는 광경은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불편한 장면이었습니다. 아티스트들의 원샷을 내보내며 리액션을 강요하는 모습은 프로그램의 전통이긴 하지만, 그 아티스트들이 그렇게 호의적인 모습은 아니기에  공연자체에만 집중을 했으면 싶더라고요. 가뜩이나 인별 러닝타임도 짧아졌는데 말이죠.


여기에 현재 NHK에서 방영중인 아침드라마 < スカーレット >의 주제가도 한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주연을 맡고 있는 토다 에리카가 직접 출연해 수퍼플라이를 소개, ‘フレア’를 선보였죠. 물론 워낙 인기가 있기도 했고 가수 본인의 가창력이 워낙 좋은지라 그렇게 불만은 없었지만 NHK였기에 성사된 퍼포먼스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네요. 여기에 2020년 올림픽 주제가로 첫 공개되는 아라시의 ‘カイト’는 막 증축이 끝난 국립경기장에서 스케일 큰 연출로 첫 공개. 자사 홍보 하나는 제대로 한 셈입니다.


쟈니스와 AKB 사단의 푸쉬는 올해도 계속되었습니다. 쟈니스에서는 스노우 맨과 헤이!세이!점프, 키스마이풋투, 킹 앤 프린스와 칸쟈니 에잇에 아라시까지 각자 개인 무대를 배정받았으며 대다수는 쟈니스 주니어를 동반시키는 등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반대편 역시 히나타자카48에 노기자카48, 케야키자카48과 AKB48까지. 이날 출연팀이 40여팀 남짓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두 세력만 해도 20%가 넘는 비율입니다. 이것이 과연 정상일까요. 방송사와 소속사간의 이해관계에 시청자가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쟈니스 주니어도 단독으로 무대를 줄 정도였으니 말 다했..

물론 기억에 남는 무대도 있었습니다. 중계이긴 했지만, 콘서트의 현장감을 멋진 카메라 워크로 담아낸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퍼포먼스가 우선 그랬는데요. ‘HELLO’, ‘虹’, ‘零-ZERO-’ 이렇게 세곡을 빠른 시간에 압축하면서도 오차없는 흐름과 연출로 시청자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습니다. NHK의 콩트프로그램 출연할 당시 캐릭터를 활용한 호시노 겐의 ‘ドラえもん’은 다락방에서의 합주를 모토로 동료들과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후에 건물 옥상에서 ‘same thing’을 추가로 부르긴 했지만, 프로그램의 의도에 맞는 건 확실히 전자였어요.

본인의 친근한 이미지를 잘 살렸던 퍼포먼스

퍼퓸의 퍼포먼스도 좋았습니다. 일단 셀렉한 곡이 ‘Future’라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상과의 시너지가 극대화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진화해 온 그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로서 진득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대중에 침투시킨 킹누와 오피셜히게단디즘 역시 별다른 연출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좋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자신들의 매력을 공중파에 실어냈습니다.

 

사실 이 날 화제가 된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엔카가수 히카와 키요시인데요. 파격적으로 < 드래곤볼 超 >의 주제가를 맡으며 로커로 변신하기도 했던 해였죠. 이 날은 거대한 용의 형상을 타고 등장, 배경화면과 CG의 도움을 받아 마치 신룡을 타고 다니는 듯한 무대를 연출했습니다. 매년 이렇게 스케일 측면에서 압도하는 장면이 하나씩은 탄생하기 마련인데, 올해의 주인공은 바로 그였던 것 같네요. 이와 더불어 뛰어난 가창력과 댄서들과의 합을 통해 뮤지컬과 같은 시간을 선사한 미시아에게도 한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가장 ‘음악무대’스러운 퍼포먼스였어요.

시간 되시면 영상으로 한번 보시기를...

사실 이 날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없었으면 안되었을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푸린(Foorin)의 ‘パプリカ’와 스다 마사키의 ‘まちがいさがし’, 여기에 이번 올림픽 주제가인 ‘カイト’까지 전담한, 바로 요네즈 켄시인데요. NHK의 < 2020 응원 송 프로젝트 >를 전담하고 있기에, 정말 NHK의 아들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네요. 최근 일본대중음악 신에서의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별도 퍼포먼스 없이도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 날의 쇼를 주도했습니다. 대외활동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면 당분간은 그 기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올림픽 주제가인 ‘カイト’를 소개하는 요네즈 켄시

AI를 통해 부활시킨 미소라 히바리는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화제성만을 위한 일회성 기획으로 비춰져 진정성이 와닿지 않았고, 디즈니 메들리는 솔직히 말해 구색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시키와 키스가 함께한 ‘Rock and Roll All Nite’나 다케우치 마리야의 ‘いのちの歌’는 올드 팬들에게 향수를 가져다 주었겠지만 젊은 세대들의 구미를 당기진 못했겠지요. 이처럼 점차 분절되어가는 세대간 미디어 소비성향 차이는 앞으로의 홍백가합전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의 강요가 없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요구하는 코너들이 많습니다만, 너무 잦고 인위적이다 보니 피로감만 유발합니다. 물론 모든 세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습니다만, 적어도 일부 기획사에 편중된 라인업과 후렴만 겨우 부를 수 있는 짧은 배정시간, 지금의 음악 대신 히트곡 메들리로만 메우는 안일한 기획 등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동등한 비중을 두는 것, 그리고 보다 ‘음악’이라는 본질적인 매개체에 대한 고심이 더해지기를 바랍니다. 올해 연말엔 자신만의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홍백가합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더불어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여담이지만 우에쨩 나만 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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