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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Jan 21. 2020

내 인생의 음악 열 곡

이번에 대중음악웹진 IZM의 기획기사로 “내 인생의 열 곡”이라는 어마무시한 제목의 글을 쓰고 말았다. 사실 쓰기 전까지만 해도 쉽사리 열 곡을 고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강하게 하이라이트 된 내 순간순간의 경험은 모두 음악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 순간이었다.


이 글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열 곡은 무엇인지, 거기엔 어떤 경험과 생각들이 스며 있는지, 한번씩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아래 있는 노래들도 한번씩 들어보셨으면.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년. 나에게 있어 음악을 ‘청취’에서 ‘소비’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준 기념비적인 노래다. 무슨 소린고 하니, 내가 구매한 첫 음반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네번째 앨범이었다는 이야기. 처음으로 4,500원을 주고 집어온 테이프는 어린 마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재킷에 가사가 쓰여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특히 너무나 좋아했던 이 노래를 원할 때마다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다. 학교에, 학원에 가지고 가 마구 자랑하기도 했던 ‘앨범’이라는 매개체와의 첫 만남, 다 이 노래 덕분이었다.


에미넴(Eminem) ‘Kill you’

1999년. 그야말로 컬쳐쇼크였다. 아, 본토의 힙합이란 이런 것인가. ‘에미넴’이란 이름 석자만 듣고 덜컥 구입한 앨범 속 언어 폭격은 내 정신을 초토화시켰다. 기상천외한 라임과 탄탄한 플로우, 공백이 많은 비트를 랩 하나로 꽉 채우는 래핑에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을 연발. 물론 이 < The Marshall Mathers LP >의 트랙들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지만, 이 곡은 인트로 후 실질적인 첫트랙이었던 덕분에 더욱 각별한 인상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다만, 학원영어 선생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팝송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 곡을 들고 갔던 건 흑역사 중 하나.


림프 비즈킷(Limp Bizkit) ‘Rollin’(Air Raid Vehicle)’

2000년. 솔직히 말해 나는 많은 팝 레전드를 공부로 뒤늦게 익힌 사람이다. 어렸을 땐 주위에 팝을 듣는 사람이 없어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명반을 리얼타임으로 즐기지 못했다. 더더욱 웃긴건 팝 입문을 뉴메틀로 시작했다는 사실. ‘하드코어’라 불리던 음악들을 선호했던 나는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기점으로 소개되던 여러 해외 밴드들을 하나 둘 씩 찾아 듣기 시작했고, 내 귀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바로 ‘빡빡이 아저씨‘ 프레드 더스트였다. 그 중에서도 이 곡은 가사를 정확힌 몰라도 들리는 발음대로 따라 부를 수 있었던 헤비 로테이션 넘버. 2013년 < 시티브레이크 >에서 이 곡을 직접 들었던 그 순간은, 내 페스티벌 경험 중 손꼽히는 기억이기도 하다.


두 애즈 인피니티(Do As Infinity) ‘Summer days’

2001년.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는 아이리버의 MP3 CDP를 들고 다니며, 흔치 않게 일본음악을 즐겨 듣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CDP를 빌려 쉬는 시간에 들어봤는데, 취향에 영 안 맞는 거다. - 뒤늦게 알고보니 그때 들었던 건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였다. 사실 지금도 하마사키 아유미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 그러던 중 ‘정말 이게 단가?’ 싶은 마음에 며칠 뒤 다시 한번 가져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을 때 나온 것이 바로 이 노래였다. 거친 디스토션과 시원시원한 가창,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미자 누나로 불린 반 토미코의 음색은 나를 단숨에 열도음악에 발을 담그게 만들었다. 일본음악과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일본음악을 열심히 듣고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터.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06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 중 가장 많이 들은 곡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 록 오페라 모음집은 나에게 있어 어느 레전드 뮤지션들의 작품보다도 이상적인 한 장이다. 어떤 트랙을 싱글컷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균형잡힌 완성도,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와 일관성,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기적과도 같이 잡아낸 프로듀싱. 그 중에서도 이 노래는 화룡점정이다. 가사의 고조와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 구성은 드라마틱한 블록버스터를 연상케 한다. 라이브가 좀 별로면 어떠랴. 살아있는 자들의 기치를 소름이 돋도록 부르짖음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송가’가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돌아온 제라드 웨이는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건 다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일 테다. 이 노래를 들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나와 내 친구들 모두 그를 닮은 아저씨가 되었으니까.


챠토몬치(チャットモンチー) ‘シャングリラ(샹그리라)’

2007년. 나의 20대를 관통하는 아티스트가 누구냐 묻는다면 1초만에 튀어나올 그 이름 챠토몬치. 꿈만 꿀 뿐 행동하지 못하던 나를 북돋아준 것도, 낯선 곳에서의 적응을 도와준 것도, 위기 또한 기회일 수 있다고 소리쳐 준 것도, 다 그들이었다. 그나마 사람 역할하며 지금 살아갈 수 있는 건 꽤 많은 부분 그들의 음악과 함께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내 안의 확신 같은 것이 존재할 정도로, 이 밴드는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노래는 처음 그들과의 연을 이어준 노래이자 팀의 시그니처 송으로,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우연히 듣고 그 뒤로 푹 빠져 버렸던 곡이다. 단순하지만 유니크한 짜임새와 가사, 그리고 멜로디. 팀으로서의 시너지와 하시모토 에리코의 재능이 반짝반짝 묻어나는 곡으로, 지금도 생각나면 자주 꺼내 듣곤 한다. 이제는 ‘완결’ 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처럼, 지금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내가 되도록 다짐하면서 말이다.  


트래비스(Travis) ‘Turn’

2010년. 대학시절의 나는 밴드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다. 어쭙잖게 기타를 배우며 이 곡 저 곡을 쳐보았지만, 원하는 곡을 치기에 내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활동하고 있던 아카펠라 동아리 정기공연 말미에 합주를 두 곡 정도 하기로 결정하고 이 노래 저 노래를 찾아보던 중 한 선배가 추천해준 게 바로 이 노래였다. 당시 나는 무조건 하드하고 빠르고 우당탕 깨부수는 곡들에 빠져있을 때라 기도 안 찼던 것이 사실이나, 어쨌든 내 실력과는 타협을 봐야 될 것이 아닌가. 딜레이만 잘 먹이면 프로 부럽지 않게 간지가 났던 이 노래는 악기가 모두 초보였던 우리 팀에게 ‘합주’의 재미를 알려주었던 그런 곡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Inside looking out’

2011년. IZM에 들어와서 그 동안 안 듣던 팝을 공부하며 몰아 듣던 시절에 찾은 내 취향의 근원같은 곡이다. 애니멀즈(The Animals)의 원곡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분여에 가까운 대곡으로 재탄생한 이쪽에 비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4비트 하이햇으로 듣는 이와의 밀당을 예견케하는 인트로부터 블루스 터치가 가미된 폭발적인 기타연주, 터질땐 확실히 터뜨리는 마크 파너의 보컬까지. 이 당시에 정말 많고도 유명한 밴드들의 곡을 열심히 들었건만, 유독 기억에 남고 자주 플레이하게 되는 건 완곡 들으려면 버스정거장 세 개는 지나야 되는 바로 이 노래다. 거의 4분을 넘게 이어지는 잼 비스무리한 연주를 들으며 전율을 느끼는 것은, 나도 이렇게 티나지 않게 빛나보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天体観測’

2013년.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느낄 것이다. 그 어디에도 말을 섞을 수 없는 고립감을. 그리고 외로움을. 그래서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실행했던 버킷리스트는 바로 일본의 로컬 록 페스티벌 관람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한 2013년의 < Rock in Japan > 현장이. 모든 무대가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틀째의 헤드라이너는 각별하다. 범프 오브 치킨이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바로 몇미터 앞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던 그때. 순식간에 지나간 본 무대에 이어 나를 소름돋게 했던, 앵콜요청을 대신해 울려퍼지던 5만명의 ‘Supernova’ 합창. 항상 나 혼자만 숨어서 좋아했던 보상을 다 받은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감격에 눈물마저 찔끔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따라 부른 뒤 등장한 후지와라 모토오의 한마디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지막 곡입니다, 天体観測(텐타이칸소쿠)!”


조용필 ‘바람의 노래’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청춘과 젊음을 조금씩 떠나보내는 중이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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