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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Feb 20. 2017

내 취향이 트렌드라는 파도에 휩쓸려갈 떄

섬머소닉과 후지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보며

여름 록 페스티벌은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연중 이벤트다. 한 해에 걸쳐 라인업을 기다리며 설렘을 즐기고, 축제가 끝난 뒤 추억을 곱씹는다. 메마른 삶에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는 셈이다. 2012년 지산을 통해 그 분위기에 푹 취하고 나서는, 여름 시즌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록 페스티벌을 찾게 되었다. 마침 직업이 생겨 취미로 행사할 수 있는 금액의 한도가 훨씬 높아진 터였다. 1년이라는 여정의 중간에서, 그렇게 묵은 기운을 털고 새 에너지를 충전함으로서 남은 반년을 '살아내는' 삶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1월이면 일본에선 일찌감치 축제준비를 시작할 타이밍. 올해도 어김없이 섬머소닉이나 후지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체크하며 비로소 해가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국내도 모자라 매년 일본 원정도 겸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선 필수 체크 항목이다. 근데 어라라, 한 쪽은 캘빈 해리스가 메인이고, 한 쪽은 에이펙스 트윈과 뷰욕이란다. 저 아티스트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으나, 뭔가 관심이 짜게 식어버린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캘빈 해리스도 해리슨데 피코 타로라니....

시대가 바뀌었거니 했다. 작년 지산만 해도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마지막 주자였던 금요일보다 제드가 끝을 장식했던 토요일이 관객이 훨씬 많았드랬다. 전세계의 록페스티벌들이 크로스오버 뮤직 페스티벌로 태세를 전환한지도 꽤 됐고 말이다. 근데, 그러려니 해도 참 아쉽더라는 거다. 악기를 연주하며 땀을 흘리는 그들을 보며 나 또한 미쳐서 노는게 일년 중 가장 큰 낙 중에 하나였는데. 트렌드가 바뀌었다 한들 몇년 사이에 취향저격 뮤지션들이 이리 빠르게 그 종적을 감추어 갈 줄이야. 받아들이던지, 체념하던지. 갑작스레 건네진 양자택일의 질문은 답변을 보류하고 있던 나에게 적극적으로 대답을 채근하는 듯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트렌드가 취향과 어긋나는 이들은 자신의 취미를 즐기기가 쉽지 않구나 싶다. 특히 쏠림 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그러다보니 '유행'이라는 것과 억지로라도 정을 붙여보려 하지만, 그게 진작에 되었다면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진작에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테다. 물론 제일 잘 팔리는 것들만이 큐레이션되는 상황을 탓할 순 없다. 돈 벌려고 아둥바둥하는 나처럼, 그들도 이것이 직업이고 생계를 위한 최선을 찾는 과정일 테니까. 작은 수요에 대한 배려를 논하기에는 이 세상이 참으로 각박하다. 그렇게 편향, 휩쓸림이 생존이라는 명목하에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소수를 위한 문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남아있다 한들 유별나다는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꺼내들게 된다. 바로 '일코'라는 선택지를.

취미를 즐기는 데에도 남 눈치봐야 되는 현실


리듬게임, WWE, 배구, 일본음악. 일코도 일코지만, 나의 이 마이너한 취미들은 즐기기조차 어렵다는게 더 큰 문제다. 요즘 갑자기 늘어나 당황스럽지만 어쨌든 몇년 사이 조이플라자나 이수게임랜드 같은 내로라 할 '성지'는 상당수 문을 닫았다. WWE는 수익성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한국 투어를 포기한지 꽤 됐다. 온통 야구이야기만 하는 세상이기에 타 스포츠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신기한가 보다. 고등학생 땐 일본음악 듣는다고 쪽바리 소리도 많이 들었다.(아니면 엑스 재팬 아냐고 물어보거나) 그럼 나는 뭘 좋아해야 하나. 오버워치? UFC? 야구? 드라마 OST? 취미를 즐기기 위해 남보다 배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도 짜증나는데, 남들 안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은 그것대로 속상하다. 그러면서도 그러려니 한다. 그들도 사회라는 규격에 몸을 구겨넣다 보니 취향이 없어지거나 평범해졌겠지 싶어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보다 오타쿠로 사는 내가 백배는 더 행복하겠지 싶어서.


좀 더 지켜보고 섬머소닉이나 후지 록이 아니다 싶으면 록 인 재팬이나 스위트 러브 샤워를 가기로 했다. 더 열심히 빨빨거리며 즐거운 것을 계속 고수해 나가지 싶다. 원할 때가 아닌 쟁여두고 쟁여뒀다가 비장의 카드 마냥 그것들을 즐겨야 하는 점은 아쉽지만, 그 유별난 취향 덕분에 얻은 소중한 인연들도 무시할 수 없다. 평범함에서 약간 삐딱선을 걷는 것만으로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이 땅에서, 삶의 행복은 그 유별남을 단단히 붙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취향이 트렌드라는 파도에 휩쓸려 가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건 결국에는 덕질을 어떻게든 하고 있을 나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다. 그렇게 꾸준히 즐기다 보면 내 취향이 트렌드가 될 날도 언젠간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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