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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May 13. 2020

‘개인’의 시대에 전파하는 ‘사회’의 의미

자꾸 녹황색사회라고 읽게 되어버리는, 료쿠오쇼쿠샤카이

이들을 처음 접했던 건 2017년 일본여행에서였다. 당시에는 제이팝 관련 정보를 얻을 만한 루트가 부족해, 여행을 가면 반나절 정도는 레코드점에 머무르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試聽)코너가 잘 마련되어 있는 타워레코드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이런저런 노래를 들으며 현지에서는 이런 팀들이 요즘 뜨는구나, 요즘 음악경향은 이렇구나 라는 것들을 재빠르게 업데이트하곤 했던 시절. 우연히 듣게 된 곡 하나가 순간 내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했다.


독특한 신시사이저 톤과 풍성한 팝록 사운드, 보컬의 뛰어난 가창력 등. ‘이 팀이 뜨지 않으면 누가 뜰까’ 싶은 마음에 그 길로 앨범을 구매하고 팀의 후원자를 자처한지 3년. 잇따른 타이업과 메이저 첫번째 정규작을 통해 완연한 상승조에 오른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내가 다 기쁠 지경이다.


사실 ‘はじまりの歌’가 담긴 < ADORE >(2017)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들의 히트가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젊은 감각이 내뱉는 센스는 단연 독보적이었으며, 그 안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대중성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 2012년 결성 후 끊임없는 노력과 발전을 통해 이제서야 유망주로 빛을 보고 있는 료쿠오쇼쿠샤카이, 약칭 료쿠샤카를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보고자 한다.

처음 들었을 때의 임팩트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운명과도 같은 뮤지션으로의 이끌림


이들의 시작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SNS를 통해 온라인으로 친교를 맺고 있던 나가야 하루코(Gt. Vo), 고바야시 잇세이(Gt), peppe(Key)가 방과후 활동으로 경음부를 택하면서 결성된 것. 막연히 뮤지션의 꿈을 꾸고 있었던 나가야 하루코와 코바야시 잇세이가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었던 peppe를 설득해 팀의 원형이 갖춰지게 되었다.


여기에 고바야시 잇세이가 알고 있던 두살 아래의 아나미 싱고를 베이스로 맞아들여 현재의 라인업이 완성. 사실 당시는 드럼까지 5명의 구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2015년 탈퇴하며 4인조로서의 그 형태가 굳혀졌다. 노래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음악만을 바라보고 시작된 커리어인만큼, 뮤지션으로서의 길은 이들에겐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야채주스에 빠져있던 나가야 하루코가 ‘녹황색야채(료쿠오쇼쿠야사이)’라고 말한 것을 멤버들이 ‘녹황색사회(료쿠오쇼쿠샤카이)’로 착각. 이것을 계기로 밴드명을 확정하게 된다. 이듬해인 2013년에 10대 대상 밴드 오디션인 < 섬광 라이엇(閃光ライオット) >에서 준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빠르게 그 꽃을 피워가는 듯 했지만, 프로지향의 길은 멀고 험했다.


차근차근 자신들의 고향인 아이치를 중심으로 자주기획공연 등의 스텝을 밟아나가, 2017년이 되어서야 전국 유통반인 < Nice To Meet You>(2017)을 선보이며 레코드 데뷔를 완수. 드럼의 공백을 메우고자 비트를 적극 활용함과 동시에 키보드의 활용을 극대화한 ‘Bitter’, 료쿠샤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처음으로 구축한 ‘またね‘ 등 충실한 다섯 트랙이 그 가능성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당시 섬광라이엇의 결선무대. 3:46초부터

두번째 미니앨범 < ADORE >(2017)과 정규작 < 緑黄色社会 >(2018)과 라이브를 통해 빠르게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관계자들의 러브콜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픽 레코드 재팬으로 이적, 세번째 미니앨범 < 溢れた水の行方 >(2018)을 통해 메이저 데뷔를 완수하며 보폭이 넓어진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에 흩뿌렸다. 보다 밴드뮤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あのころ見た光’, ‘나는 나를 위해 노래하겠어’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リトルシンガー’ 등 자신들의 입지변화에 대한 나름의 성명서 같은 앨범으로 완성되어 있다.


이후 드라마 < G 선상의 당신과 나(G線上のあなたと私) >의 주제가로 낙점된 ‘sabotage’와 애니메이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4기 엔딩으로 전파를 탄 ‘shout baby’를 통해 일반 대중의 틈을 파고드는 데에도 성공. 지난달에 발매 된 두번째 정규작 < SINGALONG >은 높은 완성도로 각지에서 호평받음과 동시에 애플뮤직 앨범차트의 상위권을 점하는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올해의 브레이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나가야 하루코의 가창력이 십분 발휘되어 있는 First Take 영상


멤버간의 시너지를 통한 넓은 스펙트럼


이들이 구사하는 음악의 특징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송라이팅 감각과 보편적인 정서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가사, 그리고 나가야 하루코의 가창력이다. 여기에 한 사람에게 창작이 쏠려 있는 일반적인 팀들과 달리, 모든 멤버가 작사작곡이 가능한 덕분에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곡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밴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인 < SINGAGLONG >을 예시로 들어보자. 나가야 하루코 특유의 명쾌함이 깃들어 있는 ‘sabotage’와 ‘Shout baby’, 키보드를 전면에 부각시킴과 동시에 대중과 함께 하는 프레이즈를 강조한 peppe/아나미 싱고 작곡의 ‘Mela!’, 악기 외의 요소를 적극 도입해 트렌디한 느낌을 자아내는 고바야시 잇세이 작곡의 ‘inori’ 등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이것이 밴드에게 입체감을 부여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서로간의 영향으로 평소에는 나오지 않았던 일면을 발견하는 그 시너지가 굉장히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멤버 전원이 작곡을 하기 때문에, 그 경우는, 작곡이 앞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과 겹치는 점은 있지만 주인공 상이 바뀌는 점은 있을지도 모르죠. 쓴 사람의 성격도 반영되고, 곡조도 자신이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작곡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가사가 생겨나가나 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나가야 하루코)


이처럼, 타 멤버의 작곡이 선행된 덕분에 평소라면 나오지 않았을 가사가 나온다던지, 두명/세명이 함께 작곡을 할 때의 곡조가 완전히 달라진다던가 하는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점은 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존재이유기도 하다. 자의식이 강한 창작 뮤지션들에게 있어, 이 정도로 작풍에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 사례. 그럼에도 이들은 적극적으로 멤버들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발전된 청사진을 제시하는 매커니즘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개인’은 결국 ‘사회’가 필요함을.


이렇듯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가는 밴드상은 이색적인 부분 중 하나다. 우선 일본의 밴드들은 기본적으로 프론트맨의 압도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커나가는 경우가 많다. 슬쩍 봐도 사잔 올스타즈부터 시작해 미스터 칠드런과 스피츠, 범프 오브 치킨과 래드윔프스 등, 창작의 전권을 한 사람이 잡고 있는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 그런 흐름에서 보면, 이들이 보여주는 팀으로서의 유기성은 분명 특별하다. 더불어, 요즘과 같은 개인지향의 시대와도 거리감이 있다.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개인’이 지배하는 현대에 있어 ‘사회’의 의미를 음악으로 재정의하는 팀이라는 점이 그렇다.


나라는 개인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주위 사람이, 그리고 사회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그들. 더불어 아무리 사생활을 고수한다 한들 자신의 행동은 결국 사회와 연관될 수밖에 없고, 자신이 거둔 성과에 대해서도 ‘내 옆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을 내가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각 멤버들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저로서는, 결코 무엇인가를 단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요. 이 말은 플러스에도 마이너스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세계를 바꾸는 것밖에 할 수 없다'라는 가사는, '우리는 어떻게 노력한들 세계에 관여하게 되어버리는 것인가'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이런 나라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죠. 그 파악은 그 사람이 들을 때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고바야시 잇세이)
“나, 나가야를 만나지 않았다면, 밴드도 계속하지 않았을까라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해.” (고바야시 잇세이)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선 결국 타인과, 그 타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필요함을 어필하는 이들. 그리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감추기보다는, 솔직하게 터놓으며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삶의 방식임을 증명하고 있는 료쿠샤카. 단순히 ‘음악을 잘하는 팀’이 아닌, ‘서로의 도움으로 더 나은 음악을 지향해 나가는’ 밴드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다. ‘개인’에겐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결국 사회가 필요함을, 이들을 보며 느낀다.


고바야시 : 역시 멤버들끼리 직접 마주보면서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은 느끼지. LINE으로 대화한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잖아?
나가야 : 응, 해결이 안되지. 직접 얘기하는 게 좋지.
peppe : 나 친구랑은 LINE 안하려고. 직접 만나는게 나아.
아나미 : 사람과 대화하거나 의견을 서로 내는 것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볼 수 있잖아요. "퍼짐"이란, 자신 이외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지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ela'의 원격합주 영상. 팀 특유의 온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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