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펀피(PUNPEE) < MODERN TIMES >(2017)
바야흐로 2057년, 한 노인이 등장해 말한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그 작품이 나왔을 때의 이야기였지" 내가 이 신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작품이 클래식이 되었음을 가정한 채 시작하는 그 발상의 전환.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딴 이 작품은, 트랙 메이커, MC, 프로듀서, 리믹서 등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시간과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편의 ‘시공 힙합 판타지’로서 자리한다.
2017년 봄, 술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래퍼의 넋두리로 시작되는 ‘Lovely Man’은 고즈넉하면서도 올드한 샘플링을 통해 ‘과거’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 주력. 자신의 영향을 준 여러 콘텐츠들과 그 영향, 이를 통해 뮤지션으로 각성해 가는 그 모습이 높은 밀도의 음악을 통해 눈 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건반의 루프가 타이트한 비트를 만나 발하는 독특한 긴장감이 인상적안 ‘宇宙に行く(우주에 가다)’, 붐뱁의 정수를 지향하는 사운드 메이킹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P.U.N.P.(Communication)’, 시간이라는 테마를 하나의 접점으로 모으는 싱잉-랩 기조의 키 트랙 ‘タイムマシーンに乗って(타임머신을 타고)’까지.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작품을 염두에 둔 듯, 라임에 가두지 않은 자유로운 랩과 트랙 메이커로서 쌓아온 역량과 경험을 자랑하는 여러 재기 넘치는 샘플링은 이 작품을 ‘미래의 클래식’이라 자칭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다시 이 앨범을 듣는 노인의 시점으로 돌아와, 결정되어 있는 미래라고 한들 그곳으로 나아가야만 하며 괴로운 과거라도 훗날 조금만 시점을 바꿔보면 결국 그건 멋진 'Oldies'로 우리들 곁에 남아있으리라는 확신을 던져주기도. 고정관념의 타파와 시대에 갇혀있기를 거부한 애티튜드, 완벽에 가까운 서사로 완성된, 장르적으로도 콘셉트 앨범의 측면으로도 흠집을 찾기 힘든 명반이다.
- 수록곡 -
1. 2057
2. Lovely Man
3. Happy Meal
4. 宇宙に行く
5. Renaissance
6. Scenario (Film)
7. Interval
8. Pride
9. P.U.N.P. (Communication)
10. Stray Bullets
11. Rain (Freestyle)
12. 夢のつづき
13. タイムマシーンにのって
14. Bitch Planet
15. Oldies
16. Hero
2020/08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