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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May 10. 2021

새로운 10년의 시작, 그 상징적 존재

미레이(milet), 그 새롭고도 압도적인 위용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토록 압도적인 재능과 스타성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이런 사람이 뮤지션이 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얼마만큼 더 불행해졌을까 싶을 때가. 그것을 최근에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바로 작년 초 이 싱어송라이터의 뮤직비디오를 발견했을 때였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런 글로 소개하는 것이 너무 늦었다 싶기도 하지만, 최근 발매된 신곡 ‘checkmate’를 듣고 결국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이런 뮤지션은 힘 닿는 대로 널리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미레이가 다른 이들에 비해 돋보이는 건, 기존 일본음악 신에서 익숙했던 것을 상당부분 버림과 동시에 색다른 접근법을 채택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팝스타’의 전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에서 그는 일본 대중음악의 2010년대와 2020년대의 음악신을 명확히 구분하는 바로미터에 더할 나위 없이 맞아 떨어지는 아티스트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유연함과 국경을 초월하는 트렌디한 감성. 그만큼 그가 구사하는 소리들은, ‘일본음악’이라는 형태를 산산조각낸 후 자신의 공식으로 재조립한 ‘궁극적인 새로움’과도 같았다.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


레코드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건넨 데모테이프가 데뷔의 계기가 되었다는 그의 유년시절은 구분 없이 다양한 음악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시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플룻을 배워 클래식에 보다 친숙했으며, 오빠의 영향으로 시규어 로스나 뷰욕, 쿨라 셰이커 등 서양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감성을 내재화해갔다. 여기에 전자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록으로 주목받았던 붐 붐 새틀라이트,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아시안 쿵푸 제네레이션과 같은 자국의 밴드들까지 가세해 그 독특하고 자유로운 감수성의 형성을 도왔다.


여기에 청소년기의 캐나다 유학경험 및 영화음악이 좋아 진학한 영상관련 학과에서의 수학 등은 막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의 정체성이 드디어 형태로 빚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떤 풍경이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영화 효과음에 접근하면서 ‘이미지를 소리로 구현화 시키는 역량’ 혹은 반대로 ‘소리의 감각과 그것이 그려내는 이미지’에 대한 집중력 등이 은연중에 체득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수를 준비하면서 만난 조력자들과의 협업으로 결국 빛을 발하게 된다.


- 그리고 또 한 곡, 하라 감독과 영화의 이미지 송 겸 삽입곡 "Wonderland"를 합작하셨네요.

이 곡은 그림 콘티를 보면서 “이 장면에서 사용하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듣고. 그게 원작에서도 클라이막스 장면이었거든요. "에, 나한테 맡기셔도 될까?"라는 기분도 있었습니다.

- 부담스럽죠. 곡에 대한 아이디어는 금방 떠올랐어요?

그게 한순간에 미팅 중에 떠올랐어요.

- 에엣!?

그림콘티를 보는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멜로디가 맴돌아서. 처음에 감독님으로부터 오케스트라 소리나 아이의 코러스를 넣고 싶다는 희망도 들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오케스트라의 어레인지도 떠올랐습니다. 아직 그림콘티 단계였지만, 하라 감독님이 영상으로 그리는 이미지가 제 속에 휙하고 들어와서, 동시에 곡이 흘러나오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19. 5.15, Natalie 인터뷰 중)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가 곡을 작업하는 방식이다. 전혀 곡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그에게 레이블이 제시한 것은 바로 베테랑 프로듀서 Ryosuke "Dr.R" Sakai와의 세션작업. 처음 만난 날 곧바로 작업에 돌입한 이들은 의외의 호흡을 보이며 앞으로 이어질 파트너십의 전조를 암시했다. 딱히 악보나 반주, 컨셉 등에 대한 제한 없이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그려나가는 하얀 도화지 위 그림은 당장 세상에 선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완성도를 담아냈다. 미레이 개인으로서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창작역량을 발견함과 동시에, 레이블에서는 새로운 팝스타가 곧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을 안겨준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보면, 이들의 작업방식은 현재 KPOP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송캠프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치밀한 준비나 고민보다는 순간의 재기와 감각에 좀 더 기대고 있는 이런 작업방식은 단독 작사, 작곡의 케이스가 많은 일본에서는 확실히 독특한 케이스라 할만하다. 보통의 싱어송라이터라면 자신이 쓴 가사와 멜로디를 전달하며 편곡자와 상의해 곡의 모양을 만들어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일 터.


- 사카이 씨와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예를 들면 "Waterfall"은 세션으로 향하는 전차에서 "오늘의 테마는 "폭포"라고 생각하고. 사카이씨에게 "오늘은 조금 느린 폭포로 갑니다"라고 전하면, "코드는 이런 느낌?"이라고 그 자리에서 연주해주기 때문에, "아니, 좀 더 거무스름한 느낌으로"라든가 세세한 이미지를 전해 코드를 만들어 갑니다.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멜로디를, 마이크 앞에서 대략 10 패턴 정도 찍는 거죠, 즉흥적으로.
('19. 3. 6, Natalie 인터뷰 중)
무한 호감을 표하는 미레이의 시선에 괜시리 질투가 난다


이처럼 현장에서 바로 코드부터 시작해 살을 붙여나가 4~5시간만에 곡을 완성하는 이 프로세스가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단초로 작용해 에고를 더욱 구체화시켰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파악해보면, 그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작곡가보다는 주요 멜로디를 구성하는 ‘탑 라이너’에 그 재능이 특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완성된 곡을 받아 부르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한 원격작업으로 진행된 ‘Who I am’에선 자신이 보컬 디렉팅을 주도하는 등 여러 방향으로 작업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그이지만, 어릴 적부터 은연 중에 쌓아온 이미지-음악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선율감각의 만개에 있어 파트너와의 협업은 꽤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언어와 표현의 잠재력을 개방하는 ‘가창’


그의 역량이 ‘제작’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금의 센세이션은 없었을 터. 그의 가수로서의 역량 또한 일반적인 측면에서 벗어나 바라봐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일본어’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독특하다. 최근 파이브 뉴 올드나 DYGL 등 트렌디한 사운드와 일본어가 주는 억양과의 부딪힘을 방지하기 위해 영어로만 가사를 쓰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명확히 다른 액센트의 일본어 발화로 그 위화감을 극복하며 자신의 노래에 ‘미레이’라는 음악적 자아를 각인한다.


- 가사도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썼어요?

그렇죠. 처음에는 거의 영어가사로 나오고, 일본어의 울림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흥미도 있어서, 영어에 맞춘다는 느낌으로 일본어 가사를 만들어 갑니다. 창법은 약간 영어발음에 붙여서. 영어랑 일본어가 잘 어울리도록 의식해서. ('19. 3. 6, Natalie 인터뷰 중)


이처럼 먼저 영어로 가사를 쓴 후 이에 맞는 일본어 발음을 찾아 써내려 간 덕분에 음악과 가창 사이에 일체감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곡이 바로 첫 정규작 < eyes >에 실려 있는 ‘Parachute’인데, 후렴구의 ‘Can I just fall into you If you love / 手を伸ばしても届かない 着地点は It’s not the end’의 구절은 영어와 일본어의 구분이 쉬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동일한 어감과 터치를 통해 이 두 언어의 매끈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데뷔 곡인 ‘inside you’ 또한 ‘Tell me who is inside 許されるなら’와 같은 부분은 유사한 발음을 통해 감정을 이어가는 등 ‘언어’에 대한 특별한 감각과 치열한 고민은 ‘미레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게 하는 큰 부분임에 틀림없다.


가창의 장점과 매력이 잘 살아있는 트랙
원 오크 록의 토루가 곡을 담당한 데뷔곡. THE FIRST TAKE 버전으로.

더불어 곡의 장르나 분위기보다는 그 감정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며, 이를 기반으로 트랙에 특화된 표현력을 보여주는 발군의 가창력 역시 한 축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것이 < eyes >에 연달아 수록되어 있는 ‘us’와 ‘Prover’인데, 우선 ‘us’는 드라마 주제곡으로서의 대중성을 고려해 보다 목을 열고 기교를 배제해 보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트랙. 이어지는 ‘Prover’는 방향을 180도 틀어, 클래시컬한 편곡에 점층적인 감정의 고조를 응축한 성악가의 페르소나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얼마전 선보인 ‘checkmate’를 들어보자. 연주의 공백이 있는 벌스에선 보다 워딩을 강하게 짚으며 접근하는 반면 후렴에서는 가성을 활용해 조화에 집중하는 운영을 보이고 있다. 18곡으로 꽉 차 있는 앨범 < eyes >가 좀처럼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각 트랙의 음악적 특징과 감성에 동화된 ‘각기 다른 미레이’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단번에 청자에게 전달되는 극강의 가창력과 표현력인 셈이다.

특히 이 곡에서의 목소리가 참 좋다.


모든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소중히 하는 균형에서부터


그의 인터뷰를 보면, 유난히 돋보이는 대목이 하나 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이 삶의 전부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삶이 있기에 음악이 있다 말한다. 음악은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바꾸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음악이 전부이면 그것에 대한 집착과 불안으로 정작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그 외의 삶에 집중해 얻은 경험을 연료로 삼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이처럼 그를 지탱해 주는 것은 모든 것에 대한 밸런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감정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다른 감정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동반된 음악적, 언어적 고민. 여기에 있어 밑바탕으로 작용한 선천적인 역량과 후천적인 경험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간 그 중심에 바로 ‘미레이만의 감수성’이라는 균형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제까지 미지에 가까웠던 영역에 접근함으로서, 2020년대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시대를 견인할 대형 뮤지션으로서 발돋움하는 그의 모습을 앞으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것이야말로 음악 필자로서, 나아가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가장 큰 행운이자 행복이 아닐까. 시덥잖은 말장난과 함께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레이와’의 시작은 미’레이와’!


- 뮤지션은 여러 종류가 있고, 인생의 모든 것을 음악에 바치는 사람도 있죠. 한편으로 자신의 고집대로 인생을 살고 거기에서 지엽적으로 음악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죠.

저 스스로는 그게 되게 불안하더라고요. 음악을 일로 한다면, 음악은 적어도 10할 중 9할이나 8할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인간이 아닌, 음악이 6할, 자신의 생활이 4할 정도로 성립되어 있어요. 음악을 만드는 동안은 물론 100%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즐겁지만, 끝나는 순간에 '음악이 전부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음악에서 떨어져 보면, 그건 그걸로 멘탈이 불안정해져서. 기분전환이 꽤 힘들어져요.

- 음악가로서의 인생과 개인적인 인생이 평행하게 진행돼, 그곳을 왕복하는 듯한 느낌인가요?

네, 정말 패러렐 월드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단지, 이번에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6할이라고 해도, 자신있는 곡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만약 음악 100%가 되어버린다면, 내 생활은 파탄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 아닌 4할의 부분이 내 음악에 투영되어 있으니까, 그것이 없으면 연료를 없어진 느낌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열의에도 브레이크가 걸려 버릴지도 모르죠. ('20. 6. 3, Natalie 인터뷰 중)
마지막은 신곡 checkmate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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