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REWIND]
매년 이어지는 결산을 똑같은 형식으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 아래의 결과물입니다. 리스트 업을 하다보니 왠지 모르게 같이 묶어서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16장의 작품을 두장씩 묶어 총 8개의 글로 묶어 냈었죠. 참 당시에는 참 의욕적이었다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조금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이 2014년 결산의 구성을 지금도 참 좋아합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썼을까 싶어서 말이죠.
이 해야 말로 정말 풍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막 출연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던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이후로 앨범이 나오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플레이하는 하루카토미유키를 필두로 여러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신예와 베테랑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선보였었죠. 특히 이 리스트엔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팀들이 많네요.
당시 화제였던 것이 범프 오브 치킨과 하츠네 미쿠의 콜라보레이션이었죠. 앨범에는 하츠네 미쿠 버전이 수록되지 않았지만, 두 뮤지션이 함께한 'ray'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서 팬들 사이에 굉장한 호불호를 불러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음악 스타일에 많은 변화가 있기도 했고요. 그땐 저도 조금은 잉? 했던 기억이 나지만, 이 시기에 보여주었던 움직임이 < aurora arc >와 같은 명반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만큼 저는 < aurora arc >를 높게 평가하는 편이에요.
베비메탈도 정말 대단했죠. 이젠 라이브 활동을 '봉인'한 탓에 무대에서 만나보기는 어려워졌지만, 근 7~8년 동안 이어졌던 열광적인 함성은 그들도 미처 예측 못했던 것이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록 인 재팬 2013에서 봤을 때는 아직 실제 세션이 아닌 MR로 공연하던 그들이었는데, 3년인가 뒤에 다시 마주한 섬머소닉 마운틴 스테이지에서의 그들은 어느덧 정말 거물이 되어있었지요.
여기에도 거짓말같이 아카이코엔과 키노코테이코쿠는 포함되어 있고... 참 제가 두 밴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부부가 된 오오모리 세이코와 피에르 나카노도 함께 들어가 있네요. 피에르 나카노의 EP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만큼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면 싶을 정도입니다. 드러머이기에 상상할 수 있는 드럼의 일면이 아주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팀 더 언급하자면 베이스 볼 베어... 사실 개인적으로 이 팀은 < 新呼吸 >(2012)과 이 < 二十九歳 >에서 모든 불꽃을 태워버렸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저 두 작품은 정말 생각나면 들을 정도로 너무 좋아하는데, 그 이후의 작품은 뭔가 이 때만큼의 포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할까.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유아사 쇼헤이가 탈퇴(라고 쓰고 잠적이라 읽죠)한 후 더더욱 뭔가 힘을 못내는 느낌이어서 그게 좀 많이 아쉽습니다. 한때 정말 좋아했던 밴드였거든요.
여튼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시간 나시면 꼭 들어보시라고 자신있게 권해드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작품들입니다. 지금은 이때보다 일본음악을 듣기 훨씬 편해진 시기이기도 하죠. 아마 대부분은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에도 등록이 되어 있을 겁니다. 예전에 비하면 참 편해졌어요. 그니까 진직에 스트리밍 좀 풀지는 어차피 이렇게 다 옮겨올 거 ㅎㅎ
게스노키와미오토메(ゲスの極み乙女) < 魅力がすごいよ(매력이 대단해) >
하루카토미유키(ハルカトミユキ) < そんなことどうだっていい、この歌を君が好きだと言ってくれたら。(그런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이 노래를 그대가 좋다고 말해준다면) >
신진 세력 중에 추천하고 싶은 두 작품입니다. 게스노키와미오토메는 작년 결산 때 유망주로 꼽기도 했던 아티스트인데요. 한 해 동안 수많은 라이브를 거치며 쌓은 경험치를 환원해 제목처럼 '매력이 대단한' 첫 정규작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EP < 踊れないなら、ゲスになってしまえよ(춤추지 않으면, 게스가 되어버려) >(2013)에서 비하면 살짝 그 충격의 강도가 덜한다 싶기도 하지만, 키보드를 부각시킨 다층적 사운드와 완벽한 밸런스의 연주력은 뉴페이스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을 충족시킵니다. 프론트맨 카와타니 에논(川谷 絵音)의 보컬 운용변화도 돋보이는데요. 랩에 가까운 빠른 워딩을 추구했던 전작들과 달리 좀 더 넓은 범위의 가창을 선보이며 듣는 맛을 배가시켜줍니다. 인디고 라 엔드(indigo la end)의 프론트맨이, 2014년 들어 자신의 서브 프로젝트였던 이곳으로 그 본거지를 완전히 옮겨버렸습니다. 뭐 기분 좋은 주객전도지만요.
여기에 추가로 언급하고자 하는 신예가 바로 하루카토미유키입니다. 시인이자 비평가이기도 한 호무라 히로시(穂村 弘)의 영향으로 단가(일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하이쿠의 발전형)를 쓰기 시작해 책으로 엮어내기도 한 경력이 있는 하루카의 이력이 독특한데요. 음악 역시 평범함과는 살짝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운드나 구성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서가 당췌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전체적인 테마로, 'その日がきたら(그 날이 온다면)'에서는 체념과 회한을, '385'에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임을, '青い夜明け(푸른 새벽)'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을 각각 노래합니다. 모던 록에서 포크, 사이키델릭까지 능숙하게 아우르는 모습, 리드 보컬과 코러스를 짜임새 있게 엮어내는 솜씨가 역시 예사 인물들은 아님을 직감케 합니다. EP라 5곡 밖에 담겨 있지 않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 RAY >
맨 위드 어 미션(MAN WITH A MISSION) < Tales of Purefly >
범프 오브 치킨이 개척자라면, 맨 위드 어 미션은 전파자라 칭할 만합니다. 전자가 2000년대 일본 록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면, 후자는 이제 그 유산을 더 넓은 곳으로 퍼뜨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죠. 성향은 다르지만, 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이 두 팀의 동반히트가 왠지 모르게 흐뭇합니다.
햇수로 4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범프 오브 치킨. 이번에야말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맘을 먹었습니다.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치기 어린 소년시절을 지나 어느덧 좋은 어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츠네 미쿠와의 콜라보레이션, < 뮤직 스테이션 >과 같은 음악방송 뿐 아니라 < 왕자님의 브런치 > 같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오랫동안 지켜 본 골수팬들마저 보고도 믿지 못할 행보를 이어갔고, 내용물 역시 리더인 후지와라 모토오(藤原 基央)의 자아를 한발 물리는 대신 그 공백을 4명이 함께 전하는 온기로 채워 어느 때보다 듣기 편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KZ의 조력으로 드럼이 아닌 비트를 사용해 의외의 일면을 내비쳤던 'ray', 가사와 멜로디를 조합해 생명력 있는 메시지를 만드는 능력은 여전함을 증명했던 'ゼロ(Zero)'가 특히 눈에 띄는 트랙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들의 행보가 괜스레 짠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맨 위드 어 미션은 콘셉트 앨범이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승부하며 기존의 적들까지 우호세력으로 돌려세웠습니다. 'tales of purefly'를 찾아 떠나는 이들의 모험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꽉 찬 13트랙의 이야기가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라면 바로, 한번 플레이하면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다가오는 기승전결의 서사! 헤비메탈, 펑크, 뉴메틀, 이모코어, 그런지, 컨트리 등이 맞물리며 듣는 이들이라면 벌벌 떨만한 늑대들의 포효를 완성시켰습니다. 싱글 세 장으로 한 해를 휩쓸어버렸던 세카이 노 오와리를 제외한다면, 이 두 장을 2014년 일본의 메인스트림 록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베이비메탈(BABYMETAL) < BABYMETAL >
신티아(Cyntia) < Limit Break >
여성이 주도하는 팝메탈이라는 점은 같지만, 접근방식 자체는 완전히 다른 두 작품입니다. 꼭 제이팝 팬들이 아니더라도 음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베이비메탈에 대해서 들어보신 바가 있을 텐데요. 조그마한 체구의 세 소녀가 광폭한 메탈연주에 맞춰 퍼포먼스를 전개하는 모습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데뷔작 < BABYMETAL >에 담긴 수록곡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이 크로스오버를 음악적으로 완벽히 현실화시키며 골수 메탈팬들의 편견과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킵니다. 헤비니스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웃듯이 말이죠. 저음 리프로 일관하는 전주의 묵직함을 후렴의 밝은 분위기가 배반하는 'ギミチョコ(give me choco)', 살벌한 킥드럼과 신스 음을 중심으로, 일본의 전통 악기와 선율을 사용해 이국적인 매력을 한껏 끌어낸 'メギツネ(암여우)', 정통 멜로딕 스피드 메탈을 깔아 놓고 '이지메는 안돼!'라고 외치는 'イジメ、ダメ、ゼッタイ(이지메, 안돼, 절대)'까지. 결국 단순히 잘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그럴 듯한 답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정공법으로 문을 두드려 성과를 얻어낸 팀도 있습니다. 가챠릭 스핀(Gacharic Spin)과 함께 메탈 성향의 걸밴드로서 서서히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신티아의 새앨범은 장르 특유의 매력을 단단히 유지하면서도, 여느 팝만큼이나 대중적인 선율을 통해 장르가 가진 틀을 깨부수기도 하는 두 얼굴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수록곡들 간의 격차가 거의 없어 어느 부분을 틀던 스킵 없이 들을 수 있는 평준화된 작품입니다. '閃光ストリングス(섬광 스트링스)'와 같은 공격적인 곡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Plant'와 같이 니시노 카나나 메이 제이와 같은 줄에 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한 록발라드도 있으며, 스윙을 가미한 'SSS'에서도 발군의 감각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계열의 장르라도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구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하는 '따로 또 같은' 두 작품입니다.
베이스 볼 베어(Base Ball Bear) < 二十九歳(29살) >
지그조(ZIGZO) < FOREVER YOUNG >
각트(Gackt)가 들어오기 전 말리스 미제르(MALICE MIZER)의 보컬을 맡고 있었던 테츠(TESTU), 전성기를 맞이하기 직전 불미스러운 일로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을 탈퇴했던 사쿠라(SAKURA)를 주축으로 결성된 지그조가 활동을 중단한 것이 2001년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베이스 볼 베어가 결성되기도 한 해이죠. 누군가 사라진 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메우듯, 선배가 없는 동안 후배는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시간을 창작의 고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반복하며, < 新呼吸(신호흡) >(2012)과는 또 다른 의미의 걸작 < 二十九歳(29살) >을 완성.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을 때 가볍게 그 임계점을 돌파하는 관록에서 이제는 여유까지 느껴집니다.
힙합그룹 라임스터(Rhymester)의 래핑이 펑키한 커팅 스트로크 위를 거니는 'The Cut', 그룹 특유의 코드감으로 무장한 기타 록에 팀파니의 웅장함을 더해 '너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어라'라고 외치는 'ファンファーレがきこえる(팡파레가 들려와)' 등, 전작에 응집해 있던 여러 정서가 수많은 갈래로 뻗쳐갈 즈음, 잊고 있었던 그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신작을 내놓았습니다. 개러지와 펑크를 기반으로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를 담은 < FOREVER YOUNG >은 그 거친 질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매력적인 작품인데요. '세상의 끝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춤추자/ 내일 아침까지 이 밤은 영원하니까'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Forever young'은 진짜를 상실한 채 콘셉트와 미디어에 매몰된 요즘 세대의 밴드들을 일갈하는 용도로 손색이 없는 곡입니다.
능력치의 한계치를 꾸준히 늘려 흩뿌려온 자들과, 긴 공백기 동안 묵혀있던 것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자들의 차이는 이렇듯 음악에서 명확히 나타납니다. 스타일의 상이함에서 비롯된 감상일수도 있겠지만, 각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음악에 투영되는 각오나 애티튜드의 모양이 현격히 다르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각기 다르게 완성시킨 자신들만의 철학은 올 한 해를 보내는 저의 마음가짐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요.
아카이코엔(赤い公園) < 猛烈リトミック(맹렬 리트미크) >
키노코테이코쿠(きのこ帝国) < フェイクワールドワンダーランド(Fake World Wonder Land) >
촉망받는 신예 시절을 벗어나 이젠 뭔가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아카이코엔은 잡식에 가까운 장르 포용력과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구성미를, 키노코테이코쿠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구현한 섬세한 미학을 강점으로 일찌감치 록 신의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았던 팀들인데요.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어필할 확실한 한 방이 부족해 그 행보가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수많은 밴드들이 그랬듯, 그저 가능성이 가능성만으로 머무르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렇듯 같은 상황에 놓여있던 두 팀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려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전에 비해 확실히 귀에 꽂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일부러 꼬아 놓았던 악기 편성이나 곡 구성을 단순화하고 멜로디를 중점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오롯이 내던 시기를 거쳐, 이제 어느 정도 그 목소리를 사람들이 듣기 좋게 내는 방법을 알았다고나 할까요.
아카이코엔의 경우, 이것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트랙이 바로 리드곡 'NOW ON AIR'입니다. 덥스텝과 키보드, 디스토션 등을 넣고 마구 흔들어 시작하는 인트로를 비롯, 얽혀있는 수많은 소스들을 소외되는 이 하나 없이 버무려 낸 사운드 프로듀싱은 러닝타임 전반을 지배하는 치밀함에 대한 하이라이트 모음집에 가깝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압도적인 반주에 보컬이나 선율이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잘하는 부분은 더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완벽히 메워낸 이 곡 하나 만으로도, 아카이코엔의 2014년은 이미 '완생'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네요. 불안한 코드감의 키보드와 앰프의 노이즈로 시작해, 사이키델릭한 기조를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멜로디의 힘을 여실히 실어내는 '風が知っている(바람은 알고 있어)', 현악편곡이 가세해 비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ドライフラワー(Dryflower)'와 같은 트랙들이 저의 극찬을 과장이 아니게끔 배려해주고 있습니다.
키노코테이코쿠에게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유라유라테이코쿠(ゆらゆら帝国)로 시작해 넘버 걸(ナンバーガール)이나 슈퍼카(SUPERCAR) 등이 이어온 일본식 슈게이징과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졌던 전작들에 비해, 좀 더 '찾기 쉬운 미로'를 제시하며 대중들의 길잡이 역할을 자처합니다. 뿌연 디스토션이 만들어내는 노이즈, 리버브가 강하게 걸려있는 기타, 과격하게 몰아치는 드럼 속에서 울려 퍼지는 사토의 청명한 보컬은 등대 불처럼 듣는 이를 본인들이 의도하는 심상으로 유도합니다. 다만 전과 다른 것은 그 불빛이 전에 비해 유례없이 밝고, 전파 범위 또한 넓어졌다는 점이겠지요.
이전에도 'The SEA', '風化する教室(풍화하는 교실)'와 같은 대중적인 곡들이 존재했지만, '東京(도쿄)'와 'ヴァージン・スーサイド(Virgin's side)'에서의 보컬과 연주는 전에 없는 심플함으로 어필합니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상당했을 듯싶은데요. 이처럼 대중성의 도입을 타협이나 양보가 아닌 발전적 요소로 받아들인 이들은 각기 다른 '2집'을 기대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완성시켰습니다. 말이야 쉽지만 그 과정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리화(Rihwa) < BORDERLESS >
오오모리 세이코(大森 靖子) < 洗脳(세뇌) >
음원시장에 최적화 된 니시노 카나나 메이제이와 같은 발라드 군집, 그리고 유이(yui)의 뒤를 잇는 미와(miwa)나 카타하라 리나 등의 어쿠스틱 군집, 여기에 유키(YUKI)나 시이나 링고(椎名 林檎)나 처럼 확실한 정체성을 보유함과 동시에 퍼포먼스에 있어 전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코미나미 야스하(小南 泰葉)나 고토 마리코(後藤 まりこ)와 같은 아티스트 군집.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신은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뉘는 듯합니다. 이 중 올해의 추천작은 각각 첫 번째와 세 번째 카테고리에 속하는 리화와 오오모리 세이코의 작품입니다.
리화는 'Last love'(2013)로 많은 리퀘스트를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이미 20대 여성들의 워너비가 된 니시노 카나나 정통 보컬리스트 노선을 지향하는 아야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한 스타일로 느껴지곤 하는데, 상대적으로 그에겐 이러한 인상이 덜하다고 할까요. 분명 선배 여가수들의 레퍼런스가 묻어나긴 하지만, 그 이상의 표현력으로 로큰롤, 발라드, 업템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중입니다. 프로모션 곡이 대개 발라드였던 것과는 다르게, 앨범은 활기 있는 곡이 많다는 점도 반전인데요. 'CHANGE'와 'Little Tokyo', 'Don't be afraid'와 같은 팝록을 지나 가스펠을 살짝 덧칠한 'LOVE ME DO', 미셸 브랜치(Michelle Branch)가 피쳐링한 컨트리 록 'GOOD LOVE' 등 자신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탄탄한 프로듀싱 위에서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約束(약속)'와 같은 곡을 듣다 보면 그의 본령은 역시 발라드구나 싶네요. 누가 들어도 거부감 없을 2014년의 스탠더드 팝 앨범입니다.
반면에 오오모리 세이코는 독특함이 정도를 넘어갑니다. 앞서 언급했던 고토 마리코처럼, 음악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비음이 심한 보컬과 열정적인(나쁘게 말하자면 지 멋대로인) 라이브 퍼포먼스로 인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법 합니다. 메이저 데뷔작은 록을 기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소녀의 마음을 EDM 구성으로 풀어낸 'イミテーションガル(Imitation girl)', 신시사이저 리프 위로 '나 성격 별로라서 걔 나한테 싫은 말 못해'라고 이야기하는 'きゅるきゅる', 실내악을 연상케 하는 현악 편곡 위로 시종일관 의미없는 노랫말을 읊는 'ナナちゃんの再生講座(나나짱의 재생강좌)' 등을 듣고 있자면 처음엔 거부감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묘하게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차하는 순간 '子供じゃないもん17(어린애가 아니야17)', '呪いは水色(저주는 물 빛)'가 전해주는 의외의 어쿠스틱 감성에 마음을 완전히 지배당해 버리고 말겁니다. 새삼 서브컬쳐의 힘을 재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죠. 어느 정도의 장벽만 극복한다면,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성을 접할 수 있는 작품임에는 확실합니다. 곡들이 담고 있는 정보량이 꽤나 많음에도 이를 안정적으로 정리해내는 역량은 오랜 커리어로부터 얻어낸 산물이겠지요. '교과서 같은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냐, 꿈같은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냐'라는 가사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고 싶은 그의 자아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음악적 한계를 모두 제거한 뒤 '오오모리 세이코'라는 집만을 남겨둔, 자유도 넘치는 올해의 문제작입니다. 아, 앨범은 적응하셨더라도 라이브는 또 다른 관문이라는 점,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 < ATTACK 25 >
타케우치 마리야(竹内 まりや) < TRAD >
< ATTACK 25 >의 실질적인 첫 곡 'ONE LAST DANCE, STILL IN A TRANCE', 그리고 < TRAD >의 첫 곡 '緑の糸(초록실)'을 들으신다면 '아,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지 않을까요. 드림스 컴 트루의 데뷔는 1988년, 타케우치 마리야의 데뷔는 그보다 10년 빠른 1978년입니다.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것을 뮤지션의 죄악으로 삼기도 하지만, 그대로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는 법이겠지요. 이 두 뮤지션은 약간의 보폭변화는 있었을지언정,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과 음악을 꾸준히 발표하며 활동해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약속한 듯이 같은 해에 앨범을 내놓았는데요.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여전히 좋은 수록곡들로 침체된 팝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먼저 드림스 컴 트루 이야기부터 해보죠. 초창기의 짙은 블랙뮤직의 향취가 옅어진 감은 있지만, 원맨 아카펠라로 도입부를 장식한 'あなたにサラダ以外も(그대에게 샐러드 이외에도)', 1990년대 코무로 테츠야의 음악들이 떠오를 법한 댄스튠 'I WAS BORN TODAY!!', 레게 리듬의 'MONKEY GIRL' 등의 시도들이 그 자리를 무리 없이 메워냅니다. 물론 멋들어진 펑크(funk) 트랙 '軌跡と奇跡(궤적과 기적)', 겨울 분위기 물씬 나는 발라드 대작 'さぁ鐘を鳴らせ(자 종을 울리자)' 같은 익숙한 매력의 곡들도 빠지지 않습니다. 무려 17번째 작품임에도 아직까지 그 호흡이 건재합니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또 어떻습니까. 초반부만 딱 들어도 반가운 익숙함이 한가득 입니다. 남편이자 일본 스탠더드 팝의 장인인 야마시타 타츠로(山下 達朗)의 지휘 아래 6년 동안 쌓아온 8장의 싱글과 셀프 커버곡들을 수록, 거의 베스트에 가까운 볼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오리콘 정상을 차지함으로서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서 최고령 기록이라는 영예를 얻기도 했죠.
소울과 펑크(Funk), 가스펠 등의 영향이 강한 야마시타 타츠로의 편곡과 이를 거드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작곡 및 가창을 기반으로, 故 오타키 에이치(大瀧 詠一), 사노 모토하루(佐野 元春)와 더불어 나이아가라 트라이앵글의 한 축이었던 스기 마사미치(杉 真理)가 작곡한 명발라드 'Dear angie〜あなたは負けない(당신은 지지 않아)', 처음으로 탱고에 도전한 '最後のタンゴ(최후의 탱고)' 등이 구성을 알차게 만들어줍니다. 여기에 쿠와타 케이스케(桑田 佳祐), 하라 유코(原 由子) 부부와 26년 만에 호흡을 맞춘 엔카 풍의 '静かな伝説(조용한 전설)'은 새삼스레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하며 소소한 감동까지 배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꾸준히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또한 커지게 되네요.
피에르나카노(ピエール中野) < Chaotic Vibes Orchestra >
요네즈 켄시(米津 玄師) < YANKEE >
린토시테시구레(凛として時雨)의 드러머 피에르나카노, 보컬로이드를 다루던 하치라는 예명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 원맨 뮤지션 요네즈 켄시. 2014년은 이 두 사람이 꿈꾸던 음악을 현실화 시킨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룹의 일원이기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 혹은 재정적인 한계가 있는 인디뮤지션으로 참아야만 했던 것들. 마음속에 벼르고 있던 생각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개인으로서도, 음악 신으로서도, 수용자들로서도 각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상상 이상의 파급효과를 일으켰습니다.
피에르나카노의 EP는 참으로 다양한 색채를 보여줍니다. 특히 드러머 20명을 초빙해 한자리에서 녹음한다는 전대미문의 발상이 돋보이는 첫 곡 'Animus'가 그가 펼치는 망상의 핵으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오케스트라를 배치하듯 왼쪽, 오른쪽, 가운데의 역할분담을 통해 웅장하고도 입체적인 드럼사운드 구현에 힘썼고, 여기에 관악기 및 < Final Fantasy Ⅷ-2 >의 삽입곡을 부르기도 한 오리가(ORIGA)의 보컬을 거쳐 엄청난 스케일의 곡을 탄생시켰습니다. 여기에 한 번도 공식적인 음원을 발매한 적이 없는 카오틱 스피드 킹(カオティック・スピードキング), 타마스지 쿨 제이 타로(玉筋クールJ太郎) 등과 같은 개인 프로젝트의 곡들도 수록. 전자에서는 파워 드러밍의 진수를, 한쪽에서는 스틱 대신 마이크를 든 래퍼의 모습을 피로합니다.
아직 끝이 아니죠. 결정타는 편곡과 기타에 타키 요시미츠(滝 善光, 9mm Parabellum bullet), 베이스에 미토(ミト, クラムボン), 보컬에 오오모리 세이코를 초빙해 록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チョコレイト・ディスコ(Chocolate disco)'입니다. 초창기부터 퍼퓸 팬클럽 회원임을 공언하는 등, 지지자로서 보내는 응원의 목소리라고 보면 될까요. 여기에 그가 녹음해 보낸 드럼 파트를 전자음악 뮤지션인 우시오 켄스케(牛尾 憲輔)가 해체시켜 재정립한 일렉트로니카 트랙 'double pendulum'까지.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을 꽉꽉 채워 담아낸, 단 1초도 흘려보낼 수 없는 그의 변화무쌍한 음악세계의 만끽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요네즈 켄시는 모든 작업을 혼자서 홈레코딩으로 일궈낸 전작 < diorama >(2012)를 통해 평단의 호평을 독식했던 신인이었죠. 이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도입한 것이 바로 그가 동경해왔던 '밴드 사운드'였습니다. 여건 상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죠. 메이저 진출 후 첫 싱글이었던 'サンタマリア(Santa Maria)'는 그의 장점이었던 프로그래밍을 배제하며 기존의 팬들에게 낯선 광경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사실 이 때만 해도 너무 평범해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안겨줬지만, 앨범이 발매되고는 그런 소리가 싹 들어갈 정도로 여전한 감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장기는 아무래도 각 요소요소를 분해해 조립한 듯한 사운드 프로듀싱의 정교함이죠. 같은 악기 편성이라도, 그의 곡에선 소스끼리 부딪히며 생기는 반발력이 대단합니다. 마치 스쿼시처럼, 한번 강하게 쳐내면 여기저기 부딪히며 예상치 못한 속도와 각도변화를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여기에 리얼세션이 가세하며 그 굴절의 파고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MAD HEAD LOVE', 'WOODEN DOLL'과 같은 초반부 트랙만 거치더라도 그 파워업의 정도를 예측할 수 있으며, 슬로우 템포의 'アイネクライネ(Eine Kleine)'에서는 평소 배제하던 상업적인 코드진행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등 달라진 면모의 목격이 가능합니다. 특히 저는 보컬을 왜곡시켜 독특한 소스로 사용한 'TOXIC BOY'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기회를 맞아들이며 이뤄낸 다른 영역으로의 진출, 듣는 사람이 기꺼이 박수를 쳐줄만한 당당한 행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