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OP ALBUM of The Year[2021년]

총 스무장의 앨범을 뽑아봤습니다.

by 황선업

확실히 코로나로 인해 라이브가 주춤한 탓인지 밴드신 쪽에서 확 눈에 띄는 신예가 보이지 않는 한 해였습니다. 대신 우타이테/보카로P 쪽에서 다수의 스타가 탄생하며 한해 대중음악을 이끌었죠. 힙합 뿐 아니라 솔로 뮤지션들의 음악에서도 점점 트렌드와의 접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2021년 역시 여러 음악들이 저를 행복하게 했던 한 해 였는데요. 한해 결산으로 총 스무장을 뽑아봤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리스트임과 동시에 신의 흐름과는 동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그런 밸런스를 항상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글의 순서와 순위는 무관합니다!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 < Editorial >

자신들이 현 시점 최고의 팝 밴드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작품입니다. 전작 < Treveler >의 완성도도 대단했지만, 이 작품은 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단순히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마음이 강하게 반영된 수록곡들. 하던 것들은 더 잘하는 데다가,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시도들을 대중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 설득력을 부여하는 멤버들의 역량은 정말이지 감탄을 자아냅니다. 아카펠라나 EDM를 접목한 장르적 확장, 기상천외한 전조를 통한 과감한 멜로디 전개 등.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껍질이 다시 한 번 깨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한 장입니다.


핀란드(FINLANDS) < FLASH >

정석적인 방법으로 가장 큰 열량을 쏟아내고 있는 앨범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 작품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다른 멤버들을 떠나 보낸 채 홀로 포효하는 시오이리 후유코의 고집스러운 록 사운드는, 이번만큼은 어느 정도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해 듣는 이의 감정 분출을 돕는 매개체로 자리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그의 글쓰기와 어느 트랙에서도 그 볼륨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 디스토션은 말 그대로 날 것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죠. 이 작품을 들으며 마음에 억눌려 있던 것들을 한소끔 풀어내고 나면, 어느덧 그만큼 살아갈 기운을 얻어갈 수 있을리라 확신합니다. 서포트 멤버들의 힘을 빌어 휴게소 처럼 자리하고 있는 ‘ランデブー’에서 충분히 쉬어가시기를.


더 페기즈(the peggies) < The GARDEN >

처음 들었을 땐 전작의 연장선상으로 느껴졌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항상 밝지 만은 않은 그들의 속내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고 할까요. < Hell like Heaven >(2019) 이후 애니메이션 타이업과 라이브 활동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치가 아낌없이 반영되어 있는 두번째 작품은, 잠시 숨겨두고 있었던 인디즈 시절의 우울함을 애써 감추지 않습니다. 파워업한 키타자와 유우호의 송라이팅과 어느덧 유연성까지 겸비하게 된 합주의 역동성. 여기에 ‘Contrast’와 같은 곡에서 느껴지는, 자신들의 초조함과 우울함을 정면으로 맞이하며 파생되는 밴드 특유의 정서까지. 잠시 점에 수렴했던 이들의 감정선이 다시금 선과 면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상처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발할 수 있는 음악에의 진정성. 10개의 수록곡에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아이나・디・엔드(アイナ・ジ・エンド) < THE END >

솔로앨범 두 장과 빗슈(BiSH)의 일원으로서 한 장. 올해 그처럼 열일을 함과 동시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아티스트는 없을 겁니다. 아이돌 멤버에서 완연한 솔로 아티스트로의 발돋움. 아이나 디 엔드가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진화는, 어떠한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반전과도 같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처음으로 자신의 자아를 세상에 흘려보낸 이 작품에서의 충격이 가장 컸습니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표현력과 허스키 보이스를 기반으로 한 발군의 가창력은 러닝타임 동안 정말로 ‘끝’을 향해 가는 듯한 처절함을 동반합니다.


사랑도 쓸쓸함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그의 유니크함은, 그를 과소평가했던 이들에게 절망을 줌과 동시에 새로운 록스타의 등장을 염원하는 이들에겐 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프로듀싱에서는 역시나 카메다 세이지. 길게 잡아 최근 20년간의 여성 신예 솔로는 다 그의 손에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즛토마요나카데이이노니。(ずっと真夜中でいいのに。) < ぐされ >

솔직히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외연확장이라니. 사실 1집 < 潜潜話 >(2019)은 보카로P 들이 참여한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기시감을 가창력으로 극복한 느낌이었는데요. 이번 작품은 펑크(Funk)와 디스코와 같은 블랙뮤직과 더불어 피아노의 선율감과 쇼와 가요 느낌의 현악 세션까지. 여러 음악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며 복합적이면서도 풍성한, 이와 동시에 한방향으로 수렴하는 ‘즛토마요’만의 음악세계를 완벽히 구축해냈다는 인상입니다.


ZTMY라는 명의로 직접 편곡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전작과의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일텐데요. 비중이 확연하게 늘어난 리얼 세션과 더불어 랩이나 발라드,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하는 와중에 자신의 보컬 운용 역시 눈에 띄는 성장이 확인됩니다. 특히 ‘正しくなれない’, ‘お勉強しといてよ’의 후반부, ‘低血ボルト’의 간주에서 보여주는 소리들의 질서있는 부딪힘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시자와 카요코(吉澤 嘉代子) < 赤星青星 >

이번에도 그는 노래 속에서 다양한 화자로 분해 여러가지 사랑의 모습을 속삭입니다. 사실 처음에 들었을 땐 전작들 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워낙에 들으면 꽂히는 구절들이 많은 덕분에 야금야금 듣는 이를 잠식해 가는 중독성이 대단하네요.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기도 합니다. 각 트랙들이 그려내는 여러 연애감정을 변화무쌍하게 표현하는 그의 매력적인 음색은 여전. 특히 이전과 작업한 적이 없는 새로운 편곡자들과의 협업이 이전과는 다른 루트로 대중들을 인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봅니다.


자전적인 일면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테마로 곡들을 겹쳐가는 완숙한 프로 뮤지션의 실루엣. 게임음악과 같은 뉘앙스가 이색적인 ‘ニュー香港’, 곡 전반을 이끄는 현악 사운드 속에서 변덕스러운 연애감정을 사랑스럽게 그려낸 ‘鬼’ 등 허투루 들을 곡이 하나도 없는, 그의 디스코그라피를 수놓는 또 하나의 수작입니다.


오리사카 유타(折坂 悠太) < 心理 >

맥락은 전작 < 平成 >(2018)와 동일합니다. 가사만 읽으면 하나의 시가 되고, 여기에 록, 포크, 보사노바, 재즈 등 여러 종잡을 수 없는 장르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새로운 시대의 구전 민요라고 해도 손색이 없네요. 이번에는 좀 더 ‘합주’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일체감이 도드라지는 것이 특징이며, 우리나라의 이랑과 함께 하는 등 타 뮤지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는 등 타인과의 음악적 대화로 현 시대의 분열을 한편으로는 모노 드라마의 여운처럼, 한편으로는 축제의 화려함 처럼 풀어냅니다.


오리사카 유타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미덕은 그대로 둔 채, 내면의 생각을 바깥 세상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심상들. 지긋이 눈을 감고 꼭꼭 씹어 먹듯 들어본다면, 직접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통하는, 그런 공동체로서의 감각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로이(kroi) < nerd >

2017년 서치모스, 네버 영 비치, 요기 뉴 웨이브스가 일으킨 블랙뮤직 베이스의 믹스쳐 록 밴드 붐도 어느덧 5년. 서서히 한 챕터를 끝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무수한 팀들이 그들의 바통을 이어 받으려 기세 좋게 달려 들었으나 선구자의 위엄을 함부로 이어받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수 밖에요. 그런데 올해만큼은 크로이, 오츄니즘, 칠즈스팟 등 가능성이 보이는 팀이 여럿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했던 이들의 정규작 < LENS >(2021)의 아쉬움을 만회함과 동시에 한계 없는 자신들의 잠재력을 맘껏 개방하는 음악적 자유도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리드미컬함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곡조와 완벽한 완급조절의 구성이 빛나는 ‘Juden’의 흥겨움, 16비트의 하이햇을 중심에 두고 각 악기들이 타이트하게 교차하는 ‘Rafflesia’의 긴박함, 레트로 사운드로 이국적인 정서를 빚어낸 ‘おなじだと’의 빈티지함 등 정말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쌓아가는 각 트랙들의 정체성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되 결국은 ‘크로이’의 이름으로 수렴되어 갑니다. 정말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러닝타임이 짧다는 게 아닐런지요.


문 드롭(moon drop) < 拝啓 悲劇のヒロイン >

워낙에 밴드음악의 저변이 넓은 곳이라 그런지, 매년 새롭게 눈에 띄는 팀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어떤 이들은 획기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언뜻 보면 특별할 것 없어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맴도는 은은한 매력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연애’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자신들만의 러브 송을 써내려가는 이 4인조 팝록밴드는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겠죠.


믹스쳐 음악이 대세인 요즘에도 꿋꿋이 기타/베이스/드럼만으로 자신들만의 보폭을 보여주는 이들의 노래는, 순간보다는 영원을 향하며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상’을 친숙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탄탄한 송라이팅과 전체의 밸런스를 중시한 합주로 자극 없이 귀를 자극하죠.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낭비한 곳이 느껴지지 않는 ‘シンデレラ’의 충실함만으로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감지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로자리나(ロザリーナ) < 飛べないニケ >

멋진 보컬이 적격의 프로덕션을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발현하는 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시입니다. 허스키함을 기반으로 섬세하지만 강인한 정서를 지닌 음색으로 주목받고 있던 그였지만, 전작까지만 해도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느낌이었죠. 이번 작품은 대부분을 영미권의 R&B나 힙합, 그리고 K-POP에서 찾아볼 법한 비트 중심의 트렌디한 사운드로 꾸며 자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반복되는 멜로디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프레이즈를 짜고, 이를 자유로이 발현하는 듯한 가창. 보편적인 기승전결 위주의 멜로디 전개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성을 흩뿌리는 데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음을 결과물의 완성도로 증명합니다. 허무하고도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외침이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마저 아름답게 들릴 정도로 음악과 노래 간의 독보적인 조화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챤미나(ちゃんみな) < ハレンチ >

이 앨범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은 세가지입니다. 싱어로서의 면모를 부각시켜 얻어낸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다채로움, 마치 하나의 공연을 본듯한 감상을 가져다주는 완벽한 흐름,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가사에 반영해 듣는 이의 몰입을 유도하는 진솔함. 앨범의 타이틀로 ‘파렴치’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마이너스의 이미지는 있지만 그 단어가 주는 특유의 심지굳음이 좋아서’라고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작품에는 여러 편견이 부딪히더라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는 일종의 각오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트렌디한 사운드 뿐 아니라 아비치가 떠오를 법한 어쿠스틱 기반의 EDM를 도입하는가 하면, 능수능란한 보컬과 역동적인 비트의 합으로 의외의 댄서블함을 만들어 내는 등 음악적인 성장 또한 그 각오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太陽’, 리얼과 상상의 분기점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想像力’, 루키즘(Looksim)을 주제로 한 ‘美人’ 등 메시지적인 측면에서도 내면과 사회를 넘나들며 ‘챤미나’가 어떤 아티스트인지를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지금까지의 커리어에서 약간 부족하다 싶었던 부분을 딱 알맞게 채워준 퍼즐조각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카네코아야노(カネコアヤノ) < よすが >

1970년대의 일본을 이끌었던 핫피엔도를 위시한 포크 록을 기저에 깔고 컨트리의 목가적인 정서에 방 한켠을 내준 그의 나즈막한 음악소리. 그 애수 어린 곡조에 귀기울이다 보면 잠시 잊고 있었던 내면의 고독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리죠. 2년만의 정규작에선 코로나 속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독자적인 정서와 표현력으로 펼쳐내며 다시 한 번 귀를 솔깃하게 만듭니다. 단순한 구조의 레트로 록 사운드가 네버 영 비치를 떠올리게 하는 빈티지함을 지니고 있는데요. 그러한 심플함이 카네코아야노라는 보컬리스트의 전달력을 더욱 극대화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특정한 룰 없이 정말 마음가는 대로 흩뿌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 속엔 낭만과 그리움, 외로움이나 슬픔이 공존하죠. 결국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스러움과 그리움이 함께 휘몰아치는 매력적인 음색이 전하는 단짠단짠 포크송. 올 한 해를 통틀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제 내면의 자양분입니다.


키드 프레시노(KID FRESINO) < 20, Stop it. >

이 앨범이 남다른 인상을 주었던 것은, 한두번의 감상만으로는 앨범의 정체가 쉬이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표면상으로는 힙합으로 분류되는 래퍼/트랙메이커/프로듀서지만, 작품의 수록곡들은 장르의 일반적인 문법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습니다. “2020년 1월 본 이베어의 공연을 보고,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라고 언급한 그가 ‘좋은 음악’의 초안으로써 자신있게 선보인 4번째 정규작. 듣다보면 다소 불친절하고 불규칙하지만, 기존의 클리셰를 배제했기에 남들이 닿지 못한 ‘좋은 음악'의 경지로 한발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프로디지가 떠오를 법한 빅비트의 요소가 슬며시 고개를 드는 ‘lea saydoux’, 정글비트의 스피디함이 태초의 음악을 듣는 듯한 감상을 가져다주는 ‘Girl got a cute face’, 한 곡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이질적인 두 파트가 만나 곡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Cats & Dogs’ 등 최신 트렌드와 밴드 사운드를 무기로 러닝타임동안 탐구를 지속합니다. ‘자신의 가사관으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일본어가 많아’ 영어의 비중이 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죠. 개인적인 영감을 어떠한 틀에 가두지 않고 구현함으로써 얻어낸 새로운 음악의 경지. 듣는 이를 넘어 같은 아티스트들에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던 작품이라 확신합니다.


에이미(AAAMYYY) < Annihilation >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에 맞서, 우리의 삶과 생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공간감 있는 신스팝을 기조로, 캐치한 선율을 동반한 섬세한 가창을 통해 자신이 속한 템팔레이와는 다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탄탄히 구축해내고 있는 느낌이죠. 언뜻 듣기에는 조금은 침잠해 있고 어두워 보이지만, 그 안에서 ‘낙관을 배제한’ 자신만의 긍정과 희망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이는 앨범이 얼마간의 대중성을 담보로 하고 있는 덕분이겠죠. 왜곡된 기타의 디스토션이 너른 소리의 신시사이저와 맞물려 몽환적인 대기를 형성하는 ‘Leeloo’, 아티스트의 심상을 좀 더 다이나믹하게 그려내는 ‘PARADOX’, 어쿠스틱 연주를 타고 겨우내는 따스한 일면을 내보이며 여운을 남기는 ‘HOME’ 등 메시지와 대중성을 버무리는 그 역량을 어느 뮤지션 보다 탁월하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마냥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어려운 이 때, 그 중간점에서 이상적인 포지션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의의 아닐까요.


코코(Cocco) < クチナシ >

커리어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좀처럼 그 음악이 촌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의 자신만의 스타일이 공고하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1996년 데뷔해 어느덧 활동 25주년을 훌쩍 넘긴 그의 열한번째 정규작은, 여전한 에너지를 동반해 삶에 대한 자신만의 고민과 생각을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자택에서 제작한 데모로 시작된 결과물이라는 점인데요. 비대면 시대에 접어들며 조금 더 심플한 음악으로 공격태세를 바꾸어 가는 신의 경향과 반대로, 얼마든지 스케일 큰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음을 이 베테랑 아티스트가 의욕적으로 증명합니다.


묵직한 밴드 사운드를 등에 업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ひとひら’, 탱고의 정열이 이국적인 신을 연출하는 ‘悲しい微熱’, 피아노 한 대와 코러스를 동반해 합창곡과 같은 장대한 스케일과 감동을 들려주는 ‘青葉’,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으로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견인하는 ‘朝満ちぬ’ 등 듣고 나면 ‘다시 한번 살아봐야지’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생명력을 건네 주는 그런 따뜻한 곡들이 가득한 앨범입니다.


엘라이자(ELAIZA) < 失楽園 >

첫 작품부터 이 정도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수 엘라이자라고 하면 처음 들으시는 분이 많으시겠지만, 배우 이케다 엘라이자는 아마 꽤 익숙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일본에는 배우-가수 겸업이 굉장히 흔한 케이스입니다. 보통은 배우의 인기에 기인해 노래로서도 성과를 거두어 보려는 기획사들의 권유에 의해 진행되곤 하는데요. 이로 인해 노래를 부르는 개인의 색깔보다는 프로듀서에 의해 주도되는 보편적인 대중성이 작품에 더 강하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작품은 정확히 그 반대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정말 자신의 보컬에 정확히 맞는 프로덕션과, 그에 맞춘 능숙한 가창이 첫 앨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언뜻 듣기에는 어둡고 습기찬 무드를 레트로 댄스와 시티팝, 스카, 발칸 뮤직, 인디 팝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콜라주하듯 덕지덕지 붙여놓은 인상을 주는데요. 그 안에 단단히 ‘엘라이자’라는 정체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덕분에 곡간의 이질감은 서서히 녹아 없어지며 결국에는 유기적인 흐름으로 귀결됩니다. 배우 ‘이케다 엘라이자’와는 전혀 다른 자아임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엘라이자’의 데뷔작. 가수를 겸업하려는 배우들에게 있어 좋은 선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밀레니엄 퍼레이드(millennium parade) < THE MILLENNIUM PARADE >

킹 누의 작품에서도 이미 목격하셨겠지만, 츠네다 다이키의 음악세계는 그야말로 크로스오버의 연속이죠. 그 실험과 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본작은, 주변의 뛰어난 크리에이터들과 연합해 구축한 하나의 거대한 SF세계와 같은 인상을 줍니다. 필요한 장르라면 무엇이든 끌어오는 자유로움, 높은 수준의 라이브 사운드를 멋대로 자르고 이어붙여 새로운 소리로 탈바꿈하는 재능은 그야말로 압권. 여기에 대부분의 작사와 노래에 참여한 엘름호이와 프라이 데잇 나잇 플랜스의 존재감이 앨범의 해상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OST로 쓰일 법한 클래시컬 록 오페라 ‘2992’, 신시사이저의 다채로운 활용이 엿보이는 ‘Trepanation’, 츠네다와 이구치의 듀엣으로 삶 자체에 대한 개인의 혼돈을 그리며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곡 ‘FAMILIA’까지. 어느 샌가 일본음악의 미래를 현재로 소환해 내고 있는 이들의 행보, 그 스타일의 독자성만으로도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아사키(4s4ki) < Castle in Madness >

올해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 작품이 무엇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 한 장을 꼽을 것 같습니다. 혹시 올해 < 후지 록 페스티벌 >에서의 퍼포먼스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분류하자면 싱잉-랩을 구사하는 싱어송라이터 정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정의하기엔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최근 힙합 신에서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록과의 결합을 보여주는 ‘gemstone’이나 ‘ALICE’, 트렌디한 사운드에 하드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살포시 끼얹은 ‘FAIRYTALE’, 게임음악을 듣는 듯한 소스 활용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일렉트로니카 ‘OBON’ 등 전체적으로 자극적이면서도 센 사운드가 러닝타임 전반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허세와 거짓, 때로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자신의 겪는 충동을 있는 그대로 발산하는,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인 시세계를 표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향성이랄까요. 무대음악 제작 경험도 있는만큼, 비주얼을 포함한 퍼포먼스에서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식보이((sic)boy) < Vanitas >

트랩, 얼터너티브 록, 라우드 록 등을 융합한 사운드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래퍼의 두번째 정규작엔, 그 독자적 스타일을 완성형에 가깝게 담아낸 음악적 진화와 동시에 대중들을 사로잡을 매력적인 훅이 공존합니다. 프로듀서 KM의 진두지휘 아래 틀을 잡은 < CHAOS TAPE >(2020) 이후 또 한 번의 발전을 이뤄낸 셈이죠. 특히 LA에 체류한 2주동안 모든 곡의 녹음을 진행한 덕분에, 곡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이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뭐든 금방 사라지는 것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점에서, 오랫동안 세상에 남는 사운드를 추구했다”라는 이야기처럼, 유행과 한 발 떨어져 자신만의 사운드를 명확히 확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러닝타임동안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아티스틀과의 협업을 통해 곡마다 새로운 심상을 부여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하는 퍼포먼스 또한 발군. 일본 힙합 신도 유례없는 호황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장르 내에서도 다양한 경향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단(D.A.N.) < NO MOON >

밴드 형태로 구축하는 일렉트로니카의 신경지가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타이트한 리듬의 드럼과 다채로운 신시사이저 사이로 마치 대기와 같이 부유하는 보컬이 듣는 이에게 스며드는 6분 30여초의 첫 곡 ‘Anthem’만 들어도 이들이 구사하는 음악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그 우주여행은 점점 더 심연으로 나아가죠.


역시나 우주에 있는 듯한 공간감과 조금씩 가속을 붙여가는 사운드 메이킹이 인상적인 ‘The Encounters’, 여러 변주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9분여의 대곡 ‘Aechmea’, 디스토피아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광경을 구현한 프로그레시브 ‘No Moon’과 같은 곡을 듣다보면 온전히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소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약간 장벽은 높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에게는 간만에 음악 자체에 몸을 깊게 담근 듯한 체험을 가능하게 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결산 중 밀레니엄 퍼레이드의 앨범과 함께 듣다 보니, 결국 두 팀 다 시작은 라디오헤드의 < Kid A >(2000)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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