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오카 아이(冨岡 愛) 라이브 후기
유례 없는 일본 아티스트의 공연 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2024년이다. 느끼기에 연말까지 어림 잡아도 족히 3~40팀 이상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설마 내한을 오겠어 싶은 네임드 급들의 단독공연은물론이고, 여러 페스티벌 라인업에서 일본 밴드를 찾는 것도 이제는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여기에 원더리벳과 같은, 일본의 로컬 페스티벌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대규모의 이벤트까지 눈 앞에 둔 상황에서, 오랫동안 숨어서 이들을 응원해 온 일본음악 애호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어디에 갈지’ 고민해야 하는 기적같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듯 원래 인지도가 있던 뮤지션들이 한국을 찾는흐름과 비교해보면, 토미오카 아이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라 할만하다. 자국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기도전에, ‘クッバイバイ’가 쇼츠나 릴스를 타고 한국 대중들의 정서에 안착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는 SNS로 인해 국경의 문턱이 낮아진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곡이 담고 있는 조금은 고전적인 스타일의 대중성이 음악을 고르는 선택지에 또다른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이에 부응하듯 토미오카 아이 본인 역시 이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며 바다를 건너와 깜짝 버스킹을 연다던가, 한국 뮤지션이나 인플루언서들과 합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이틀간의 단독공연은 이 기세를 등에 업고, 순간적인 화제를 장기적인 팬덤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담긴 이벤트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 느껴졌다.
둘째날인 일요일 공연은 그야말로 바다 건너 나라에서의 서사를 견고하게 쌓아나가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진심이 가득 느껴진 순간이었다. 한국의 거리를 걷는 영상을 별도로 준비해 송출하는 인트로부터, 세션을 대동한 풀 밴드 공연을 이 곳에서 보여줄 수 있어 꿈이 이뤄진 것 같다는 MC, 한글 버전의 ‘クッバイバイ’, 그리고 곧 OST로 선보일 예정이라는 노래 ‘Step by step’까지. 데뷔 후 가지게 되는 불안감을 떨치고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도와준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일시적인 스페셜 콘서트가 아닌, 이 곳에서만 가능한 스토리텔링을 러닝타임 동안 끌고 나가며 관객들과의 정서적 일체감을 차근차근 구축해 갔다.
단순히 마음만이었으면 결코 좋은 라이브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디스토션의 볼륨을 한껏 올린 첫 곡 ‘アイワナ’에서의 로킹함은, 좋은 의미의 배신감을 가져다주며 히트곡으로 인해 정립된 정적이고 감수성 어린 캐릭터를 단숨에 날려버리며 ‘토미오카 아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했다. 이처럼 스튜디오 앨범보다 훨씬 역동적이고도 파워풀하게 편곡된 밴드 세션은 그가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다양한 캐릭터를 발산하는 지지대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라이브에 걸맞는 성량과 표현력은 레코딩과는 명확히 선을 그으며 자신이 ‘로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어진 지올 팍과의 듀엣은 ‘알앤비 싱어’로, 기타 한대로 소박하게 접근한 무대에선 ‘발라더’로 변화무쌍하게 자신의 페르소나를 바꾸어 냈다. 이어폰으로들을 땐 그의 보컬에 담긴 감정과 정서에 집중하게 된다면, 공연은 무대라는 팔레트 위에 펼쳐지는 그의 다채로운 색채와 매력을 경험하게 된달까. 아직 발표한 곡이 많지 않음에도, 곡들의 완성도가 고르게 좋다는 사실도 새삼 느끼게 된 90여분의 러닝타임이었다.
다만 공연 경험이 많지 않은 탓인지 살짝 곡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던가, 세트리스트의 한계로 분위기가 조금 급하게 전환된다던가 하는 아쉬움 또한 존재했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것은, 이 공연이 순간적인 인기만으로 쉽게 접근한 라이브가 아니라는 사실, 무엇보다 ‘クッバイバイ’에 집중되어 있던 자신의 장점을 보다 넓은 범위로 확장해 어필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성장해 가는 경험은, 해외 뮤지션과는 쉽게 그려낼 수 없는 풍경이다. 이 이틀 간의 공연은, ‘지금의 토미오카 아이’를 넘어 ‘앞으로의토미오카 아이’에 대한 기대감의 씨앗을 심는 그런 순간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월에 있을 팬클럽 투어와 원더리벳 페스티벌, 그리고 내년에도 이어질 라이브에서의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가 써내려가는 한국과의 내러티브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