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네번째 결산!
2024년 일본음악 앨범 결산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25장을 뽑아 보았습니다. 순서는 무순!
요네즈 켄시(米津 玄師) < LOST CORNER >
작금의 일본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모두 요네즈 켄시를 찾고 있다.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CM 등 분야의 구분 없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그의 작품이 시대가 원하는 대중성이라는 과녁의 정중앙을 향하고 있는 덕분일 테다.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Lemon’이 수록된 전작 < STRAY SHEEP >의 아성을 가뿐히 넘어서는 본작은, 보다 방대해진 볼륨 속에서 그의 삶 속 순간순간 스쳐지나갔던 영감을 음악으로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타이업 싱글이 절반 정도를 차지함에도 풀렝스에서는 결코 앨범이 의도한 바운더리를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우며, 트랙간의 명확한 차별점은 그의 음악에 장르라는 잣대를 대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한다. 점점 더 커져가는 기대에서 비롯되는 압박감 속 유의미한 발전, ‘천재’로서 등장했던 그가 알고보니 무려 ‘성장캐’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현 시점에서 요네즈 켄시를 이길 자가 없다는 사실, 그는 이 사실을 < LOST CORNER >로 재차 증명해내고야 말았다.
빌리롬(Billyrrom) < WiND >
서치모스 이후 촉발된 블랙뮤직 기반의 믹스쳐 밴드 신은 요 몇년간 격변을 거듭해 왔다. 크로이, 오츄니즘, 칠즈팟, 요나요나 위켄더즈, 요나오 등 꽤나 영향력 있는 신인들이 발굴되어 활발히 자신의 영역을 확장 중인 와중에, 먼저 출발선에서 달려나간 선배들이 긴장해야 할 후발주자로 언급하고 싶은 이가 지금 소개할 6인조 밴드 빌리롬이다. 이들 역시 소울, 펑크, 록 등을 기반으로 자유자재로 섞고 흔들어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나, 장르간의 중간점을 잡기 보다는 트랙마다 좀 더 명확한 방향성과 사운드 구사를 통해 앨범의 축을 잡아나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 특히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운 구성을 통한 웅장한 스케일을 다수의 수록곡에서 선보이며 자신의 장점을 명확히 어필하고 있다.
YMO가 촉발시킨 신스 팝의 유산을 심은 ‘Apollo’, 킹 누의 ‘飛行艇’에 비견할만한 압도감에 블랙뮤직의 유려한 감성을 심는데 성공한 ‘DUNE’, 정적인 무드로 시작해 사운드를 점차 쌓아나가 후반부의 기타 솔로로 장대히 마무리하는 6분 51초의 블루지 대곡 ‘SERENADE for Brahma’을 특히 추천. 융합을 통한 만듦새, 선율과 보컬이 보유한 대중성, 훨씬 큰 캔버스에 고해상도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에서 이들의 긍정적인 미래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야말로 올해의 발견.
산쥬고텐나나(35.7) < 書を捨て、歌を編む >
일견 평범하지만 내실이 단단하고 충실하다. 이 앨범을 들으며 느꼈던 감상이다. 기본적인 기타 록 편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구성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합주와 직선적이면서도 보편적 매력을 지닌 송 라이팅, 여기에 작사를 맡고 있는 보컬 타카하시 특유의 문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까지. 게임을 하기 위해 새로 익혀야 하는 복잡한 조작법이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느껴지듯, 가끔씩 명쾌하고도 익숙한 그러면서도 잘 만들어진 작품을 찾게되곤 하는데, 이 작품은 이 개인적인 니즈에 정확히 부합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순수한 기타 록 그 자체로 승부하는 팀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우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을 밀어붙여 이뤄낸 성과, 박수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치바 유우키(千葉 雄喜) < STAR >
이 앨범을 통해 랩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영역을 걷고 있음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는 그. 코(KOHH)를 이은 치바 유우키 명의로의 커리어 시작이었던 ‘チーム友達’이 일본 힙합 신에 큰 파장을 일으킨 직후 바로 이와 같은 흉내가 불가능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비범함이 엿보인다. 이 작품을 연간 결산에 포함시킨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우선 정박에 대한 강박을 버린 그의 플로우에 주목할 법하다. 그의 래핑은 비트에 어긋난다는 인상을 줄 정도의 밀고 당김을 러닝타임 전반에 심어놓았다. 그 불안정함이 주는 팽팽한 텐션과 긴박감이 여타 랩 앨범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오묘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해주더라는 이야기.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접근법을 통해 풀어가는 그만의 스웩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 특히 ‘新品無地T’의 후렴에서 ‘무지티/이레즈미/도모타치니/미료쿠테키’로 라임을 껄렁하게 맞춰나가는 그의 모습엔 약간의 헛웃음을 얹은 상태로 혀를 내두를 정도. 치바 유우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랩의 맛’이 트랩이라는 재료와 만나 러닝타임을 잘 버무리고 있는 작품.
리콘덴세츠(離婚伝説) < 離婚伝説 >
앨범의 높은 완성도는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시티팝을 절묘하게 재해석해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 낸 ‘愛が一層メロウ’를 통해 음악성에 대한 검증은 어느 정도 끝난 상태. 그런 상황에서 선보인 첫 정규작은, 그 기대를 뛰어 넘어 확장된 외연을 통해 폭넓은 세대의 청취자들을 매료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시티팝과 더불어 신스팝, 퓨전재즈, 80’s 아메리칸 팝, AOR 등 다양한 사조를 바탕에 두고 일본 특유의 정서와 그 보폭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사뭇 흥미롭다.
마츠다 아유무의 폭넓은 음역대를 기반으로 한 뛰어난 보컬 역량은 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조타수를 돌리고 있으며, 유수의 세션들과 합을 맞춰나간 합주 역시 감탄만 나오는 수준. 1970년대 뉴뮤직에 빚을 진 ‘眩しい、眩しすぎる’, 인트로의 신시사이저를 거쳐 진행되는 보컬과 멜로디가 어딘가 우리나라의 1990년대 가요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萌’, 까마득한 선배 그룹인 튤립(TULIP)의 오마주와도 같은 ‘さらまっぽ’ 등 다양한 지향점으로 뻗어나가는 그 멜로우한 세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그런 앨범이다.
라나(LANA) < 20 >
어느 정도 정점에 올라 있는 자신의 역량과 기세가 결과물에 잘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곳곳에 심어 놓은 개인의 서사가 작품의 설득력을 배가시키며, 랩과 노래를 가리지 않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러닝타임 전반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으로 언급할 만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전개 속 적확하게 기용한 피처링 진은 앨범의 킥으로 작용하며, 둔탁한 베이스 중심의 ‘2021’과 어쿠스틱 넘버 ‘it’s okay’처럼 상반된 분위기의 곡을 연달아 배치하는 과감함은 위화감이라는 리스크에서 벗어나 앨범을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20살이라는 나이를 맞아 펼치는 완연한 날갯짓, ‘힙합’이라는 틀에서 탈피해 비비드한 팝 뮤직을 여실히 펼쳐보이고 있는 역작이다.
클랭 룰러(Klang Ruler) < Space Age >
캬리파뮤파뮤를 중심으로 도쿄와 하라주쿠의 패션과 음악,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하라주쿠 컬쳐’를 국내외로 널리 퍼뜨렸던 소속사 아소비시스템. 아타라시이각코노리다즈나 프루츠 지퍼도 그들의 개성을 가감없이 전파하며 2024년 한해 큰 활약을 펼쳤지만, 음악적인 완성도 측면으로 보자면 이 5인조 밴드의 데뷔작을 따라오지 못한다 단언할 수 있다. 장르적인 미감을 한껏 살리면서도 단순한 레퍼런스에서 나아가 뛰어난 송라이팅과 곡 마다의 다채로운 편곡, 욘키와 야스다 치히로로 구성된 혼성 보컬의 하모니를 묶어 올해 가장 들을만한 팝 앨범 중 하나로 이 작품을 규정짓고 있다.
빈티지한 신시사이저의 레이어 사이로 한줄기 빛과 같이 스며드는 파퓰러함이 두 보컬을 타임머신 삼아 마음껏 현재를 휘젓는 ‘ロストインメモリ’, 출렁거리는 베이스의 리듬감이 자연스레 듣는 이를 상상 속 댄스 플로어로 이끄는 ‘Set Me Free’, 아련하고도 서정적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며 다시금 떠나고 싶은 여운을 남기는 ‘君はファンタジー’ 등. 프로듀서와 트랙 메이커 전반을 맡고 있는 욘키를 중심으로 구축해 낸 이 레트로 앨범은, 과거의 디스코와 뉴웨이브, 신스팝을 한데 묶어 서브컬쳐가 폭주하는 21세기의 시공간에 전혀 어색함없이 안착시킨 영리한 데뷔작으로 자리한다.
즛토마요나카데이이노니。(ずっと真夜中でいいのに。) < 虚仮の一念に海馬に託す >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요 몇년간 최애로 군림하고 있는 영향으로 인해 이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듣고 또 듣고 또 들은 결과 결국 이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아니 올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데뷔 이후부터 워낙에 완성도가 높은 트랙들을 연달아 발표해 왔기에 이 EP를 처음 들었을 땐 다소 심심하고, 임팩트도 조금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 쉼없이 달려왔기에 날카로웠던 창작력이 다소 무뎌지는 시점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역시 공존했었다.
그런 와중에 감상을 거듭하다보니, 이 작품은 이전에 비해 운전대를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꺾고 있는 작품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하프와 관악기를 적극 활용해 클래시컬한 무드를 연출하는 ‘虚仮にしてくれ’, 완결형 프레이즈를 두번 반복해 후렴구를 만드는 작법으로 접근한 ‘海馬成長痛’, 재즈힙합을 대표하는 DJ 니시하라 켄이치로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플룻의 청명함을 내세워 비움의 미학을 구현한 ‘Blues in the closet’, 동창회를 잇는 라이브의 라스트 넘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곡을 지향하면서도 가사는 어느 때보다도 접근성 높게 쓰여진 ‘嘘じゃない’ 등. 쌓여가는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동어반복을 피하고자 하는 고민이 밀도 있는 해결책을 제안하는 여섯 개의 트랙은, 3개월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욱 새롭게 들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분명 개인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작품이다.
초도키메키♡센덴부(超ときめき♡宣伝部) < ときめきルールブック >
화려함의 극단을 달림과 동시에 퀄리티 역시 상향 평준화된 KPOP 역시 페이보릿 장르이긴 하지만, 그 트렌드 집약적인 모습에 어느덧 쌓인 피로감을 마주할 때면 별다른 장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AKB류의 아이돌 노래를 듣고 싶어질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 그 니즈를 충족시켜 준 해결사가 바로 이 작품이다. 모모이로클로버, 시리츠에비스츄가쿠를 성공시킨 스타더스트 소속 6인조 아이돌의 네번째 앨범으로, 버라이어티함과 다이나믹함이 쉬지 않고 몰아치는 테마파크 같은 구성을 자랑한다. 이쪽이라면 덴파구미미잉크가 있잖아요!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쪽은 과하지 않은 깨발랄함을 장착해 앨범을 통으로 듣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희망찬 무드의 ‘We Can Do It Now!’를 추천 트랙으로 꼽고 싶은데, 마침 2차 탄핵소추안 표결 시간에 맞춰 국회로 향하던 길에 이 노래가 우연히 플레이 되어 지금 상황에 참 잘 맞는 제목이네... 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생뚱맞지만, 그래서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헤디건스(Hedigan’s) < Chance >
서치모스가 2025년 부활을 선언한 이 시점에서, 이 작품을 듣다보면 혹시 욘스가 너무 바빠져 헤디건스의 활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 정도다. 무언가 과거와의 정신적인 교감에 초점을 둔 듯 했던 EP < 2000JPY >이라는 일종의 ‘음악의식’을 지나, 음악적으로 한층 구체화되고 선명해진 본작은 성격이나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무형’의 외연을 갖춘 모양새다. 구체화되었다는 것은 본격적인 밴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고, 무형이라는 것은 EP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사조와 어프로치가 담겨 있다는 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그 ‘선명한 무형’이라는 개념이 헤디건스의 첫 작품을 정의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19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로한 질감의 로우파이 사이키델릭 ‘地球(仮)’, 오타키 에이치가 떠오를 법한 서프 록 ‘マンション’의 초반 두 곡을 듣다 보면 도대체 이 작품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하는지 두려움부터 앞설 지경이다. 서치모스의 향수를 조금은 캐치할 수 있는 리드미컬한 연주의 ‘グレー’, 이어지는 모타운의 향수를 살짝 뿌린 목가적인 무공해 트랙 ‘再生’,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 중 한 곡을 어쿠스틱으로 재편곡한 듯한 느낌을 주는 ‘Mission Sofa’, 1970~80년대 일본 로큰롤을 성실하게 관철하는 ‘But It Goes On’ 등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멤버의 연주가 그야말로 ‘재생’해 내는 다채로운 소리들이 들을수록 밴드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아마 올해 이보다 더 흥미롭고 말 그대로 ‘재미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이 헤어 이즈 배드(My Hair is Bad) < ghosts >
타이업의 빈도가 높지 않은 팀인데 어느날 갑자기 극장판 < 크레용 신짱 >의 주제가를 맡았다고 했을 때 한 번 놀랐고, 이 ‘思い出をかけぬけて’를 듣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팀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곤 두 번 놀랐다. 어느덧 여섯 장의 앨범을 겹쳐낸 그들의 음악은, 밴드의 강한 에고만큼 이전에 비해 완전히 새롭다거나 하는 기색은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분명히 좋다. 공을 들여 구축해 온 3명의 유기적인 맞물림과 더불어, 어느 때보다 파퓰러한 송 라이팅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인 취향과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鳩かもめ’의 응집력 있는 후렴구, 悲劇のヒロイン’에서 들려오는 캐치한 기타 리프와 호소력 있는 보컬,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어느 때 보다 선 굵게 그려내고 있는 ‘結婚しようよ’ 등 자신들의 장점을 모든 분야에 있어 최고치로 끌어 올려 완성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들의 작품을 들으며 무언가 살짝 모자른 듯 했던 부분을 본인들이 직접 명확히 채워넣고 있다는 점. 그래서 더욱 나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밴드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입문작으로 추천하기에도 적합한 작품.
시이나 링고(椎名 林檎) < 放生会 >
사실 ‘대중음악 음반’으로 소개하기엔 조금 미안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클래식과 재즈, 라틴 팝 등을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과 버무려 이전보다 한차원 넓은 범위의 음악을 포용하고 있는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그를 만난지 사반세기가 지났건만 신보와의 첫만남은 항상 왜 이리도 낯선 것인지.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타이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人間として’, 특유의 쇼와 감성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은 시이나 링고표 브로드웨이 넘버 ‘私は猫の目’, 탱고의 강렬한 열기가 이 앨범을 월드뮤직의 영역으로 넓히는 ‘茫然も自失’와 같은 트랙들은 그와 오랫동안 동행해온 이들이라도 다시금 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되는 유니크한 소리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전작이 남성 뮤지션과의 듀엣, 그것도 비교적 연차가 높은 이들에 대해 전력으로 부딪혀 본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여성 뮤지션, 그것도 비교적 동년배나 후배들과 함께 그들의 길을 이끌어주고 함께 간다는 ‘동반자’ 내지는 ‘연대’의 의식이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퍼퓸의 멤버인 놋치가 처음으로 외부활동에 나서는 ‘1RKO’의 어프로치가 인상적이다. 귀로만 들어도 서로간의 리스펙이 교차하는 감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퍼포먼스다. 재차 우타다 히카루와 합을 맞춘 ‘浪漫と算盤’은 커리어 기반의 고혹적인 매력이 살아 숨쉬며, 홍백가합전에서 피로하기도 한 차란포란탄의 모모와의 합작인 ‘ほぼ水の泡’는 이 앨범의 음악적 지향점과 가장 그 결이 맞닿아 있는 트랙이라 할 만하다. 참 새삼스럽지도 않게 자신의 음악 커리어를 갱신해 나가는 그의 태연함. 참으로 대단할 따름.
콘튼 캔디(CONTON CANDY) < melt pop >
우연찮게 뜬 한 곡이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팀의 이미지를 규정지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2023년 바이럴 히트한 ‘ファジーネーブル’의 푹신한 팝 무드는 대중에게 단숨에 콘튼 캔디라는 이름을 알렸지만, 한편으론 본격적인 록 뮤직을 전개하고 싶던 멤버들에게 있어 일종의 장벽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제목부터가 < melt pop >. 팝으로 정의되어 있는 기존의 틀을 녹여 없애고 진짜 자신들의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탐 위주의 드러밍과 거친 질감의 기타 솔로잉이 팽팽한 텐션 ‘ロングスカートは靡いて’, 간질간질한 사랑의 모습을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일필휘지에 그려내는 ‘花びらと生活音’, 무게감 있는 합주 위로 호소력 있는 츠무기의 보컬이 겹쳐 울리는 ‘桜のころ’ 등. 아직은 갈 길이 조금 멀지 않았나 생각했던 이들이 이 꽉 찬 풀렝스 정규작으로 급격한 파워업을 이뤄낸 모습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일상성 있는 가사와 캐치하지만 뻔하지 않은 선율, 마냥 정제되지만은 않은 터프한 사운드 메이킹 등을 기반으로 감상과 라이브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물이며, 그렇기에 이 작품이야말로 콘튼 캔디의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성장캐를 이렇게 갑작스레 맞닥뜨렸다.
라우스바브(LAUSBUB) < ROMP >
2023년 일본 타워레코드를 들렀을 당시, 시청 코너에서 이들의 EP를 인상깊게 들었던 적이 있다. 조만간 뭔가 일을 내겠다, 좋은 작품을 낼 것 같다는 생각에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에 걸맞는 작품을 내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기본적으로 테크노팝/익스페리멘탈에 맥이 닿아있는 작품으로, 강한 댐핑의 비트를 중심으로 과거의 뉴웨이브와 현재의 일렉트로니카나 EDM의 요소까지 수용해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전자음악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본인들만의 팝 감각을 기반으로 비트나 선율을 다루는 위트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Telefon ~2024 Session ~’, 다소 가라앉고 어두운 신스 리프로 시작해 사운드 스케이프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는 ‘Sweet Surprise’, 테크노를 자신의 팔레트에 놓고 마구 채색해 이전에 없던 컬러를 발하게 만들고 있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조의 ‘I SYNC’와 같은 노래를 듣다보면, 막 스물을 넘긴 이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재능에 압도당하고 만다. 뉴진스가 학창시절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노스탤지어를 생성한다면, 이들은 학창시절의 혼란과 고민, 분노를 마치 추억처럼 떠올리게 만들어 준달까. 올해의 문제작이자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창작물로 꼽을만 하다. 조만간 라이브를 꼭 보고 싶은 팀 중 하나이기도.
그룹투(Group2) < Group2 X >
리버브가 강하게 걸려 있는 뉴웨이브 기반의 록 ‘Kai’, 굵은 리프를 중심으로 한 개러지 록 ‘C’mon’, 와우 페달을 활용한 기타 연주가 뇌리에 잔상을 남기는 멜로우 팝 ‘Ordinary’까지 듣다보면 이 팀은 또 어디서 뚝 떨어졌나 싶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믹스쳐 밴드가 등장하는 일본 음악 신에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새겨 넣을 수 있는 대단한 이들이 또 하나 등장했구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알고보니 결성은 2014년, 그냥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재차 일본의 음악 신은 크고 또 넓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카모토 신타로가 만든 운동장을 자기들 맘대로 뛰노는 듯한 인상의 ‘SMC’, 애써 다듬지 않은 드러밍 사운드 위로 여러 이펙트가 교차하는 ‘Syndrome’, 앨범을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현대적인 신스팝 ‘Utopia’ 등 ‘얼터너티브 사이키 팝 밴드’라는 수식어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광대한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유이(シユイ) < be noble >
또 하나의 우타이테 출신 아티스트의 걸작이라 칭할만한 앨범이다. 존-야키토리, 츠미키, 치노조, 료(Supercell) 등 세대를 아우르는 크레디트를 배후에 두고, 풍성하고 폭넓은 표현에서의 재능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담겨 있다.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해상도 높은 표현역량은, 상승 기조의 개방감이 일품인 ‘ハピネス オブ ザ デッド’과 따사로움과 여유를 한음 한음 심어가며 노래하는 ‘ひとちがい’의 초반 두 트랙을 비교해 보면 바로 감지할 수 있을 터. 곡 마다의 스타일이 상이함에도 단순히 트랙에 묻힘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충만히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곡 해석력 및 보컬 프로듀싱 측면 역시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22년에 이미 싱글로 기발매된 곡이긴 하지만) ‘君よ 気高くあれ’를 통해 한창 때의 슈퍼셀, 한창 때의 료를 다시 한 번 마주할 수 있어 좋았던 작품이기도.
피플 원(PEOPLE 1) < 星巡り、君に金星 >
확실히 요즘은 기타와 베이스, 드럼만 바라보고 달려드는 팀은 줄어들었구나 싶다. 더불어 정말 여러 곳에서 자신들이 구사하는 음악의 자양분을 가져오는구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고릴라즈, 호지어, 블록 파티, 밥 딜런, 안디모리 등.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이 일련의 아티스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공언하는 팀의 두번째 정규작은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음악성으로 감정이 말라버린 일상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다.
디스코 리듬을 기저에 놓고 비트의 볼륨을 올린 후 커팅 스트로크와 디스토션 솔로잉으로 장식을 더하고, 중간중간 신시사이저로 포인트를 준 ‘YOUNG TOWN’은 대중성을 추구하면서도 세세한 부분에 있어 얼마나 디테일한 만듦새가 들어가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트랙. 대부분이 싱글로 공개된 곡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베스트 앨범에 가까운 구성이 되어 있어 완성도 측면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으며, 이들로서는 드물게 ‘청취자를 향해 만든 곡’이라는 ‘鈴々’을 통해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마무리 되는 구성 또한 맘에 든다. 버라이어티한 팝/록 앨범을 만나보고 싶다면, 아마 차고 넘칠 정도의 만족감을 전해줄 앨범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아이나・디・엔드(アイナ・ジ・エンド) < RUBY POP >
아티스트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특히 아이돌 그룹 출신 멤버가 홀로 서 재차 독자성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만큼 극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최근에 그 감흥을 크게 가져다 준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하면 바로 아이나・디・엔드가 떠오른다. 어느덧 세 번째 정규작이 되는 신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에 대한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처절하게 내면으로 몰입해 왔던 지난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기어이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가, 조금씩 주위 사람들과 손을 맞잡으며 이를 공고히 해 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 덕분이다.
살짝 자가 증명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프로모션 트랙 ‘Poppin’ Run’을 통해 감지된다. 청량한 질주감으로 전에 없던 캐쥬얼함을 장착한 상태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내다시피 해 어떨 때는 듣는 이 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평소의 작법과 살짝 거리를 둔 가벼운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다. 그가 조금은 자신의 짐을 재패니스 팝의 정석이라 일컬어지는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クリスマスカード가 겨울에 맞는 적절한 계절감을, 린토시테시구레의 TK는 특유의 믹스쳐 하드록 질감을 ‘Love Sick’에 심어내며 긍정적인 이질감을 심어낸다.
이런 쟁쟁한 뮤지션의 참여에도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서포트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약 중인 나카무라 쇼코와의 협업곡들이다.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Entropy’와 ‘ハートにハート’, 煽り癖と泣き虫’ 등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내며 즐겁게 만들어 나갔던 기억이 온기 어린 빨강으로 구현되어 러닝타임을 물들인다. 스타일에 관계없이 허스키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넘쳐 흐를 정도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보컬 역량 또한 부쩍 성장해 17개 트랙, 71분여의 재생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 자신이 만든 탄탄한 기반과, 어느 때보다도 강조된 주변의 조력. 겨우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 그의 잠재력이 충만히 담겨 있는 이 보석상자, 오랫동안 소중히 아껴 듣고 싶다.
에코(a子) < GENE >
한 해 전에 인상깊게 들었던 싱글의 주인공이 풀렝스를 내면, 높은 확률로 올해의 앨범으로 꼽게 되는 것 같은데, 아코 역시 그 법칙에 꼼짝 없이 걸려들고 말았다.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를 기반으로 다른 이들에게서 접해보지 못한 아릿하고도 몽롱한 감수성을 앨범 전반에 흩뿌려 놓고 있으며, 시대의 트렌드와 선을 그은 독자적인 팝 뮤직이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리버브가 걸린 몽환적 소리 속 날카로운 가사를 나른하게 늘어놓는 ‘情緒’, 스피디한 얼터너티브 록의 흐름 속 기타와 콜 앤 리즈폰스를 주고 받는 ‘LAZY’, 순화된 드럼 앤 베이스와 레트로한 신시사이저가 만나 그의 노래로 만들어진 행성으로 새로운 우주를 구축해내는 ‘惑星’ 등 단순히 장르나 음악 스타일로 정의할 수 없는, 아티스트 본연의 스타일리시함이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뮤지션 본인의 존재감이나 개성이 가장 도드라지게 다가온 한 장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 MANSTER > < MANTRAL >
지금은 다소 과소평가 받는 분위기지만, 훗날 일본의 록 신을 돌아볼 때 분명 오자키 유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 작품이다. 매드체스터라는 새하얀 도화지를 독자적인 색채로 물들인 이 더블앨범은, 때로는 평행으로 때로는 겹쳐져 나아가며 부침이 많았던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현재가 폭풍우를 헤쳐 도달한 낙원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때로는 저돌적으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애수 어리게. 사실 이 앨범 속에 심어놓은 소재들은 분명 익숙한 것들이다. 결국 그 안에서 그 재료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뤄내느냐, 이와 함께 독자적인 센스나 킥이 임팩트 있는 시너지를 내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인상을 담아낼 수 있음을, 잠재력을 내포할 수 있음을 밴드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사운드의 경량화는 유지하면서도 BBHF에서의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인 어프로치 또한 생생히 살아있어, 어찌 보면 오자키 유키가 지향하는 그 목적지에 굉장히 가깝게 닿아있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알리스톡스(bialystocks) < Songs for the Cryptids >
얼터너티브라는 단어는 자신의 장르를 좀처럼 규정짓기 어려운 팀들에게 용이하게 쓰일법한 단어지만, 리스너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만큼 애매한 카테고리도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호키모토 소라의 팀으로 주목받았던 이들의 얼터너티브는 얼마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을까. 이들의 강조점은 사운드 전반에 깔려 있는 부유감에 찍혀있다. 안개처럼 자욱히 퍼져가는 사운드 속에서 어쿠스틱과 포크, 인디 록 등의 요소를 가져와 팔세토 어린 보컬과 뚜렷한 선율로 마감질하며 전에 없던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 나가려는 움직임. 앨범 타이틀 속 미확인물체(Cryptid)가 바로 자신들을 가리키는 단어임을 애써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토쿠마루 슈고의 어떤 한 곡을 가져와 살짝 매만진 다음 밀도 있는 코러스 워크를 앉힌 듯한 느낌을 주는 첫 곡 ‘空も飛べない’, 아카펠라에 가까운 중반부와 텐션 있게 전개되는 피아노 연주, 화성을 입힌 기타 연주로 하여금 마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창조한 듯한 인상을 주는 ‘Kids’ 등이 앞서 이야기한 포인트의 예시가 될 법하다. 다분히 실험적이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욕심을 넘어 더 나은, 그리고 새로운 팝을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그 독보적인 발걸음은 2024년 음악 신의 주요 장면으로 새겨놓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음악보다도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중친화적 얼터너티브의 진면목.
니코 니코 탄 탄(NIKO NIKO TAN TAN) < 新喜劇 >
디스코 기반의 활기 넘치는 에너지로 점철된 ‘Only Lonely Dance’, 공간감 있는 신시사이와 낮게 깔린 비트로 멜로우한 신스팝을 추구하는 ‘四時が笑う’, 댄서블한 트랙 메이킹에 집중해 인스트루멘탈에 가까운 구성을 선보이는 ‘Paradise’ 등을 듣다보면, 이들의 음악은 집단의 시너지를 노렸다기 보다 한 개인이 진득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세션들이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곡마다의 스타일을 모두 제각각이지만, 전반적으로 클럽 뮤직에 가까운 틀 안에서 멤버 오챤의 지휘 아래 에두름 없이 여러 장르를 흔들고 섞는 모습이 또다른 독자성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다른 팀들이 음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점을 달리고 있는 느낌이라면, 이들은 정말 음악 자체에 집중해 그 본질에 대한 가공을 섬세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인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면모가 발견되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끔 만드는 음악집단의 의욕작.
카리스마닷컴(Charisma.com) < Error40 >
이츠카의 1인 프로젝트로 새출발한지 어느덧 6년. 2023년 < MOBSTRONG >을 선보인 기점으로 다소 지지부진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반전되더니, 다시금 궤도에 올라왔음을 명확히 선언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랩이나 힙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카리스마닷컴이 지향하고자 하는 음악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부터 재정립, 다양한 뮤지션들을 초대해 그만의 설득력있는 팝뮤직을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역동적인 비트가 랩과 함께 타이트하게 밀어붙임과 동시에 명확한 후렴구를 장착해 임팩트 있게 출발 테이프를 끊고 있는 ‘Super Star’, 기타리스트 유미키 에리노의 도움을 받아 로킹한 면모를 선보이고 있는 ‘Lowguys’, 중간중간 반전을 꾀한 구성과 함께 어느 트랙보다 랩에 힘을 실으며 트렌디함을 적극적으로 흩뿌리고 있는 ‘BKLV’, 그루브를 부각한 레트로 팝튠이 다양성을 담보하는 ‘星空フィーリング’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록곡들은 카리스마닷컴의 이름으로 수렴되며 그 새출발을 아낌 없이 보좌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카리스마닷컴은 완연한 팝 프로젝트 유닛으로 재탄생했다.
험버트 험버트(ハンバート ハンバート) < カーニバルの夢 >
결성 25주년을 훌쩍 넘겨 선보이는 열두번째 정규작은, 고단하고도 복잡한 삶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혹은 너무 현란하고 트렌디한 음악으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그런 안식처로 자리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딱 필요한 만큼의 악기 편성과 함께 전해지는 사노 유호의 목소리와 메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나큰 휴식을 가져다 준다.
포크와 뉴뮤직에 기대고 있는 독보적인 팝 센스를 기반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편안한 사운드가 바람직한 ‘시대역행 음악’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리스트에서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부부이기도 한 두 멤버의 하모니가 작지 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In The Dark’는 올해 들은 러브 송 중 가장 따스하면서도 또한 가장 현실에 맞닿아있는 트랙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만이 범람하는 음악 신 속에서, 자신의 길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베테랑 뮤지션의 따뜻한 포옹과 같은 음악.
신도쿄(新東京) < NEO TOKYO METRO >
머리로 듣기 전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2024년엔 특히 이 작품이 그랬던 것 같다. 만듦새 전반에 깔려 있는 섬세하고도 디테일한 터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지 꿰뚫고 있는 듯한 송 메이킹과 연주에서의 센스. 사실 수록곡들의 면면을 따져 보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아님에도, 이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자신들만의 대중성으로 환원해 내는 앨범 속 솜씨는 이전부터 이들을 유망주로 거론해 왔던 이들에게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16비트의 리듬이 난무하고 또 교차하는 ‘Escape’의 합주는 경이로운 수준이며, 재즈의 즉흥성을 십분 반영한 약간의 불협화음이 곡에 유니크함을 부여하는 ‘Perrier’, 곡 초반의 키보드가 흥을 돋은 후 리듬 파트가 깔아놓은 판에 가세하는 랩과 노래가 우선적으로 자신들이 즐기고 있음을 여실히 공표하는 ‘Waste’ 등 쉽지 않은 요소들을 엮고 정제해 밴드뮤직으로 체화하고 있는 그 모습이 놀라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