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by 책한민국

변검은 중국 전통 가면 마술이다.
배우의 가면이 순식간에 바뀐다.

원리는 단순하다.
여러 겹의 비단 가면을 쓰고 있다가 재빠르게 하나씩 벗는 것이다.

핵심은 속도다.
한 손은 크고 화려하게 휘두른다.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다.

다른 손은 망토 속에서 슬그머니 가슴 쪽으로 올라오다가 가면 아랫부분과 연결된 실을 턱 밑으로 확 잡아당긴다.
느린 화면으로 봐도 참 빠르다.

사람은 모두 천부적인 변검술사다.
천 개의 가면을 휙휙 바꿔쓴다.
어쩌면 만 개일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라고 한다.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자아이다.

직장에선 직장인으로,
가정에선 가족 구성원으로,
친구와 어울릴 땐 친구로,
아무도 안 볼 땐 익명의 누군가로,
우리는 순식간에 변검한다.

혼자 있을 땐 더욱 그렇다.
마음속으로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화내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이 사람이 됐다가 저 사람이 됐다가 한다.

스스로 변검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얼굴에 서로 가면을 철썩철썩 붙여가며 논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원래 저러면 안돼, A형은 이래, INTJ는 저래, 서울 사람들은 이래, 어디 지방 사람은 저래, 별자리 전갈좌는 이런 성격이야, 무슨 띠는 이런 성격이야, 인간이라면 최소한 이래야지, 백인은 이래, 흑인은 저래, 중국인은 이래, 일본인은 저래, 나는 원래 예민한 사람이야, 난 그런 사람 질색이야, 난 착한 사람이야, 나는 죄인이야, 나는 사회주의자야, 나는 자유주의자야, 나는 잘났어, 나는 못났어, 난 이거 싫어, 저거 좋아, 난 이건 할 수 있고 저건 못해, 등등.

스스로 가면대로 행동하고 상대에게도 가면다운 행동을 요구한다.
‘꼴’값을 하는 것이다.

꼴값하면 괴롭다.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상어처럼.
따개비가 온몸을 뒤덮은 고래처럼.

그 가면들이 내 삶에 유리한가?
바람직한가?

그러면 계속 쓰고 있어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벗자.

나는 나를 누구라고 보는가?
화장과 치장과 위장과 변장을 벗어버린 진짜 ‘나’는 누구인가?

가면무도회는 끝났다.
가면의 미몽에서 깨어나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2025.1.16. 명상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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