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함이란 무엇인가?

by 책한민국

기독교 성서 첫머리의 창세기에는 신이 창조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에덴동산 이야기가 나온다.


신은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부부인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금지했다.


먹으면 뒈진다는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경고도 곁들였다.


그러나 금지는 욕망을 일으킨다.


게다가 그 열매는 하와가 보기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쁘고 맛있어 보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먹지 않을 도리가 있나.


시작은 사탄을 상징하는 뱀의 유혹이었지만, 그 열매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외형도 목숨을 건 하와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그들이 영적으로는 죽었다고 기독교에서는 해석하지만, 겉으로 볼 때 아무튼 그들은 살아남았다)


이전에는 편하게 동산의 열매만 따 먹고 살았지만, 그 이후로는 땀 흘려 일하고 땅을 경작해 먹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는 농경의 시작을 상징하는 신화다.


실제로 현대 인류학자들은 원시 수렵 채집 사회의 사람들이 농경 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적게 일하고 더 오래 여가를 즐기며 편하게 살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나 아마존 등 열대 밀림의 원주민들은 하루 두세 시간 정도만 일을 하면서 먹고 산다고 한다.


어쩌면 선악과는 농경과 문명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협력 사회를 가능케 한 ‘질서’일지도 모른다.


‘사피엔스’로 유명해진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 성공의 최대 요인은 대규모 협력이며, 그러한 협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 즉, 신화와 종교 등이라고 주장했다.


신화와 종교는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이놈!’, ‘천벌을 받을 것이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지옥에 간다!’ 등의 공포를 촉발해서 자발적인 복종과 협력을 일으킨다.


이처럼 질서는 대규모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큰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작용이 있는, 독이 든 사과이다.


법과 질서는 적절하게 사용되면 모두에게 바람직하지만, 지나치면 사람을 죽인다.


어떤 땐 바람직한 것도 어떤 땐 바람직하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바람직하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은 ‘바람’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즉, ‘바람직하다’라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품기에 적절한 대상을 묘사하는 말이다.


사람은 어떤 경우에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품을까?


혹은 품어야 마땅할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앞자리에 키가 2미터에 달하는 농구 선수들이 단체관람을 하고 있다.


화면이 절반도 안 보인다.


옮길 다른 자리도 없다.


이때 일어서서 보면 다리는 좀 아파도 화면은 잘 보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관람객 전원이 일어서서 본다면 그들 모두가 영화를 더 잘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처럼 나 개인적으로는 유익한 일도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같이 하면 유익하지 않은 경우가 삶에는 많이 있다.


새치기도 그렇다.


새치기하는 사람은 시간 절약이라는 이익을 얻는다.


목숨이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정말 큰 이익이다.


그런데 지하철, 버스, 상점, 병원에서 모두가 새치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질서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본다.


그래서 우리는 질서를 지킨다.


칸트의 정언 명령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일을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 일을 한다면 어떤 세상이 올지 상상해 보고, 썩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된다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새치기할지 말지 고민이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새치기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 세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다면, 너부터 새치기하지 말라는 것이 칸트의 말이다.


다시 말해 그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해도 괜찮을 법한 행동만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더 쉽게 ‘애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라고 표현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기차로 수송할 때의 일이다.


객차 하나에 수십 명을 가득 태우고는 물 180리터와 변소용 통 하나만 넣어주고 며칠을 계속해서 이동했다 한다.


서로 물을 먹겠다고 다툰 객차에서는 많은 사람이 도착 전에 죽었다.


그러나 한 슬기로운 노인이 있었던 객차에서는 원래 몸이 약했던 두 사람만 죽고 나머지는 모두 살아남았다.


노인은 작은 천 조각 하나를 인원수대로 잘라서 하나씩 나눠주고 아침저녁으로 물 한 잔씩 마시게 했는데 아침에 마실 때는 표식을 나눠주고 저녁에는 거둬들이며 모두가 공평하게 물을 먹도록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에디 제이쿠 저)에 나오는 실화이다.


(그 노인은 저자의 아버지였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질서는 대체로 이롭고 무질서는 대체로 해롭다.


즉 질서는 대체로 바람직하고 무질서는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사례를 고려하면 ‘바람직함’의 기준이 대강 드러난다.


첫째는 다수의 기준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도 세상이 어지럽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지는 결과가 나올 것 같은 행동이라면 바람직한 행동이다.


이것은 사회적 객관성이다.


대표적인 게 운동이다.


모든 사람이 날마다 적절하게 운동한다고 해서 무슨 해로움이 발생할 수 있을까?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이 없다.


따라서 적절한 운동은 바람직하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르므로 더욱 확실하다.


둘째는 장기간의 기준이다.


그 행동을 오래 계속해도 이로움이 더 크다면 바람직하다.


일시적으로만 바람직한 것들도 많다.


가령 단식이다.


너무 많이 먹어 문제가 되는 현대인들에게 한 달에 하루 정도의 단식은 보약이다.


그런데 40일, 50일간 단식을 하면 40배, 50배가 유익한가?


그러다 죽는다.


장기적인 단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것이든 길게 시간을 두고 보았을 때 이로울수록 더 바람직하다.


셋째는 더 큰 공간의 기준이다.


특정 지역에서는 바람직해도 전세계적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티베트 등 고산지역의 풍장이다.


고산지역엔 토양과 초목이 부족하다.


천지가 바위이고 초목은 한 줌뿐이다.


흙이 없어 시신을 땅에 묻기도 어렵고 나무가 부족해 불태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독수리들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풍장을 서울이나 뉴욕에서 하면 어떨까?


길마다 가로수 위에 새들이 반쯤 뜯어먹은 시신이 널려 있다면 어떨까?


바람직하지 않다.


풍장은 특정 지역에서만 바람직한 방법이다.


더 넓은 지역에 적용했을 때 더 좋을수록 바람직하다.


정리하면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해도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라고 본다.


바람은 본래 순풍과 역풍이 따로 없다.


그것은 오로지 배의 목적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


갈 때는 순풍이었던 게 올 때는 역풍이다.


바람직하다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없다.


인류의 멸종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핵전쟁이나 혜성 충돌이 무척 바람직한 사건이다.


내가 무엇을 지향하고 열망하며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서 바람직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한다.


즉 나의 가치, 지향점, 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은 너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소중한가?


그것이 당신의 가치이고 바람직함이다.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선이 등장하기 전까지 배들은 (노예들이 노를 저은 노예선을 제외하고) 모두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이었다.


순풍을 만나면 진행하고 역풍을 만나면 닻과 돛을 내리고 대기했다.


그런데 삼각돛의 발명으로 인해 범선도 순풍이든 역풍이든 전진할 수 있게 됐다.


(삼각돛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이 필요하고 설명이 길므로 생략한다. 궁금하신 분은 유튜브에서 찾아보시라)


삼각돛으로 인해 모든 바람이 순풍이 되었다.


인생의 상황도 그렇다.


살면서 겪는 상황들은 내가 지향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돕거나 방해한다.


삶의 순풍과 역풍이다.


그러나 정신의 삼각돛을 달면 모든 상황이 순풍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지향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데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걸 흥미롭고 여유롭게 보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품는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도 있을까?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위태로우면 위태로운 대로, 모든 걸 흥미롭고 여유롭게 보는 마음을 품는 행위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바람직하다.


이 마음을 품으면 마음이 무언가에 묶이거나 매이거나 끌려가지 않고 더 다양하고 더 나은 것을 보는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마음이란 모든 걸 흥미롭고 여유롭게 보는 마음이다.


지혜롭고 보람찬 삶의 열쇠는 크고 넉넉한 마음이다.


그것이 궁극의 바람직함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