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화가다.
말 붓과 몸 물감과 맘 종이만 손에 쥔 가난한 예술가다.
어떤 이는 무의미한 낙서만으로 물감을 탕진하고
다른 이는 끝없는 스케치만으로 한 세월 다 보낸다.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 멍하니 앉았던 이들은
죽음이 슬며시 잡아끌면 빈 캔버스를 두고 하릴없이 돌아선다.
대작을 완성했다 여기고 뿌듯해하던 이들마저
때론 그림을 거꾸로 그렸다는 걸 깨닫고 당황해한다.
내 그림이 낫네, 네 그림이 낫네, 다투다 그림을 찢기도 하고
조급하게 욕심부리다 물감을 죄다 쏟고 울먹이는 이도 있다.
가르쳐주는 선생도 보이지 않고 뭘 그려야 하는지 대상도 없다.
그 막막함에 놀라고 두려워하다가 문득 허공에 분노를 터뜨린다.
자신의 그림은 팽개쳐두고 남의 붓질 훈계에만 열을 올리거나
엉망진창인 이곳이 싫다며 홀연 붓을 던지고 스스로 떠나기도 한다.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잠만 자다가 깨지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 나가거나
붓이나 물감 손질에만 온 정성을 쏟는 이들도 있다.
어쩌다 용감한 이가“우린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죠?”하고 소리쳐도
벌거벗은 임금님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그것도 몰라?” 면박을 줄 뿐이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뭐든 한바탕 터뜨려야 속이 시원할 듯한데
화가들은 그저 웃픈 피에로의 표정으로 밀려왔다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