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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게에서 불이?”

임차인 책임 100%? 판결로 본 ‘책임의 저울’

by 산뜻한

가게나 사무실을 임차해 열심히 사업을 일구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화재가 모든 것을 앗아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요.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을 때,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은 제가 담당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임차한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의 책임 소재가 어떻게 가려지는지, 그리고 임차인과 임대인 각자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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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저 회의실, 계약서엔 없는 공간인데요?” 스타트업의 야근이 부른 비극


미래가 유망한 콘텐츠 스타트업 ‘K-Contents’는 서울의 한 최신식 빌딩 ‘글로벌 타워’에 사무실을 임차했습니다. 계약서상 면적은 300㎡였지만, 임대인의 배려로 바로 옆 작은 회의실까지 사실상 전용 공간처럼 사용하고 있었죠.


어느 늦은 밤, 야근으로 지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K-Contents가 사용하던 바로 그 회의실의 낡은 멀티탭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사무실 전체로 번진 것입니다.


빌딩의 보험사는 수억 원의 피해를 임대인에게 보상한 후,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K-Contents와 그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K-Contents 측은 두 가지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첫째, “화재가 난 회의실은 계약서에 명시된 우리 임차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이 없다.” 둘째, “설령 책임이 있더라도, 불이 순식간에 번진 것은 스프링클러도 없는 빌딩의 구조적 문제 탓이 크다.”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변호사의 시선]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계약서에 명시된 면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서류상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관계’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점들을 핵심적으로 살펴보았는지 조목조목 짚어보겠습니다.


POINT 1. 계약서 vs 실제 사용, 핵심은 ‘실질적 지배’


법원은 화재가 발생한 회의실이 계약서상 면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K-Contents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임대차의 실질: 임대차 계약 초기부터 양측 모두 해당 회의실을 K-Contents가 사용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K-Contents 직원들만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객관적 증거: K-Contents가 입주하며 설치한 보안 시스템(출입 통제 장치)의 도면에도 해당 회의실은 명백히 K-Contents의 관리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즉, 법원은 계약서의 문구를 넘어 ‘누가 그 공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했고, 그 책임은 임차인인 K-Contents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POINT 2. 임차인의 기본 의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우리 법은 임차인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여합니다. 쉽게 말해, “내 것처럼 소중히 다루고 관리해야 할 의무”입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빌린 상태 그대로 임대인에게 돌려주어야 하죠.

만약 임차인이 점유하는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임차인은 그 화재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만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처럼 화재 원인이 멀티탭 과부하 등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될 경우, 해당 전기 시설을 직접 사용하고 관리한 임차인의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POINT 3. 책임의 저울: 임대인의 책임은 없을까?


하지만 법원은 K-Contents에게 100%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임차인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는데요. 왜일까요? 바로 임대인 측의 과실, 즉 빌딩 자체의 안전 미비가 손해를 키웠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화재에 취약한 구조: 해당 빌딩의 벽면은 화재에 취약한 자재로 마감되어 있었고, 이는 불이 빠르게 번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소방 시설의 부재: 법원은 건물에 스프링클러와 같은 초기 화재 진압 시설이 없었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안전 시설을 설치하고 관리할 의무는 기본적으로 건물 소유주인 임대인에게 있으며, 이를 소홀히 한 것이 피해를 키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국 이 판결은 화재 발생의 직접적인 책임은 임차인에게 있지만, 손해가 커진 것에는 임대인의 건물 관리 소홀도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최종 판결: 보험사의 승소, 그러나 책임은 나누어 졌다


그렇다면 소송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요?


1심과 2심 법원 모두 원고인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은 임차인 K-Contents와 그 보험사가 화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상 책임의 비율입니다. 법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물주(임대인) 역시 건물 안전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하여 피해를 키운 책임이 있다고 보아, 임차인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60%로 제한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은 화재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임차인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손해 확대에 기여한 임대인의 과실을 ‘책임 제한’이라는 법리로 반영하여 양측의 책임을 공평하게 조율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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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내 사업 지키는’ 임대차 꿀 TIP


억울한 분쟁을 피하고 소중한 사업체를 지키기 위해 임대차 계약 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핵심 팁입니다.


꿀 TIP 1. 실제 사용 공간은 계약서에 명확히 기재하세요


구두 합의는 분쟁의 씨앗입니다. 계약서상 면적과 실제 사용하는 공간이 다르다면, 반드시 별도의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계약서를 변경하여 서면으로 남겨두세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넘어간 부분이 훗날 누구의 책임인지를 다투는 가장 큰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꿀 TIP 2. 계약 전, 건물의 안전 설비를 직접 확인하세요.


임차할 건물의 소방 시설(스프링클러, 소화기 등) 상태와 건물 마감재 등을 계약 전에 꼼꼼히 확인하고, 사진 등으로 기록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안전 설비가 미비하다면 임대인에게 보강을 요구하거나, 만일의 사태 발생 시 임대인의 과실을 주장하여 책임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꿀 TIP 3. ‘임차자배상책임보험’을 반드시 가입하세요.


일반적인 화재보험(화재배상책임)은 임차한 공간 외부의 피해를 보상합니다. 내가 빌린 가게나 사무실

자체의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임차자배상책임보험’ 특약에 반드시 가입해야 합니다. 이번 사례에서도 임차한 A동 건물과 그 옆 B동 건물이 모두 피해를 입었듯, 두 가지 위험에 모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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