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돈은 괜찮을까? - '업무상 횡령' 이야기
오랫동안 함께하며 ‘가족 같다’고 믿었던 동료, 혹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회사의 자금 관리를 온전히 맡겨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랜 기간 함께 사업을 일궈온 동업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굳건한 믿음’이 때로는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가장 큰 허점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실제 담당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동업관계에서 발생한 ‘업무상 횡령’ 사건을 통해 신뢰가 어떻게 배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그리고 내 회사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경영 원칙은 무엇인지 쉽고 재미있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수제 과일청과 프리미엄 전통주를 납품하며 입소문만으로 성장해 온 작은 유통 조합, ‘바른 먹거리 상회’.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박 사장, 이 사장, 그리고 회계와 자금 관리를 도맡아 온 김 실장은 20년 지기 친구이자 동업자였습니다. 특히 김 실장은 조합 명의 통장 개설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자신의 개인 계좌를 조합의 공식 계좌처럼 사용하며 모든 수입과 지출을 관리했고, 다른 동업자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바른 먹거리 상회’는 매달 초, 동네 식당에 모두 모여 김 실장이 정리해 온 수기 장부를 보며 전월의 수익을 현금으로 정산하는 오랜 관행이 있었습니다. 장부상 숫자가 맞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죠.
문제는 창업주 박 사장이 건강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꼼꼼한 성격의 아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은 불투명한 현금 정산과 개인 명의 계좌 사용을 문제 삼으며 김 실장에게 모든 회계 장부와 은행 거래 내역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김 실장님, 이제는 좀 더 체계적으로 가야죠. 전체 입출금 내역이랑 통장 잔고 좀 맞춰봅시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김 실장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믿고 맡겨놓고 왜 이제 와서 이러냐”며 서운함을 토로하더니, 며칠 뒤에는 “오래된 장부들은 자리만 차지해서 다 버렸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동업자들은 법적 대응을 시작했고, 법원을 통해 확보한 김 실장의 개인 계좌 거래 내역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김 실장은 매달 동업자들에게 정산 보고를 한 직후, 보고된 지출 내역 외에 수백만 원의 현금을 추가로 인출해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수년간 무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조합의 돈을 빼돌린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김 실장은 “오랫동안 일하며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잠깐 빌려 쓴 것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벌금형에 처해졌습니다. 20년 우정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바른 먹거리 상회’는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법정에서는 이런 감정적인 호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업무상 횡령죄’는 다음의 요건이 충족되면 성립하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1.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업무상 임무)
2.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 (임무 위배 행위)
3. 불법영득의사 (불법적으로 가지려는 의도)
이 사건에서 김 실장은 조합의 회계를 담당하며 조합의 돈을 자신의 계좌에 ‘보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번, ‘업무상 재물 보관자’의 지위입니다.
그는 조합의 공식적인 지출(물품 대금, 배당금, 경비 등) 외에 거액의 현금을 무단으로 인출하여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자신의 임무를 위배하여 조합의 재물을 ‘횡령’한 행위(2번)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회계 장부를 임의로 폐기하고 동업자들에게 통장 내역 공개를 거부한 행동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는 명백한 증거이자, 조합의 돈을 자신의 것처럼 처분하려 했다는 ‘불법영득의사’(3번)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설령 나중에 일부 금액을 변제하거나 선처를 호소했더라도, 이미 성립한 범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억울한 경영 분쟁과 금전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위험을 인지하고 처음부터 명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꿀 TIP 1. 법인 계좌를 사용하고, 접근 권한은 분리하세요.
절대 회사 돈을 개인 계좌로 관리하지 마세요. 통장은 반드시 법인 또는 조합 명의로 개설하고, 이체와 출금 권한은 여러 명이 견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세요.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회사의 공금을 개인 계좌로 관리했다는 것입니다. 법인(또는 조합)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고, 거액 이체 시에는 복수의 책임자(OTP 카드 소유자, 최종 승인자 등)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횡령의 유혹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는 회계 담당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와 사고로부터 모두를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입니다.
꿀 TIP 2. 현금 거래를 최소화하고, 모든 지출은 증빙을 남기세요.
매월 현금으로 정산하는 방식은 횡령의 지름길입니다. 배당금, 급여, 경비는 모두 계좌이체로 지급하고, 소액 현금 지출도 반드시 영수증을 챙겨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세요.
현금은 추적이 어렵습니다. ‘바른 먹거리 상회’의 동업자들은 김 실장이 장부를 파기하자 수년간의 현금 지출 내역을 증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모든 자금 거래를 계좌이체로 처리하면 ‘누가, 언제, 얼마를, 왜’ 받았는지에 대한 명백한 기록이 남습니다. 이는 회사를 보호하는 동시에,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한 회계 담당자를 억울한 의심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꿀 TIP 3. 회계장부는 ‘담당자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검토하세요.
회계 담당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지 마세요. 최소한 분기별로 모든 동업자(또는 주요 주주)가 모여 전체 입출금 내역과 실제 은행 잔고를 대조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공식화해야 합니다.
‘믿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회계는 특정인에게 위임하는 업무가 아니라, 모든 경영진이 함께 ‘확인’하고 ‘책임’져야 할 영역입니다. 정기적으로 회계장부와 은행 거래 내역을 대조하는 절차만 있었더라도 김 실장의 횡령은 초기에 발견되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투명한 자금 공개와 공유는 건강한 동업관계를 유지하는 필수 조건임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