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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표준 계약서잖아요?"

특약 한 줄에 묶여 가게를 포기할 뻔한 사장님

by 산뜻한

"사장님, 그 특약에 서명하시면 안 됩니다!"
계약서 한 줄의 무서움, 그리고 수천만 원이 걸린 '원상복구'의 함정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덕수 강석준 변호사입니다. 소상공인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이미 도장을 찍어버린 '불리한 계약서'를 들고 오셨을 때입니다. 특히 상가 임대차 계약 시, "다들 이렇게 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무심코 넘긴 '특약 사항' 한두 줄이, 나중에 수천만 원의 빚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은 실제 상담 사례들을 각색하여, '특약'의 함정에 빠져 위기에 몰렸던 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사례. "시설은 두고 가시고, 철거는 싹 하고 가세요"


카페 창업을 꿈꾸던 A 사장님. 마음에 쏙 드는 목 좋은 코너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비어있는 '콘크리트 상자' 그 자체라, 인테리어 비용만 1억 원이 넘게 들어갈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건물주는 "어차피 오래 하실 거 아니냐"며 호탕하게 웃었고, A 사장님은 권리금도 없는 빈 가게니 감사한 마음으로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당시 계약서에는 이런 특약 두 줄이 무심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시설 귀속) 계약 종료 시 임차인이 설치한 모든 시설물은 임대인에게 귀속된다.


(원상복구) 임차인은 계약 종료 시 본 부동산을 임차 당시의 상태로 원상복구하여야 한다.


A 사장님은 이 두 조항이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설은 어차피 두고 나갈 생각이었고, 원상복구는 당연한 거니까.'


5년 후, A 사장님은 개인 사정으로 가게를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임대인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임대인: "A 사장님, 특약 1조에 따라 그 비싼 커피 머신, 제빙기, 인테리어 전부 다 두고 가시는 겁니다. 그리고 특약 2조에 따라, 당신이 설치한 그 인테리어 전부 철거해서 '임차 당시 상태', 즉 저 콘크리트 상자 상태로 돌려놓고 나가세요. 철거비는 당연히 사장님이 내셔야죠."


A 사장님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시설을 다 두고 나가라면서, 동시에 그 시설을 다 철거하라는 이 모순된 요구. A 사장님은 1억 원의 투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수천만 원의 철거비까지 물어줄 위기에 처했습니다.


[변호사의 시선] 모순된 특약의 함정, '원상복구의 범위'를 명확히 하라


A 사장님이 겪은 일은 실제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입니다. 임대인은 두 가지 특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선택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시설 귀속' 특약은 임차인의 '시설 투자비 회수(권리금)'를 막는 족쇄가 됩니다. 내가 설치한 시설을 다음 임차인에게 넘길 수 없으니 권리금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원상복구' 특약은 그 '범위'가 핵심입니다. 임대인은 '임차 당시 상태(=콘크리트)'를 주장했지만, 우리 법원은 통상 '임차인이 개조한 범위 내'에서만 원상복구 의무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법적 다툼 이전에, 계약서 자체에 모순과 독소 조항이 있다면 임차인은 극히 불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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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내 돈 지키는' 계약서 꿀 TIP


분쟁은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 딱 3가지만 기억하십시오.


꿀 TIP 1. '원상복구의 범위'는 구체적인 '글'로 남겨라.


"임차 당시의 상태"라는 모호한 말 대신, "현 시설 상태 그대로 승계하며, 계약 종료 시 현 상태를 기준으로 원상복구한다" 또는 "임차인이 추가로 설치한 XX 파티션에 한하여 철거한다"처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계약 전 가게 사진을 찍어 계약서에 첨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꿀 TIP 2. "시설 포기" 또는 "권리금 포기" 특약은 10번 의심하라.


"모든 시설을 포기한다", "권리금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특약은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여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효'는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만 합니다. 애초에 이런 조항에는 서명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특히 '10년 갱신요구권'이 지난 장기 임차인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꿀 TIP 3. '빠진' 조항도 함정이다: 주차, 간판, 24시 영업


반대로 꼭 있어야 할 내용이 빠져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전 임차인도 주차 1대 무료로 했대요"라는 중개사의 '말'만 믿고 계약했는데, 계약서에 그 내용이 빠져있다면? 임대인은 주차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상가 전면 주차 1대(무료)를 보장한다", "간판은 00 위치에 00 크기로 설치할 수 있다" 등 당연해 보이는 권리일수록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들이는 1시간의 꼼꼼함이, 미래의 5년과 수천만 원을 지켜줍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한 함정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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