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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월급 더 줬으니 5천만 원 토해내라?"

인사팀 실수로 날벼락 맞은 직장인의 눈물

by 산뜻한
"변호사님, 제가 속인 것도 아닙니다. 입사할 때 자격증 다 제출했고, 병원에서 알아서 호봉 책정해서 월급 준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담당자가 실수했다며 8년 치를 한꺼번에 뱉어내라니요? 이미 생활비로 다 썼는데 이걸 어떻게 갚습니까?"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덕수 강석준 변호사입니다.


직장인에게 '월급'은 생존입니다. 그런데 회사가(혹은 국가가) 행정 착오로 몇 년간 월급을 과다 지급했다며, 어느 날 갑자기 수천만 원, 심지어 억 단위의 돈을 반환하라고 청구한다면 어떨까요?


특히 그 실수가 전적으로 '상대방(회사/기관)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패소했지만, 행정청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 그리고 '부당이득 반환'의 무서운 법리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아픈 손가락 같은 사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사례. "자격증 구분을 담당자가 헷갈렸으니, 돈 돌려주세요"


B공공병원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간호사 김 씨(가명)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병원 측 주장:



"김 선생님, 8년 전 입사하실 때 제출한 '전문간호사 자격증' 말이에요. 저희 인사팀 직원이 실수로 이걸 '1급' 기준으로 호봉을 잡았는데, 감사 때 보니 '2급' 기준이 맞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8년간 더 받아 가신 월급 차액 5,000만 원, 이번 달부터 환수하겠습니다."



김 씨는 억울했습니다. 입사 당시 분명히 '2급'이라고 적힌 자격증 원본을 제출했고, 호봉 획정은 인사팀의 고유 권한이었습니다. 김 씨가 서류를 위조하거나 담당자를 속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무엇보다 국가(공공기관)에 대한 금전 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입니다. 김 씨는 생각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돌려준다 쳐도, 5년이 지난 옛날 월급은 이미 시효가 끝나서 못 돌려받는 거 아닐까?"


저희는 이 점을 파고들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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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시선] 핵심 쟁점: "실수가 얼마나 멍청(?)했는가"


이 사건의 승패는 '행정행위의 하자가 얼마나 크고 명백한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조금 어렵지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원고(김 씨) 측 주장: "이건 너무 명백한 실수다 (당연무효)"


인사팀은 전문가다. 자격증에 '2급'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데 '1급'으로 처리한 건, 눈을 감고 일한 수준의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다.


이 호봉 책정 행위 자체가 처음부터 '무효'이다.


따라서 월급을 줄 때마다 '부당이득'이 발생한 것이고, 그때부터 5년 카운트다운(소멸시효)이 시작된다. 즉, 5년 넘은 돈은 안 갚아도 된다.



2. 피고(병원) 측 주장: "헷갈릴 수도 있다 (취소 사유)"



자격증 양식이 복잡해서 담당자가 착각할 만했다. 실수는 맞지만, 행정행위가 무효가 될 정도로 멍청한 실수는 아니다.


따라서 호봉 책정은 유효했고, 우리가 '호봉 정정 처분'을 내린 지금 이 순간부터 빚이 생긴 것이다.


소멸시효는 지금부터 시작이니, 8년 치 전액을 다 돌려받아야겠다.



결국 법원은 "담당자가 서류를 뻔히 보고도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무효'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기관의 실수가 있었어도, 전액 반환하라"


치열한 공방 끝에, 법원은 안타깝게도 병원(피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의 논리:


실수는 인정된다: 담당자가 자격증 등급을 잘못 적용해 호봉을 높게 책정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당연무효'는 아니다: 제출된 서류만으로는 담당자가 헷갈릴 여지가 일부 있었고, 담당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조작한 게 아니라 업무 미숙이나 착오로 보인다. 법적으로 행정행위가 '당연무효'가 되려면 누구나 딱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자가 명백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니다.


결론: 호봉 획정은 '무효'가 아니라 '취소 사유'에 불과하다. 병원이 실수를 깨닫고 호봉을 정정한 날(2025년) 비로소 반환 청구권이 생긴다. 따라서 소멸시효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김 씨는 8년 치 차액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변호사의 패소 후기] 그럼에도 우리가 싸워야 했던 이유


사실 이 판결은 직장인들에게 매우 가혹합니다.


기관이 일을 엉망으로 처리해놓고, 나중에 "어? 실수였네. 다 토해내세요."라고 할 때, 근로자는 그 돈을 다 써버렸어도 빚을 져서 갚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기간이 10년, 20년이 되어도 논리상으로는 '정정 시점'부터 청구가 가능해집니다.


비록 패소했지만, 이번 소송을 통해 확인한 중요한 시사점(Warning)이 있습니다.


1. '내 잘못 아님'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많은 분이 "회사가 실수로 더 준 거니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민사상/행정상 '부당이득' 법리에서는 고의/과실을 따지지 않습니다. 원인 없이 받은 돈은 돌려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2.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의 벽은 높다.


법원은 행정청(기관)의 행위가 아예 효력이 없을 정도(무효)가 되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하자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서류에 적혀 있는데 안 봤다" 정도로는 무효 판결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습니다.


3. 월급 명세서를 꼼꼼히 보자.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나의 호봉이나 수당이 규정에 맞게 들어오고 있는지 스스로 체크해야 합니다. "알아서 잘 주겠지" 하고 믿었다가, 10년 뒤에 뒤통수를 맞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됩니다.


의뢰인께서는 "비록 졌지만, 병원의 무책임한 행정에 대해 법적으로 다퉈볼 수 있어서 후련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이기는 사건보다, 지는 사건에서 법의 냉혹함과 현실의 무게를 더 깊이 배웁니다. 행정청의 실수로 인한 환수 문제, 억울하지만 법리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싸움입니다.


비슷한 일로 고민 중이시라면, 섣불리 포기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전문가와 함께 '혹시라도 있을 빈틈'을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 위 사례는 실제 판결의 법리적 쟁점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신상 보호를 위해 사실관계를 대폭 각색하여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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