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퀴어퍼레이드에 가다 1
서울 퀴어퍼레이드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정말 몰랐다.
부산역으로 향하던 중, 문자가 도착했다.
"가좌~신촌 간 선로에 이삿짐 사다리차가 넘어져 열차 운행 지장, 복구를 위해…"
결국 일부 열차가 운행 중단되었고, 우리가 타려던 기차도 사라졌다.
서둘러 대체 열차를 찾았지만, 금요일 부산발 서울행은 이미 좌석 매진. 남아 있던 건 입석뿐이었다.
KTX를 타기 시작한 이래 처음 경험하는 입석. 다행히 복도 보조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자리 놓칠까 화장실도 못 갔다.
그나마 앉아 간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금요일) 예약 내역이 없는데요?”
… 뭐라고요?
“선우비 님 예약은 토요일부터입니다. 2박 3일, 토요일~월요일이요.”
와장창창. 내 손가락,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 낙담할 여유도 없이 숙박 앱을 열었다. 근처 호텔 중 남은 방 하나—4.8평 더블베드 룸, 26만 원. 눈물 머금고 예약 완료. 짐을 풀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이 퀴퍼, 절대로 시작이 좋지 않다.
1. 화창한 하늘과 냉면 한 그릇
전날에서 이어진다던 비 소식이 무색하게, 퀴퍼 당일은 눈이 부실 만큼 맑았다. 아니, 뜨거웠다.
깔끔한 몸으로 을지면옥 냉면을 맞이하고자 아침도 건너뛰고 11시, 평양냉면 한 그릇을 들이켰다.
전날의 불행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맛이었다.
올해 퀴퍼는 작년과 같은 장소(을지로입구)에서 열렸다. 달라진 건 부스의 규모와 인파. 다들 빅사이즈로 성장해 있었다.
부산의 젊은 퀴어 단체들(홍예당, 영남퀴어, 부산대 케세라)은 힘을 합쳐 공동 부스를 운영했다.
작은 부스에 세 단체가 모이다 보니 더위 속에서 친구들의 표정엔 벌써 피로가 스며 있었다.
뭔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워낙 인파가 많아 가까이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행사장은 반가운 얼굴들로 가득했다.
아이샵 구야님, 띵동의 정욜, 이반시티 운영자님, 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캔디님, 부모모임의 써니 님, 게피방의 삼식님과 메츄님, 키웨스트 사장형, 모두의 결혼 호림님, 드랙퀸 아네싸, 무지개 옷의 대구 청년, 이공계 모임 ‘기묘한 연구소’ 회장님까지.
한 명 한 명의 오래전 인연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축제가 우리만의 동창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거라는 확신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폴님, 휴고와 함께 행사장을 돌아다녔다. 특히 폴님은 이반시티 중년 게시판의 스타여서,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휴고도 어찌나 인맥이 넓던지, 이후에 또 글을 쓰겠지만, 휴고와 함께 다닌 건 행운이었다.
예전엔 단순히 부스를 구경하는 게 전부였지만, 올해는 낯선 이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쩐지 축제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2. 숨 가쁜 퍼레이드, 그리고 똥 퍼포먼스
퍼레이드는 오후 4시 시작 예정.
홍예당 부스에서 깃발을 받아 무대로 향했다.
물품 판매에 바쁜 친구들 대신 내가 기수를 맡고, 혜진이가 뒤이어 합류했다.
하지만 교통 상황 때문인지 출발은 예정보다 한참 지연됐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대기하는 시간만 40분.
이미 체력이 바닥났지만, 막상 발걸음을 내딛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선두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열은 길었고, 음악 소리도 안 들릴 만큼 멀었지만 인도에서 우리를 향해 손 흔드는 시민들의 얼굴이 에너지였다.
명동 근처에선 극우 기독교 세력이 몸에 진흙(?) 같은 걸 바르며 절규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었다.
“설마 저거 진짜 똥은 아니겠지?”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진짜 똥이었다고.
한국에서 기독교 믿으며 교회 다니는 분들… 저런 사람 진짜 교인 아니라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게 아니라, 당신들이 나서서 저런 사람 막아야 한다. 최근 들어 정신 멀쩡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온몸에 똥칠하고, 아주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저런 종교에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 삶이다, 진심으로.
명동역 근처에서 슬슬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오스씨와 내가 이날 먹은 건 냉면 한 그릇과 소금빵 하나. 30도가 넘는 날씨에 몇 시간을 걷는 건 생각 이상으로 버거웠다. 결국 다리가 불편한 혜진이는 신세계 앞에서 중도 하차. 평소 철저히 몸 관리를 하던 폴님도 지쳐 보였다.
내년엔 행렬 후미에 붙어서, 좀 더 여유 있게 걷자는 교훈 획득.
3. 굿즈는 사랑입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굿즈를 질렀다.
모두의 결혼 오피스 세트는 무려 3만 원이었지만, 우리 결혼 일등공신이니 패스 못함. 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작년엔 무지개 곰돌이를 샀으니까, 올해는 그냥 감사의 현금을 전했다. 이반시티의 뽑기 이벤트에선 내가 블루투스 스피커에 당첨됐다. 운영자도 놀랄 정도였다.
(어제 그 고생은 이걸 위한 복선이었나?)
그 외에도 스티커, 팔찌, 배지 등등.
정작 내 생활에 쓸모는 없지만, 이걸 그냥 지나치면 ‘퀴어른’으로서 도리가 아니지 않나.
홍예당의 친구들도 땀 흘리며 굿즈를 만들었고, 다들 저마다의 사연으로 부스에 서 있다.
신기한 건, 집에 돌아와 굿즈들을 탁자에 늘어놓을 때 느끼는 기분이다.
현타 대신 미소. 그게 바로 퀴퍼 굿즈의 힘이다.
4. 인생사 새옹지마
저녁엔 폴님, 휴고와 함께 고기를 푸짐하게 먹었다.
기차 시간이 급한 폴님은 먼저 떠났고, 휴고는 우리와 함께 호텔로 향했다.
휴고는 원래 서울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지만, 우리 호텔이 종로 게이 거리 옆이라 샤워를 하고 바에 함께 가기로 했다.
체크인하려는데, 전날의 실수(?)를 기억해 준 호텔 직원이 "불편하셨죠?" 하며 객실을 업그레이드해 줬다. 원베드룸이 투베드룸이 되면서, 휴고도 함께 묵을 수 있게 됐다.
전날의 꼬임이 이렇게 보상받다니—
인생이란, 역시 새옹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