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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게이 커플과 친구가 되는 방법

팟캐스트 <이웃집 오소리>

by 선우비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nYcUlZYu9sM?si=oaBfR1r0g92M8AQS


녹음 후기


부산 수영구. 이 동네엔 뭔가 기운이 있다. 바다도 있고, 커피 맛집도 있고, 그리고… 퀴어 팟캐스터가 둘이나 산다.

<시골쥐퀴엇쥐>의 쥐야다, 그리고 이제는 <이웃집 오소리>의 김휴고.

홍예당의 조합원이자 수영구퀴어모임(수퀴모)의 핵심멤버 휴고는, 평소에도 마당발이지만, 최근엔 아예 마이크까지 들었다.

"부산 사는 30대 퀴어 김휴고는 할 말이 많다."

이 한 줄 소개처럼, 휴고는 정말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형, 나중에 우리 채널 한 번 나와주세요."

‘응, 그래~’ 하고 가볍게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인사치레려니 했다.
방송은 이제 겨우 4회를 송출했을 뿐이고, 휴고가 불러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우리까지 차례가 오려면 한참 남았겠지 싶었다.

그런데… 며칠 전 만난 휴고가 이렇게 말했다.

"형, 그럼 모레 집에서 녹음해요."

...어라? 이렇게 빨리?

이미 내뱉었던 말이기도 하고, 어쩐지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덜컥 수락했다.

그래서 오스씨와 나는, 처음으로 팟캐스트 녹음을 하게 됐다.


집으로 온 휴고와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살짝 곁들였다. 맨정신으로는 아무래도 입이 굳을 것 같았다.
휴고가 준비한 질문들은, 최근 다녀온 서울 퀴어퍼레이드 이야기, 우리 커플의 20년 삶, 그리고 괌에서의 결혼 이야기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녹음 시작 20분쯤 지났을까. 휴고가 난감한 표정으로 외쳤다.
"앗, 녹음이 하나도 안 됐어요…!"

잠시 탄식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살짝 안도했다. 너무 뚝딱거리고 있었거든... 하늘이 제대로 하라고 다시 기회를 준 셈이었다.

덕분에 두 번째 녹음은 훨씬 부드러웠다. 이미 한 번 했던 대답이라 익숙해졌고, 농담도 섞이고, 긴장도 풀렸다. 그렇게 1회분을 무사히 마치고, 휴식 뒤 2회분까지 녹음했다.

특히 2회분, 우리 커플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니 입이 더 잘 풀렸다.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솔직히,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맨날 술자리에서 하던 이야기인데,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송마이크를 앞에 두니 이야기에 때깔이 좋아졌다.

휴고는 질문을 참 잘 던졌고, 우리의 이야기에 고개 끄덕이며 리액션도 흘룽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도 자연스레 우리 삶을 술술 털어내듯 꺼낼 수 있었다.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삶을 목소리로 담아내는 작업은 참 귀하고 소중하다. 퀴어의 삶은 누가 대신 기록해주지 않는다. 우리끼리 말하고, 웃고, 남기고, 그렇게 이야기를 쌓아가는 모습, 참 좋다.

이 글에 흥미가 돋는다면,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휴고의 목소리도 좋고, 우리 말고도 앞으로 다양한 손님들이 나올 테니, 가끔 산책하면서, 설거지하면서, 틀어놓기 딱 좋을 것이다.

부산 퀴어들의 따끈따끈한 수다. 아마 한두 편 듣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오소리 이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이웃집 오소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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