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뤌기(3)
6.
일전에 나도 강연했던 '큐라이프'로부터 새로운 강의 안내가 도착했다.
“성소수자 나이듦 실용강좌! 퀴어를 위한 금융백서 2탄 – 4050을 위한 화려한 금융생활
나이듦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되는 금융 문제, 4050 세대를 위해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읽자마자 마음이 동했다.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벌기는 어렵고, 모으기는 더 어렵다.
그런데 그 방법에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이성애자는 결혼 제도를 통해 돈을 불리고, 자식이라는 ‘변수’를 활용해 노후를 준비한다. 반면 한국의 동성애자는 그 두 가지를 전혀 쓸 수 없다.
한국 퀴어의 재테크란, 한마디로 나 홀로 재테크다.
강의는 그런 퀴어의 현실에 딱 맞춘 내용이었다.
청약저축이 정말 필요한지, 국민연금과 사적 연금의 장단점, 그리고 은행·증권사·보험사 각각이 판매하는 연금 상품의 차이, 연금저축과 연금보험의 비교까지… 강사는 꼼꼼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강의를 들으며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국민연금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이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내 돈이 먼저 날아가겠다’ 싶어 가입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적 연금에 대해 알아볼 때도, 내가 그 혜택을 누릴 만큼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역시 패스. 그저 돈을 굴려서 목돈 만들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강사의 한 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연금이 더 안전합니다. 나이가 들면 판단력, 활동력, 기억력이 약해집니다. 그때도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보이스피싱에 가장 취약한 그룹이 됩니다.”
…잉? 그건 미처 생각도 못 했다.
나 혼자라서 오히려 모든 걸 잘 챙길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때의 내가 제정신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강사는 또 생애주기를 따라 연금 사용 패턴을 설명했다.
65세 전후부터 10년 동안이 가장 활발하게 돈을 쓰는 시기.
75세가 넘어가면 여기저기 몸이 고장 나서 쓰고 싶어도 못 쓴다.
85세 이후엔 요양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연금은 언제,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노후를 길게 준비한다기보다, ‘제대로 쓰는 시기’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나는 미래가 엄청 두려운 나이는 아니다. 갖고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지금처럼만 씀씀이 조절하면 험난한 미래는 아니겠지’ 막연한 낙관도 한다.
하지만 연금 준비가 노후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같은 퀴어에게 진짜 노후대책은 법을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인 파트너의 연금을 동성 배우자에게도 승계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노후 계획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낭비한 돈이 얼마고, 앞으로도 계속 새어나갈 돈이 얼마일까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얻기 위해 싸웠던 그때처럼, 앞으로의 각종 법적 싸움이 바로 퀴어의 재테크다.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싸우러 가자고 할 때, 잘 따라와야 돼!”
내 말을 들은 오스 씨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차근차근 이 남자를 이렇게 끄덕이게 만든 것.
그게 아마, 내가 해온 가장 큰 재테크일지도 모른다.
7.
대한민국 사람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는 아직 낯선 장르다.
마이크 하나만 들고 무대에 서서, 오직 입으로만 관객을 웃겨야 하는 공연.
왠지 활기찬 장면이 떠올라야 할 것 같은데,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이미지는 영화 <조커> 속 아서 플렉이었다.
나는 공감성 고통(Empathic Distress), 즉 남의 감정을 지나치게 공감하다 보니 내가 대신 아파지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누군가 눈앞에서 당황하거나, 억지로 웃기려 애쓰다 결국 실패하는 장면을 차마 볼 수 없다. 특히, 무대 위에서 재미없는 개그가 던져지고, 객석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 공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예전에 대학로와 홍대에서 갈갈이 패밀리, 웃찾사 멤버들 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초반에는 나도 깔깔거리며 즐겼지만, 중간중간 터지는 썰렁한 개그에 무대와 객석이 동시에 어색해지면, 내 몸이 의자 위에서 베베 꼬였다.
그 뒤로는 공개 코미디 공연장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고, 해마다 유명 코미디언들이 몰려오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번 광복절,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이번 광복절에 어댑터 씨어터에서 부산코미디클럽 공연이 있어요. 오실래요?”
홍예당과 수영구 퀴어모임의 멤버, 그리고 직업이 코미디언인 아누님이 직접 초대장을 보내왔다.
예전부터 립서비스처럼 “언제 공연하실 때 꼭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는데,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셈이다.
사실 홍예당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이 따로 있다.
주로 젠더 이슈에 관심 있는 여성 멤버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나는 그동안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내 체질상 무대의 썰렁함을 견디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다.
이번에도 ‘여성과 퀴어’를 주제로 했지만, 보다 전문적으로 코미디를 파는 친구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홍예당에서는 전인과 아누님이 무대에 서기로 해서, 수영구 퀴어 모임 멤버들을 추축으로 홍예당 친구들이 응원차 달려갔다.
객석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손으로 두 눈 가리기) 맨 뒷 줄에 앉았다. 그래도 아는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여 반가웠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퀴어 코미디라는 아이템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가 공기 중에 진하게 느껴졌다.
사회자가 첫 멘트를 던졌다.
“오늘 객석을 보니, 이성애자가 성소수자네요. 아주 흥미로운 반응이 예상됩니다.”
전인을 시작으로 코미디언들이 차례차례 무대에 올라섰다. 여성으로서, 퀴어로서 부딪치는 세상살이의 팍팍함 속에서, 웃음을 끄집어내듯, 한풀이하듯, 묵직한 이야기들을 개그 코드로 바꾸어 날려버렸다.
어딘가 어설픈 개그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공감성 수치심이 들거나 뻘쭘해지지 않았다. 분명 슬픈 이야기고 아픈 이야기인데도 웃음이 터졌다. 내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슬픔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웃는 거구나. 혼자 웃으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여럿이 함께 웃으면 앙금이 사라지고 말끔하게 치유되는구나.”
그 순간, 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을 조금 알게 됐다.
공연이 끝나자 퀴어 친구들과 함께 뒤풀이에 갔다.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끌벅적 떠들었다. 나이 차이도, 성정체성의 차이도 금세 사라졌다. 웃음으로 풀린 관계라 그런지 함께하기가 한결 편했다.
일부는 수영구 모임에 가입하고 싶어 해 단톡방에 초대했다. 그날의 유쾌한 에너지가, 우리의 작은 공동체로 이어진 셈이다.
다음 공연도 꼭 가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맨 앞줄에서 손뼉 치며 더 크게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