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두고 온 마음

가을 제주 이야기 6

by 선우비


돌이킬 수 없는 찬란한 슬픔


오름 투어, 독립서점 탐방, 그리고 틈틈히 미술관, 온천까지. 일주일간의 가을 제주 여행이 끝났다.

출발 전,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글감으로 모아 여행기를 빵빵하게 채워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겹쳐진 상실의 그림자가 그 계획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일정은 차곡차곡 채워졌지만, 마음속 공백은 도리어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결국 여행기는 원래의 다짐처럼 풍성하게 채워지지 못했다.

그렇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의 절교는 귓속의 이명처럼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오스씨는 내 기분을 살피면서도 먼저 봉봉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쩌다 화제가 되어도, “유들유들하게 받아들이지. 화해하고 풀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래, 화날 만했어.”라며 확실히 내 편을 들어줬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면 그 편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게 이 남자의 가장 든든한 장점이다.

어쩌면 다시 화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태껏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시계방향도, 반대 방향도 아닌, 아예 ‘방향을 따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즉, 맘 가는대로 가련다.

그저 사우다드(saudade: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에서 찾아낸 포루투갈어)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을 제주에 남겨두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남긴다. 지난 봄의 제주가 ‘비건’과 ‘글쓰기’를 내게 선물했다면, 이번 가을 제주가 남긴 것은 ‘노가다 일꾼들’이었다.

그 시작은 제주의 서점에서 만난 책, 『노가다 칸타빌레』였다. 이 책은 한때 문학을 꿈꿨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현직 형틀목수가 쓴 기록이다. 저자는 공사장에서 만난 수많은 노가다꾼들의 일상과 기술, 그리고 그들만의 세계를 마치 교향곡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책 속의 미장공, 철근공, 목수들은 단순히 ‘노동자’가 아니라, 각자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등장한다.

책장을 덮자마자 나는 유튜브로 달려가 미장공, 철근공, 목수들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찾아봤다.

평생 문과로만 살아온 내게 너무도 낯선 세계인데도, 은근히 취향에 맞았다. 눈이 퀭해질 때까지 밤을 새우며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건 단순 노동을 관찰함으로써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싶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여라’라는 금언을, 요즘 시대에 맞게 환원한 행위. 직접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움직이는 사람들을 유튜브로 바라보며 나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치유였다.


앨범 속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이미 추억으로 스며드는 제주의 풍경들이 마음을 간질였다.

여행 사진은 늘 그렇다. 그것이 상실의 여행이었더라도, 사진 속 빛깔은 다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자, 이제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내가 툭 던지자, 오스씨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번엔 스키장 어때?”
“스키장?”

“용평을 시작으로 하이원, 휘닉스파크까지 다 가보자. 한 달 내내 스키만 타는 거야. 보자보자, 일단 시즌권부터 예약해야겠다.”

에에에에? 이렇게 사전 정보도 없이 질러버린다고?
그런데 원래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건 내 특기 아니었나?

“근데 돈은 또 어디서 나서…”

“너 여행기 써서 책 낸다며. 인세 나오잖아. 그 돈으로 가면 되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오스씨.

“지금부터 당장 써라!”


계획대로 쓰여진 여행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예정에 없던 깨달음과 만남들이었다. 우리가 얻은 것들은 글 속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양했다.

제주의 바람은 멎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쩌면 다음 여행에서 또다시 이어질 것이다.


The Story Goes On


이 글은 2022년 봄, 제주에서 한 달을 살았던 좋은 기억을 연장하고 싶어서 그해 가을 다시 제주를 찾았던 이야기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글을 써 두었지만, 3년 동안 공개하지 않고 컴퓨터 속에 묵혀 두었다. 꺼내기 싫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의 상실은 천천히 다른 기억들과 만남들로 메워졌다. 이제야 나는 그 관계를 담담히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친구들의 죽음처럼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이 밀려오기도 했고, 함께 많은 것들을 해낸 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삶은 언제나 우리가 준비할 틈도 없이 무언가를 앗아가며, 동시에 또 다른 것을 내민다.


비건으로 지냈던 식탁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명상도 흐지부지 멈춰버렸다. 제주가 남긴 영감들 역시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나마 남아 꾸준히 이어진 것은 독립서점 탐방 정도다.

그럼에도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낀다.

내가 누리는 자연은 그냥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전보다 사려 깊게 서로를 살핀다.

오스씨도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뭔가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

아마도 전방위적으로, 나이값에 조금씩 가까워졌다는 뜻일 것이다.


제주는 그랬다.

곰곰이 들여다보는 자에게 성장의 기회를 건네는 곳. 아름다운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온화해졌다.
그래서 다시 가고 싶다. 여전히 그 자리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섬으로.

여행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처음의 계획처럼 화려한 에피소드로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 빈자리에 남은 것은 역시 깨달음과 성숙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이야기보다 오래 나를 지탱해 줄 힘이다. 다음 여행기에서 또 봅시다.


추신


전자책으로 출판된 여행기는 큰 인세를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오스씨가 꿈꿨던 ‘보름간의 스키 여행’은 해를 넘겨 2024년, 짧은 일본 스키 여행으로 대체되었다.

그 여행기와 다른 일본 도시 여행기를 모아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남자 둘이 손잡고 일본

관심 있는 분들은 클릭해 주시길.


봉봉씨와는 그 이후 딱 한 번 마주쳤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아무 일 없었던 사람들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정말로 과거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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