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

가을 제주 이야기 5

by 선우비

새별오름 – 억새와 갈대, 그리고 우리


새별오름은 ‘제주 오름의 인기 남바완’이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하며, 완만하게 펼쳐진 능선을 따라 억새가 가득하다. 가을이면 황금빛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우리가 찾았을 때도 인파가 끓어넘쳤지만, 그 모든 사람을 품고도 남을 만큼 새별오름은 넓고 웅장했다.

“자기야, 갈대랑 억새 차이가 뭔지 알아?”
“갈대는 물가에, 억새는 산에 있는 거지.”

“난 예전엔 억새가 좋았는데, 요즘엔 갈대가 더 좋아.”

“왜?”

“일관성을 포기하면 편하거든.”
나는 억새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이중잣대잖아. 다양성을 말하지만, 막상 내 생각과 다르면 쉽게 배척하고. 아파트 값만 해도 그래. 싸져야 모두가 산다고 하면서도, 자기 아파트 값은 오르길 바라지. A당 정치인이 성희롱을 하면 ‘종특이다’ 욕하고, B당 정치인이 성희롱을 하면 ‘사주받았다’ 쉴드 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치관도 주식처럼 골고루 분산투자를 해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헤쳐나가지 않을까.”

“그럼 나도 말 바꾸는 사람 할까?”
“그건 싫어. 자기는 한결같아야 해. 나만 내로남불 할래. 싫어?"

“싫고 좋고가 어딨어. 넌 원래부터 그런 애야. 가계부 쓸 땐 근검절약 외치고, 백화점만 가면 탕진잼~ 이잖아.”
역시 내 남자, 나를 가장 잘 안다.

억새와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간다.
우리도 그렇다. 멋대로 흔들리지만, 꼭 필요할 때는 서로를 위해 같은 방향으로 흔들린다.

그럼 됐지 뭐.


따라비오름 – 거대한 품에 안기다


제주 남동부 표선면 가시리 마을에 자리한 따라비오름은 제주의 오름 중에서도 규모가 크다. 세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오름 같지만, 걸어보면 복잡하게 얽힌 길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다.

길이 완만하고 넓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지만, 한 바퀴를 돌아보려면 1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다 정상에 서자 사방이 시원하게 트였다. 멀리 한라산이 우뚝 서 있고, 발아래는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억새의 흐름과 풍경의 빛깔이 계속 달라졌다.

다랑쉬오름이 장엄한 여왕 같다면, 따라비오름은 묵묵히 품어주는 어머니 같았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어딘가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내려오는 길에 오스씨가 짧게 말했다.
“이번 여행에서 여기가 최고야.”
“응, 나도 그래.”

어쩐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름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네 개의 오름은 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홀한 풍경과 코끝을 찌르는 악취가 공존하는 곳에서는 세상의 모순을 느꼈고, 얽히고설킨 길을 가이드와 함께 걸으며 제주인들의 보다 내밀한 속살을 엿볼 수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속에서는 관계의 유연함을 깨달았고, 거대한 품을 지닌 오름에게서는 말없는 위안을 얻었다.

그 모든 길 끝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상실은 쉽게 아물지 않았지만, 땀을 흘리며 한 걸음씩 오른 오름이 그 혼란을 조용히 감싸주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억새를 닮아 있었다.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더 부드러워졌다. 흔들림을 억누르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시 걸어갈 힘을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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