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남자는 싫어요

추석특집 단편극장 2

by 선우비

* 연휴 동안, 세기말 PC통신과 인터넷 초창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오래 묵혀둔 초단편소설 5편을 공개합니다. 당시의 공기와 낯선 설렘을 함께 느껴보세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뚱보는 두 손을 무릎 위에서 꼭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미세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오늘은 그에게 작은 전쟁 같은 날이었다. 오랫동안 술집과 앱을 전전하다가 지쳐 있던 그에게, 믿을 만한 게이바 사장님이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뚱보는 오늘 하루 종일 거울 앞에서 연습을 반복했다. 평소보다 작은 사이즈의 셔츠를 입고, 느슨하게 늘어진 허리띠 구멍을 하나 더 안쪽으로 옮겨 묶었다. 앉아 있는 지금, 단추 사이로 불룩 솟은 배가 보일까 걱정스러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은 멀쩡해 보일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뚱보가 입술을 달싹이며 겨우 물었다.

“저… 그럼, 식성이 어떻게 되세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낸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딱히 식성은 없어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마치 그의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덧붙였다.
“바지만 걸치면 다 좋아요.”

뚱보의 입가가 살짝 풀렸다. 그의 눈동자 속에 잠깐 안도의 빛이 스친 것 같았다. 작은 희망의 문이 열렸다고 믿는 눈빛이었다. 저 문이 다시 닫히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만…”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게 깔았다.
“뚱뚱한 사람은 싫어요.”

그 한마디가,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그의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뚱보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동안, 그의 콧구멍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화장실 좀…”

“네, 다녀오세요.”

뚱보가 투벅투벅 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 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뚱보의 거대한 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는 듯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는 두 가지 빛이 섞여 있었다. 나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어딘가 비아냥거림.

나는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불꽃 너머로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타이트한 티셔츠에 감싸인 탄탄한 가슴, 한 번 휘둘러도 사람을 쓰러뜨릴 것 같은 두꺼운 팔뚝. 내 시선이 그 팔뚝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술을 삐죽였다. 살짝 미소를 띠며, 마치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듯이.

뚱보가 돌아왔다. 그의 눈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아무것도 털어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는 소파 옆에서 잠시 망설였다. 나갈까, 아니면 버틸까.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앉으세요.”

내가 짧게 말하자, 뚱보는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마치 두 개의 무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나는 내가 뚱보와 대화를 이어가는 현실의 무대, 다른 하나는 바로 뚱보의 몸 너머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무대였다.

나는 그 남자의 시선이 뚱보를 가르고 내게 닿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 테이블이 연극 무대 같았다. 나는 두 관객을 위한 배우였다.

“속으로 비웃었죠?”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뚱보 너머까지 들리도록.

뚱보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아니, 전…”

“절 욕했잖아요. 힘들게 고백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하며 말했다.

뚱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인연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욕한 적 없어요.”

나는 테이블에 남은 주스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전 사실 근육질이 싫어요.”

“네?”

뚱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근육으로 뭉쳐진 팔뚝을 보면, 왠지 무식할 것 같잖아요. 마치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내 말은 칼날처럼 뒷좌석을 향해 날아갔다. 그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마 자신의 팔을 한번 바라봤을 것이다. ‘이게 싫다고?’라는 의아함이 스쳤을 테지.

뚱보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저… 그게…”

나는 말을 멈추고 목을 만졌다.
“목이 좀 마르네요.”

“제가 물 가져올게요!”
뚱보가 잽싸게 일어나 정수기로 달려갔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뒷좌석 남자를 보았다. 이번엔 그의 미소에 더 짙은 흥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올려 알통을 뽐내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입모양으로 말을 만들었다. 내 뇌는 스마트해.

그에게 짧게 윙크를 보냈다.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훨씬 과장된 윙크로 화답했다.

게임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뚱보가 돌아와 물을 내려놓자,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저… 진석 씨.”

“네?”

“아까 그 말, 농담이었어요. 뚱뚱한 사람 싫다는 거…”

뚱보의 눈이 크게 동그랗게 뜨였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사실 전, 몸에 살이 많은 남자를 좋아해요.”

뚱보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의 표정은 복잡하게 흔들렸다. 확신, 의심, 기쁨이 빠르게 교차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숨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걸로 봐선 마음이 크게 흔들린 건 분명했다.

“왜… 거짓말을…”

“쉽게 받아들이면 재미없잖아요. 조금은 밀고 당겨야죠.”

나는 그의 손등을 살짝 스쳤다. 뚱보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뚱보가 차 값을 계산하러 간 사이, 나는 뒷좌석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얼굴에 걸려 있었지만, 처음과는 달랐다. 호기심이나 장난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묻어났다. 씁쓸함, 그리고 어쩌면 분노까지.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윙크를 하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뚱보에게 다가가 팔을 스치며 말했다.

“밥 먹으러 갈까요?”

“또요? 누가 돼지 아니랄까 봐.”
뚱보가 웃었다.

“헤헤.”
나도 가볍게 웃으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근데, 방금 나오다 보니 뒤에 앉아 있던 사람이랑 얘기하던데, 아는 사람이에요?”
뚱보가 물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요. 하지만 그 사람 덕분에, 나중에 오늘을 떠올리면 더 즐거워질 거예요.”

문을 열자, 찬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잠시 문간에 서서 어깨를 펴며 속으로 웃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 그것이 분노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덕분에 오늘의 밤은 완벽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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