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단편극장 3
* 연휴 동안, 세기말 PC통신과 인터넷 초창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오래 묵혀둔 초단편소설 5편을 공개합니다. 당시의 공기와 낯선 설렘을 함께 느껴보세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 이 소설은 일본만화 Makoto Sato의 『사토라레』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나는 사토라레 대책위원 신성현. 경력 10년의 베테랑이다.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 간 사토라레만 세 명. 한 명의 소녀, 그리고 두 명의 소년이었다. 박봉에 스트레스만 많은 일이라 다들 꺼리지만, 가진 것 하나 없이 자란 내겐 그마저도 고마운 직업이었다.
내 역할은 그들의 ‘연애 담당자’. 이름만 들으면 결혼정보회사 매니저 같지만, 실은 반대다.
나는 사랑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잠깐, 사토라레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사토라레란 선천성 R형 뇌량 변성증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생각이 반경 30미터 안의 사람들에게 흘러나가는 기이한 현상. 항아리에서 넘치는 물처럼 사념파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천재들이고, 그래서 국가는 그들을 ‘국가 자산’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나는 그 관리 체계의 일원으로서, 사토라레의 ‘짝사랑을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토라레에게 짝사랑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들의 성적 공상은 필터 없이 세상에 흘러나가고, 대상이 된 사람은 그 상상의 목소리를 그대로 듣는다.
― 그 애의 XX를 만지고 싶어.
― 내 XX를 그녀의 XX에 넣고 싶어.
이런 생각이 그대로 교실과 거리와 공기 속에 울려 퍼진다고 상상해 보라. 누군들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보호한다. 더 매력적인 남자나 여자를 주위에 배치해 시선을 돌리고, 사토라레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한다. 전문적으로 고용된 이 ‘미끼’들은 외모가 출중하고, 그런 만큼 주저함이 없다. 그렇게 사토라레의 방향을 돌려놓으면 사건은 조용히 정리된다.
― 멍청하기는.
나에게 사토라레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처리해야 할 업무, 보고서의 몇 줄, 때로는 잠을 빼앗는 귀찮은 문제덩어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새로 맡은 아이, 채주진. 서울의 한 국립대 물리학과 1학년, 18세에 조기 입학한 천재였다. 그의 담당 위원으로 배정된 나는 실험실의 조교로 위장하여, 주진이의 일상과 심리 변화를 관찰해 왔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였기에 오랫동안 평화로웠다. 사람과 감정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를 ‘안전한’ 아이로 분류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터졌다. 어느 날 실험실 관찰일지를 작성하던 중, 그의 머리에서 강력한 사념파가 흘러나왔다.
― 와… 조교님 엉덩이가 정말 멋지다. 한 번 OO 해보고 싶어!
그때부터였다. 주진의 머릿속에만 있어야 할 욕망이 실험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는 늦게 찾아온 사춘기의 폭풍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
처음 느끼는 욕망, 처음 깨닫는 금기, 그리고 자신이 동성에게 끌린다는 깨달음이 가져온 극심한 죄책감.
그의 상상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고, 죄책감은 비례하듯 커져갔다. 주변 학생들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곳곳에서 킥킥거림이 터져 나왔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실험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날 밤, 즉시 위원회에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토라레 중에 동성애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위원회는 처음 보는 유형에 당황해했다.
“전문가를 수배해 보겠네. 그때까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그 아이가 눈치채지 않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게.”
그들도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만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주진의 사념파 속 환상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그에 따른 죄책감은 폭발 직전까지 커졌다. 게다가 그의 상상 속에서 나는 점점 완벽한 존재로 변해갔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 '날 꽉 차게 안아줄 넓은 가슴’…
그는 나에게 빠져들었고, 나는 매일 그의 상상 속에서 살아야 했다.
결국 위원회는 결정을 내렸다.
“그를 다른 담당에게 넘기게. 신 위원은 전근 조치.”
하지만 그 통보를 받는 순간, 내 안에서 낯선 감정이 꿈틀거렸다.
주진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받을 상처와 혼란이 눈에 선했고, 이상하게도 그가 불쌍히 여겨졌다. 그리고… 그동안 매일같이 그의 마음을 ‘듣다 보니’ 나 또한 그에게 흔들리고 있었다. 보호 대상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
그날 밤, 나는 주진과 격렬하게 뒤엉키는 꿈을 꾸었다.
눈을 뜨자, 그와의 이별이 두려워졌다. 만약 내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나는 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이동 명령은 철회해 주세요. 맡은 이상, 끝까지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위원회는 내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도 끝내 전문가를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나 아닌 다른 남자가 그의 사념파에 노출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이유 모를 자신감이 온몸을 타고 번졌다. 대책위원이 된 이래 처음으로 일이 즐겁게 느껴졌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서 빨리, 주진이를 보고 싶다.
문을 열자, 그의 사념파가 나를 맞이했다.
― 와, 오늘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왔잖아! 조교님, 진짜 근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