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과장의 악몽

추석특집 단편극장 4

by 선우비


* 세기말 PC통신과 인터넷 초창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오래 묵혀둔 단편소설을 공개합니다. 당시의 공기와 낯선 설렘을 함께 느껴보세요.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다리가 너무 짧아졌어. 팔은 왜 이렇게 털 하나 없이 매끈거리는 거지? 거울이 어디 있지?

오, 하느님! 왜 거울 속에 재수 없는 김대리 얼굴이 들어있는 거지?

야, 인마, 비켜! 왜 네가 비명을 지르고 난리야. 미치도록 소리치고 싶은 건 난데 말이야!

당장 꺼져. 어제 한 말 다시 해줄까? 이번엔 귀 활짝 열고 똑똑히 들어!

“난 너 같은 게이 자식이 제일 싫어!”


“야, 싫긴 뭐가 싫어, 아침부터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시끄럽게!”

넌 또 뭐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얼굴에 팩을 하고 나타난 이 괴물은 뭐지?

그런데 이 목소리… 어제 옆에서 술 따르던 그 변태 자식이잖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거치적거리면서 거기 서 있지 말고 빨리 너도 씻어. 그렇게 퉁퉁 부은 얼굴로 배과장인지 사과과장인지 하는 인간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겠어?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일만 치고 다니지 수습할 줄을 몰라요!!”

뭐라고? 배과장인지 사과과장인지? 저게 입이 뚫렸다고!

내가 바로 배과장이다! 어디서 함부로!

이봐.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이리 나와보라고. 나한테 지금 욕한 거야? 이게 손님을 뭐로 알고!

그건 그렇고 여긴 도대체 어디지? 분명히 어제 변태 술집에서 정신없이 술 마신 것은 기억나는데, 여긴 기억이 없어. 여관은 아닌 것 같고.

으윽, 갑자기 배가 아파 오잖아. 아, 속이 너무 쓰려.

“여기 도대체 화장실이 어디야!”

“아휴, 저건 오늘따라 아침부터 웬 오두방정이야! 이 집 처음 오니? 네 코앞에 있는 게 화장실이잖아!”

이 인간은 새파랗게 어린 게 날 언제 봤다고 반말지꺼리지? 일단 저 자식부터 한방 쥐어박아야… 으윽! 아이고, 화장실!


잠깐만, 정리 좀 하자.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아. 다리는 짧아지고, 잠깐! 이게 뭐야? 왜 내 고추가 이렇게 흉측해졌지? 이거 누구 고추야!

내가 아직 술이 덜 깼나? 지금 꿈꾸는 건가?

그래, 이건 꿈이야. 거울 속에서 김대리 얼굴이 튀어나오고, 변태 술집 종업원이 나보고 반말 찍찍하고…….

혹시 어제 내가 술값을 안 내고 도망가다가 잡혀온 건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어.

으윽. 배 아파.

배가 이렇게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야.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어제 퇴근할 때 김대리가 할 말 있다고 찾아오기 전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김대리, 그 개자식! 그 자식이 갑자기 도끼눈을 뜨고 날 쳐다볼 때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술 사겠다고 할 때 그 속셈을 알아차렸어야 하는 건데!

우리 부서로 배속받아 올 때부터 놈은 나를 노렸던 거야.

나만 보면 실실 쪼개질 않나.

- 과장님,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 요즘 한창 뜨는 영화표 두 개 있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어쩌고 하면서 살갑게 굴었지.

난 바보처럼 좋은 부하 생겼다고 좋아라만 했어. 다른 놈들보다 그 자식에게 더 잘해준 것도 사실이야. 그 자식 목소리도 계집애 같고 하는 짓도 좀 게이 끼가 있었지만, 일 하나는 딱 부러지게 해냈으니까. 설마 진짜 게이겠냐 싶었지. 부서 사람들이 뒤에서 그 자식 목소리 놀릴 때도 나서서 유치한 짓 하지 말라고 옹호해 주고 그랬건만… 그놈이 진짜 게이일 줄이야!

게이! 게이!

윽! 그 더러운 놈들!

난 어제 틀린 말 하나도 안 했다고! 누구라도 그렇게 말했을걸?

솔직히 따지고 보자 이거야. 부하 직원들이 아침부터 홍석천이가 어쩌고 저쩌고 할 때도, 난 “어이 시끄럽게 굴지 말고 일들이나 잘해, 그깟 연예인 하나 게이라도 대한민국 안 무너져.”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그런데 그때 김대리 자식 얼굴 봤어? 날 노려보더라고, 참나.

다른 직원들이 “홍석천 게이래. 어휴 징그러워.” 어쩌고 할 땐 가만히 있더니, 내가 그 말 한마디 했다고 갑자기 고개 빳빳이 들고 날 째리는 거야. 그래서 나도 열받았지? 지가 감히 상사를 노려보면 어쩌겠다는 거야?

한마디 더 해줬지.

“앞으로 홍석천이처럼 호호거리며 얘기하지들 말라고. 게이로 오해받으니까.”

난 내가 꽤 적절한 유머를 사용했다고 생각했어. 사실 다들 뒤집어졌으니까. 그런데 김대리 그 자식은 더 날카롭게 날 노려보고는 확 나가버리는 거야.

아니, 내가 틀린 말 했나? 솔직히 홍석천이가 나 게이요! 하고 밝혔으니까 홍석천이처럼 말하는 놈들은 다 게이라는 오해 안 받게 생겼냐고!

그걸 민감하게 받아들인 김대리 그 자식이 웃긴 거지.

“과장님 이따가 퇴근 후에 얘기 좀 하죠.”라더군.

참나, 이거 부하직원 무서워서 어디 말 함부로 할 수 있겠나.


그래, 솔직히 조금 미안했지. 평소부터 그런 놀림 자주 받는 인간이니까. 내가 좀 심했을 수도 있어. 그래서 술 산다고 해서 따라간 거지. 나도 그쪽에서 조용히 나오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려고 했어.

그런데, 이 자식이 날 게이술집으로 데리고 온 거야. 주인인가 종업원인가 하는 저 변태도 거기 있었어. 자기랑 오랫동안 알고 지낸 형이라고 소개를 하드만. 변태 자식은 “그 말로만 듣던 배과장님? 너무 잘생기셨다!” 어쩌고 호들갑을 떨더라고.

난 속으로 엄청 놀랐지. 여기가 도대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게이바래. 그리고는 자기가 게이래. 저도 홍석천이랑 똑같은 놈이라는 거야.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과장님을 좋아했어요. 남들은 다 저를 두고 놀려도 과장님은… 과장님이 그러실 줄은 몰랐어요!” 하며 꺼이꺼이 우는 거야. 원 세상에!

“어이, 김대리!”

약간 짠해 보여서 달래주려 했는데, 이번엔 옆에서 술 따르던 변태까지 달려들어서,

“이렇게 잘생긴 배과장님이 그런 끔찍한 말을 했단 말이야? 너무하네!” 하면서 눈을 뒤집는 거야.

깜짝 놀랐지.

‘아쿠나, 내가 잘못 걸렸구나.’ 싶은 거야.

게이술집에서 강간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

김대리 어깨를 쓰다듬으며 달랬지. 그런데 그걸 오해했는지 김대리 그 자식이 엉겨 붙으면서, “좋아해요. 과장님.” 그러더라고.

미치겠더구먼!

그래서 술을 진탕 마셨지. 솔직히 김대리 그 자식이 가슴팍에 안기면서 우는데 불쌍하기도 하더라고. 어쨌든 일도 잘하는 놈이라서 갑자기 회사 그만둔다고 하면 내가 꽤 곤란하거든.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어깨도 두드리면서 좋은 말을 하는데, 이 자식이 훌쩍거리면서 자꾸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거야.

아, 기분이 점점 묘해지면서 나중엔 흥분하기까지 하더라고. 김대리 그 자식, 사내놈이지만 얼굴도 희고 곱상한 것이 사실 꽤 예쁘게 생겼거든. 갑자기 나도 게이가 되나 하고 불안해졌어. 이러면 안 돼! 속으로 소리치고,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였어.

“김대리, 좀 떨어져라! 내가 게이냐? 그리고 너 앞으로 똑바로 해! 네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신 차려. 솔직히 같은 남자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부모님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그랬더니 주인 놈이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맞고함을 쳤지. 나도 대거리만큼은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성미거든. 김대리가 말렸지만 그냥 나오는 대로 소리 질렀어.

그러다가… 그냥 필름이 끊겨버렸지.


“야, 하루 종일 싸냐! 빨리 나와서 거들어. 그래야 그 배과장인지 사과과장인지 해장국이라고 끓여 먹여 보낼 거 아니야! 하여간 저건 식성도 이상해. 저 배불뚝이 아저씨가 뭐가 좋다고… 쯧쯧.”

아니, 저 자식이 또 욕을!!

그나저나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내가 김대리 껍데기를 쓰고 있는 거야?

혹시 이거 꿈인가?

그래, 꿈이야. 꿈! 난 더 자야 돼. 비몽사몽 상태야. 자자. 자서 빨리 이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야 돼.

저기 문이 조금 열려 있는 데가 아까 자던 곳인가? 음, 자러 가야 돼.

허걱! 이게 뭐야? 저기 이불을 반이나 차버리고 자는 인간이 누구야!

나잖아!

왜 내가 저기 있지? 세상에, 홀딱 벗고 있잖아. 으윽, 불뚝 솟은 저 가운데 물건은 또 뭐야! 민망하게 아침부터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넌 누구냐! 내 얼굴을 뒤집어쓰고 아침부터 내 고추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넌 누구야! 지금 방문 앞에 서 있는 난 또 누구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이런, 저 자식! 황홀한 듯이 씰룩거리면서 흔들고 있잖아!

저 자식이, 아니 내가, 으, 헷갈려! 도대체 뭐가 뭔지!

아무튼 저 자식은 내가 아니야! 난 여기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고! 저 자식이 내 껍데기를 뺏어간 놈이구나. 바로 저 자식이 김대리구나!

야, 인마, 너 내 고추에서 빨리 손 떼지 못해! 그렇게 황홀한 표정 짓지 말란 말이야! 내 고추 내놔!!!!

이런, 이런!

이건 또 무슨 반응이야.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져. 심장이 타버릴 것 같아. 저기 눈앞에 있는 내가 왜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지? 아, 키스하고 싶어져.

안 돼!

설마 내가 김대리, 그 자식이 돼 버린 건가?

그럴 순 없어. 내가 나를?

이럴 순 없어!

난 게이가 아니야!

그런데…

아! 나의 품이 이렇게 황홀할 줄이야.

말도 안 돼.

헉…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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