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제사도 빠지는 내가 장모님 제사는 꼭 가는 이유

게이 커플은 무엇으로 사는가 01

by 선우비


“게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존재 = 파트너 어머니”


지난 주말에 오스씨의 어머니 제사를 지내러 함께 서울에 다녀왔다.

제사는 형님 집이 공사 중인 관계로 남양주에 있는, 평소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에서 지내기로 했다.

효율을 생각한다면 부산에서 첫 기차를 타고, 수서역에서 기다리는 형님 차에 올라타 남양주로 갔다가,

제사가 끝나면 역순으로 다시 부산에 돌아오면 되었다.

하루의 반이면 부산 광안리에 사는 사람이 경기도 남양주 산속에서 부모 제사를 지내고 돌아올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이렇게 표 예약해서 혼자 다녀와.”


오스씨에게 권하자 대번 도끼눈을 뜬다.

평소 귀신 안 믿는다면서도, 제사에 마누라 못 데려가면 조상이 벼락이라도 치는 줄 아는 한국 남자들, 정도는 아니지만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에휴,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는 일사천리로 읊었다.


“당일치기는 안 돼. 간 김에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저녁 먹고, 미술관도 가고... 참, 서울 갔으니 평양냉면은 꼭 먹자.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봉피양이 어느 역 근처였더라.”


언제나 그러하듯 염불보다 잿밥이 고봉밥인, 어머니 제사를 빙자한 패키지여행이 결정됐다.

제사에 나를 데려가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에-헴.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행위라면...

난 유물론자다.

귀신이건 신이건 안 믿는다.

아니아니(도리도리).

‘안 믿는다’ 보다, 무시당하고 싶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귀신이나 각종 신, 있을 수도 있고, 있어도 좋지만, 내 삶에는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앞을 가로막고는 “당신에게서 뭔가 영험한 기운이 느껴져요.” 선언하는 사람들,

확성기를 손에 들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고함치는 사람들,

퀴어퍼레이드에 와서 "아들아, 동성애 그만 하자!" 피켓 시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면서 살고 싶다.


“알았어, 간섭하지 않을게. 가끔 와서 안부나 전하고 시주(성금, 입장료... 뭐든지)나 하고 가.”


자신의 자리에서 은은히 빛을 내는 곳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

오래되거나 세련된 건물을 잘 관리하는 노고에 박수를,

더불어 신도도 아닌 내가 그 안에서 잠시나마 평온을 선물 받았다는 감사의 의미로.


제사를 지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행위라면 기꺼이 참석하고 돈을 쓴다.

제사 핑계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근황도 나누며 위로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런데, “절에 모신 네 아버지 촛불이 힘이 너무 약해. 보시를 더 해야겠다.”라거나,

“묏자리가 그래서 너희가 그렇게 사는 거야. 이장을 해야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잠자고 있던 유물론자의 피가 끓는다.


“솔직히 아빠도 좀 그렇지.

돌아가신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묏자리가 불편하네, 하시면 어쩌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 아빠가 그랬을까?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생각은 안 해?

기어이 아빠를 죽어서도 자식 괴롭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해봐야 소용없다.

‘그 세계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나’보다, ‘죽은 조상이 말하는 나’를 더 믿는 사람들의 세계에 내 자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며느리 모드 오프! 사위 모드 온!


사실 ‘여행 기분 만끽’은 농담이다.

돌아가신 지 이제 꽉 찬 2년이 다 됐는데, TV에서 어머니를 닮은 분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세 차례, 며칠 간 함께 지냈던 인연을 이어온 것뿐이지만, 그것도 15년을 지속하니 잊히지 않은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셨는데, 오스씨는 아주 그냥 늦둥이 막내라, 형제와 나이 차가 많다.

거기다 내가 오스씨와 띠동갑, 그러다 보니 오스씨의 첫 조카가 나랑 갑장이었다.

어머니는 끝내 모르셨지만, 장손자뻘인 막내며느리 또는 막내 사위가 있었던 셈이다.

아셨다면 귀엽고 깜찍하다 이뻐하셨을까?

아니면 아들보다 15kg 무거운 덩치를 보며 듬직하다 하셨을까.

적어도 드라마에서처럼 얼굴에 물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라 확신한다.

애니웨이!


어머니와의 첫 기억은 오스씨와 부산에서 함께 살기 시작할 즈음이다.

아들내미에게 동거인이 생겼다고 해서 어찌 사나 구경을 오셨는데, 하필 오스씨는 중국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

걱정하는 오스씨에게 맡겨주시라! 큰소리치고는 어머니께 무얼 하고 싶으시냐 하니, 자갈치 시장에 가고 싶다 하셨다.

당시 우리는 태종대 근처에서 살면서 125cc 오토바이를 이동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장난으로 오토바이 타고 가실래요 했는데, “태어나서 오토바이는 처음 타본다.” 기대감을 드러내셨다.

정말 겁도 없었지. 진짜로 팔순 노인을 뒤에 태우고 왕복 1시간 거리의 자갈치 시장에 다녀왔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해진 영도흰여울마을 주변이 예전에는 아주 조용한 해안도로여서, 어머니는 달리는 동안 큰소리로 웃으시고 소리도 지르며 즐거워하셨다.

이 이야기는 가족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어머니는 긍정과 부정을 양 끝에 놓고 100을 10단위로 칸을 나누면 긍정 쪽에 80인 성격이셨다.

함께 있으면 기분 나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항상 웃는 얼굴이셨다.

귀여운 막내아들과 같이 사는 애(바로 나)에 대해서도 경계를 하거나 신상 내력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셨다.

그래서일까, “게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존재 = 파트너 어머니” 앞에서 난 맘껏 찧고 까불 수 있었다.

아침 식사 만드실 때 일부러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서 수저만 늘어놓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책 읽다가 주시는 과일 날름날름 받아먹기,

뭐 해줄까 물으시면 먹고 싶은 거 줄줄이 읊기 등등.

마치 친손자라도 되는 양 구니까 성격 좋은 어머니도 버거우셨나 보다.


“걘 좀 눈치가 없는 거 같더라.”


오스씨를 건너서 그런 말을 들었지만, 사실 나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부산에서 자식들 장성할 때까지 사시다 서울로 가셨던 터라, 우리 동네에는 어머니 친구분들이 많이 계셨다.

막내아들 집에 오실 때마다 친구들을 불러 수다회를 가지셨는데, 다들 나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오쓰랑 쟤는 무슨 사이야?”


“응, 밥 해주는 애야.”


당시 난 방에 있다가 막 거실로 나오던 참이었고, 그 이야기를 정통으로 들어버렸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빨개진 얼굴로, “아니, 그게 아니라... 친구, 친구. 제일 친한 친구.” 얼버무리셨는데, 그때부터 난 결심했다.


‘시어머니 모시는 며느리 모드 오프! 장모님 앞에서 애교 부리는 사위 모드 온!’


그날 이후 어머니는 당신도 모르시게 장모님이 되셨고, 난 ‘사위 대접’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되었다는 웃긴 이야기다.

나의 온오프는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달라졌는데,

그마저도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 막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서운함이니 대접이니 하는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는,

그냥 지극히 편안한 가족이 되어있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 이미 친가나 외가나 할머니가 다 돌아가신 상태였는데,

할머니가 계셨다면 딱 그랬을 것 같은,

언제나 해바라기처럼 크고 환하게 우리를 바라보며 웃어주시던 어머니.

비록 귀신도 안 믿고,

불행히도 한국산(産) 동성애자라서 자손도 가질 수 없는데 제사 따위 나랑 뭔 상관?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를 떠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는,

기억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서 제사에 간다.


Q: 그래서 이번 제사 여행은 온전히 어머니만 생각하면서 가족들과 안온하고 따듯한 감정만 나누고 돌아왔나요?

A: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 아시죠? 이번 주말에 서울이 미세먼지가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더라고요.

살려면 환기 시설이 잘되어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딘지도 모르고 쫓기듯이 들어갔는데, 여기가 어디지?

이세계(異世界)인가, 신세계인가!

아무튼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세상에, 평소에 찍어뒀던 겨울옷이 30% 세일을 한다고?

마치 어머니가 ‘어머, 이건 꼭 사 입거라!’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것만 사고 나오려는데, 다른 층에서는 얼마 전에 깨진 물컵을 대용할만한 스칸디나비아산 유리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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