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책들...

2024, 1월의 독서

by 선우비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


동네 책방이자 홍예당 사무실인 홍예당 서점에 김초엽의 신작 장편소설 파견자들 열 권이 입고되었다고 했다. 일반 서점보다 동네 서점에 한 달 먼저 출고를 했다고 하니, 아마도 작가와 출판사 모두 동네 책방을 지원하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홍예당 서점에 남은 책의 재고는 9권. 내가 산 한 권만 팔린 셈이다. 적어도 퀴어전문서점 홍예당의 독자들에게 김초엽은 그렇게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인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다들 열광했던 것처럼 나도 SF의 팬으로서 열광의 끝자락에서 환호하고 있었다. 그 이후 나온 책을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고, 재작년 제주 동네 책방 탐험을 할 때는 마침내 신작 므레모사, 를 사기도 했다. 므레모사는 내 기준으로는 재미있었지만, 역시 김초엽의 팬인 오스씨는 전작들보다 못하다는 평이었다. 앞의 전개가 너무 빤하게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던가?

파견자들을 사들고 집에 오자마자 오스씨는 환호하며 먼저 읽겠다고 했다. 다 읽은 그의 평은, 므레모사랑 비슷한 이야기 구조다, 였다. 실망 쪽이라는 말. 참신하지 않다..는 SF계에서는 가장 큰 비난인데... 그래서 나 또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고, 중간에 계속 막히다가 결국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본디 SF장르에 너그러운 사람이라, 그래도 이런 게 나와준 게 어디야, 하며 후한 평을 해주고 싶다. 젠더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캐릭터 설정은 김초엽의 시그니처라 할만한데 역시 이번에도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인물과 상황들이 알고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중립적인 또 다른 삶과 세상이라는 주제의식도 여전히 멋지다. 벌써 그런 동어반복이 지겹다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래서 난 므레모사 같다는 평도 볼만하다..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작품이 나온다면 또 사서 보게 될까?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될까?

그건 장담할 수 없겠다.


심너울 소설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2010년대 최애 작가는 누가 뭐래도 박상영이다. 게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그래서 그가 출연한 팟캐스트도 듣고, 유튜브도 보고, 네이버에서 진행한 짧은 오디오클립도 들었다. 이 책은 매주 출판계의 스타들을 소개하는 오디오클립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책이다. 몇 화인지는 까먹었다.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제목에 혹해서 샀다. 그리고 읽었는데, 역시 SF 특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제목에서도 짙게 느껴지는 사회풍자적인 시선은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SF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를 그려내는, 즉 하나의 세상을 온전히 창조하는 작가의 상상력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딘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근미래물은 흥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산 지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찌어찌 꾸역꾸역 다 읽게 되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만 작가의 장편을 기대해 본다.


양승욱 사진집 사물의 기억법

게이 4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게이PC방,에서 게스트로 나와 입담을 자랑하던 사진작가 양승욱의 사진집이다. 게이 작가이기에 평소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의 전시회를 간 적은 아직 없다. 그 점이 항상 아쉬웠는데 이번에 그의 작품활동을 아우르는 사진집이 나왔다고 해서 이때다 냉큼 홍예당 서점을 통해 구매했다.

내가 양승욱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사진이 <2019 Pride Photo Award>(라는 사진계의 권위 있는 상이라는데 사실 그때 처음 알았다)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페북 친구가 퍼온 기사에서였다. 두 명의 남성 슈퍼히어로 인형이 키스를 하고 있는, 어? 기발하다, 근데 그동안 이런 시도가 한 번도 없었던 거야?라는 의문이 드는, 재미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집에서 그 작품을 비롯해 장난감 인형들이 서로 섹스를 하는 PlayToy 시리즈가 다수 수록되었다. 그 사진들을 보고 나니 우리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으로 게이섹스를 표현해 낸 작가의 똘끼가 얼마나 파격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장난감의 배치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기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에 여러 번 감탄하게 되었다.

본인은 장난감 작가라는 타이틀을 한때 거부하고 싶었다고도 하는데, 이제야 작가의 작품 세계에 흥미를 느끼게 된 늦깎이 팬으로서는 이후에도 장난감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쓱 훑어보고 또 며칠 지나 또 들춰봐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진집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의 다음 행보도 계속 지켜봐야겠다.


앨리스 오스먼 하트스토퍼

홍예당 서점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코너가 바로 그림책이 꽂혀있는 곳이다. 그중에서 조금 우러러봐야 하는 눈높이 즈음에 도도하게 전시되어 있던 이 책이 어머나 세상에, 밀리의 서재에 서비스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픽노블이라는 타이틀이라지만 그냥 우리가 흔하게 보는 만화와 비슷한 그림체라 진입장벽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칠 전 듄을 그래픽노블로 봤는데,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글자가 너무 작아서 외국의 그래픽노블은 거의 보지 않는다.)

청소년 두 명의 사랑과 그 나이대의 고민을 담은 작품으로 네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든 다니 정말 좋겠다, 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튼 그들의 사랑을 지지하는 어른이 수두룩 빽빽한 만화 속 세상이 너무 부러워졌다. 영국의 현실도 비슷할까? 잘 모르겠다. 작품이 아주 많이 판타지인 것 같지만, 또 그 나라에서 그 정도는 리얼리티라고 받아들여지는 수준일지도. 성소수자들 관련해서 먼저 나아가는 나라들과 한국의 격차가 갈수록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냥 내 답답함일 뿐이려나...

청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감정이입할 나이는 이미 훌쩍 지났기에 내용에 대한 감상은 어쩐지 심드렁할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뻔한 이야기인데도 그것을 계속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가는 작가의 정교한 심리묘사는 발군이었다. 세상만사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노쇠한 게이가 아닌 분들에겐 강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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