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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Feb 29. 2024

처녀귀신이 점지해 준 클래식

2024, 2월의 클래식

1. Fantaisie musicale dans un rythme de Fox sur les motifs de Chopin "Chopinata", Clément Doucet(클레망 두세) : 손열음

2. 8 Humoresques, Op. 101, B. 187, No. 3, Antonín Dvořák : 다니엘 바렌보임

3. Isolde's Liebestod from Tristan und Isolde, S. 447, Franz Liszt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애플뮤직 클래식앱에서는 추천송을 듣다가 맘에 들면 바로 별표를 눌러 즐겨찾기를 할 수 있다.  첫날 그렇게 해서 모은 곡이다.

1. 손열음이 연주한 클레망 두세의 곡은 재즈풍의 피아노곡으로 쇼팽 왈츠 작품번호 64-2를 주 멜로디로 삼아 쇼팽의 폴로네이즈, 즉흥환상곡도 섞었다고 한다. 듣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었다. 원곡을 찾는 재미가 있다는데, 그냥 재즈로 즐겨도 좋다. 옆에서 듣던 오스씨는, 쇼팽을 왜 저렇게 연주해? 깜짝 놀라워했다.

2. 두 번째는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인데, 여러 곡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유모레스크로 알던 건 7번이고 총 9곡이 있다 한다. 1번부터 너무 좋다. 나의 픽은 3번.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좋다.

3. 독일어를 전공했음에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바그너의 동명의 작품은 그냥 피하고 싶은 아이템 같은 거였는데, 결국 이 노래에서 잡혀버리다니... 사랑의 죽음으로 번역되는 이 곡은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아리아 '부드럽고 온화한 그의 미소'를 바탕으로 리스트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거라고. 내친김에 원곡의 아리아도 들어보았다. 낭만적이고 오글거리고 부드럽고... 끝내 웅장하게 솟아오르고... 마치 아이유는 대작 발라드 느낌의...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아리아였다. 리스트 곡과 번갈아 가며 들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미하일 플레트뇨프(mikahail pletnev)- tchaikovsky의 사계

페이스북을 하고 있는데, 알리익스프레스 광고가 뜬다. 원목으로 장식한 CD플레이어인데, 사뭇 뽐뿌질이 오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CD플레이어가 있다.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이다. 아주 오래전 남포동 전자상가(라기보단 옛날 라디오나 녹음기 같은 거 파는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골목)에서 산 것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쓰던 물건이랑 똑같은 것이라 기쁜 마음에 사서(꽤 비싸게) 한동안 열심히 듣다가 스트리밍 시대에 도래하여 근 십 년 동안 팽개쳐둔 상태였다. 갑자기 CD플레이어를 구동하고 싶어졌다. CD 장식장으로 가 첫 번째로 집히는 것을 꺼내 들었다.

94년도에 버진클래식이란 회사에서 발매된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음반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와 '하나의 주제에 의한 여섯 개의 피아노곡(Six Morceaux Op.21)'가 들어있다. 속지 설명은 영어, 독어, 프랑스어로 되어 있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동일한 표지와 구성을 가진 앨범은 없다. 혹시 이것은 말로만 듣던 마니아들의 거금을 주고 사고 싶어 한다는 희귀판???


그나저나 우연이란 참으로 놀랍다. 바로 어제저녁 밀리의 서재에서 추천해 준 김수연 작가의 소설집 <스위처블러브스토리>의 첫 번째 소설 <전지적 처녀귀신 시점>을 읽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팬이 된 것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죽게 되었고, 그에게 달라붙어 일상을 훔쳐보느라 성불 타이밍을 놓쳐 어쩔 수 없이 피아니스트의 인생에 동행하게 된 여자 귀신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가장 긴장되는 부분은 귀신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다. 피아니스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주 피아노를 쳐주었는데,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6월-뱃노래>였다.

소설을 읽은 다음 날 우연히 집어든 CD에 소설에 나온 클래식이 들어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혹시 소설 속 처녀 귀신이 나에게 슬쩍 암시를 걸었던 것이 아닐까?(소설 속에서 이 귀신은 그 정도의 능력은 있는 걸로 나온다.)

미하일 플레트뇨프는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나중에 지휘자가 된 케이스로 소개되는데, 이 또한 어제 서울시향의 예능프로그램(모델 정혁이 진행한다)에 나온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직접 지휘하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이 귀신 참 깨알 같다... 는 느낌을 받았다.

저녁에 퇴근한 오쓰씨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우리 집에 그 사람 LP도 있어!"

진짜네???

진짜 깨알 같은 귀신이구나...


ps : 사계에 대한 작품 설명을 잘 다루고 있는 블로그를 발견해서 일단 링크를 남겨본다. 나중에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https://20200222wj.tistory.com/35 


Chopin - Piano Sonata b flat minor op. 35

요 며칠 계절성 우울증이 휘몰아쳤다. 보통은 삼월이 돼야 시작되는데, 한낮의 온도가 이십도 가까이 올라가고 비까지 내려버리니 뇌가 봄이 왔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경험상, 억지로 웃어보거나 정신없이 일을 해서 회피해 봐야 소용없다. 터지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인 우울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가장 중요한 일을 할 때 몰아쳐온다, 결국. 그래서 우울증이 도지면 맘껏 우울해주는 게 좋다.

우울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2번. 그중 3악장을 여러 피아니스트 버전으로 들었다. 애플뮤직 클래식의 장점이 이거다. 여러 버전을 주르륵 소개해준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호로비츠, 조성진, 그리고 이고 포고렐리치.... 그중에서 나의 선택은.... 두구두구두구두구...

이고 포고렐리치 당첨!!!!


장송행진곡이다. 그래서 한없이 느리고 무겁다. 다들 애통하고 비통하게 연주한다. 그런데 포고렐리치가 그리는 죽음은 어딘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포근하다. 꽃 피는 봄에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무덤 앞에서 소주 부어놓고 절을 하고 나서 허리 쭉 펴고 탁 트인 산세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우울하고 싶지만 허우적대기는 싫은 지금 내 심정에 딱 적당한 장송행진곡이었다.


Asturias (Suite española, V) - Albéniz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추락의 해부'를 보았다. 영화 속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치는 피아노곡은 기타 연주로 더 유명한 Asturias (Suite española, V)이다. 작곡가인 Albéniz(이삭 알베니즈) 조차 기타 편곡 버전이 더 좋았다고 할 정도로 기타로 익숙한 곡이지만, 피아노 곡으로도 듣고 싶어서 사이트를 찾다가 클라우디오 콜롬보라는 사람의 알베니즈 스페인 모음곡 앨범을 찾았다. 연주가 뭔가 만족스럽지 않아 이번엔 유튜브에서 검색을 하니 몇 개의 영상이 보인다. 앗, 그런데 이 곡의 제목이 Cantos de España Op. 232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뭐지 뭐지? 같은 노래가 왜 다른 제목, 번호로 적혀있는 거지? 궁금증이 터져서 또 검색 시작.

알고 보니  '스페인 모음곡'(Suite española Op. 47)을 먼저 냈고, 나중에 '스페인의 노래'(Cantos de España Op. 232)라는 작품집을 낼 때 아스투리아스를 첫 번째 전주곡으로 수록했다는 이야기였다. 아, 이제야 뭔가 검색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내친김에 '에바 크라나달' 버전으로 '스페인의 노래' 전 곡을 들어보았다. 5번째 곡이 1번처럼 좀 터지는데, 딱 스페인 느낌. 일단 BPM이 빨라야 스페인이니까.


Mozart : Oboe Concerto in C Major, K. 314, francois leleux(프랑소와 를뢰)

KBS교향악단 유튜브 계정의 어그로 수준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다. 공영이란 타이틀을 가진 매체들이 이렇게 변하는 데 일등공신은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

3월 정기공연 프로그램에 오보에 협주곡이 있나 보다. 연주를 맡은 솔리스트를 모셔 이야기를 나누면서(프랑스인이다) 바케트를 먹이고 맛 평가를 부탁한다. 그걸 또 평가해 주는 연주자. 뜯어지는 소리는 좋지만 속은 덜 부드럽다는 둥... 미식의 나라 아저씨답게 단호하다. 바케트를 악기 삼아 리드를 꽂아 연주하는 흉내까지 내주며 카메라 너머의 pd를 즐겁게 해 준다. 오랜 연주활동을 해서 예능감까지 다져진 대가의 여유가 느껴지고, 다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구나. 나도 격렬하게 호응하고 싶어 진다.

대부분의 연주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온몸으로 음미하고 싶어 지는데, 어떤 연주는 눈으로 연주자를 꼭 보면서 즐기고 싶어 진다. 대게는 피아노 연주가 그렇다. 그래서 연주자의 손이 잘 보이는 자리를 고집하는 편이다. 오보에 협주곡은 거의 들어볼 일이 없었는데, 빵으로 연주하는 '프랑소와 를뢰' 아저씨의 코믹스러움에 반해 그의 연주를 찾아보았다.

작품은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오보에를 연주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모양이 묘하게 귀여워 보이는 얼굴상이다. 악기와 외모의 궁합이 좋다. 긴 호흡과 빠른 손놀림은 감탄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실황을 보니 를뢰 아저씨(왠지 아저씨라고 불러도 될 듯 친근한 이미지다)가 말하는 "감정을 가득 담아내되, 절제를 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오케스트라와 오보에의 티키타카가 멈추고 오보에가 감정을 쏟아낼 때의 그 매력적인 플로우는 귀만으로는 충분히 느끼기 힘들 것 같았다. 부산에서도 이 곡의 실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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