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와킨아...

by 선우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카카오톡의 친구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봄도 왔는데 카카오톡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름만 가지고는 누가 누군지 도통 알 수 없다. 할 수 없이 일일이 그 사람의 상태메시지와 사진을 확인하면서 숨길 사람은 숨기고 차단할 사람은 차단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태메시지를 보았다.

- OO의 매형입니다. OO가 갑자기 쓰러져서 뇌사상태입니다.

분명 오랜 게이 친구의 카카오톡인데, 상태메시지의 OO은 내가 아는 친구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놀 때는 와킨이란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닉네임으로 소통해 왔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우리가 더 긴밀한 사이였을 때 서로의 본명을 교환했었기에 그의 본명을 알고 있었다. OO은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


함께 놀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와킨의 본명은 일치했다. 그는 와킨의 핸드폰 번호가 바뀌지 않았나 의심했다. 전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전화를 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제였지만, 무서워서 전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와킨은 나랑 동갑이었고, 우린 아직 그렇게 쉽게 죽을 나이가 아니었다. 더구나 얼마 전 나에게 아버지의 부고장을 보내올 정도로 '생생한 존재'였다.


... 하지만, 당장 전화를 하지 않은 데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아버지의 부고장 때문이었다.

올 초에 카카오톡으로 달랑 날아온 부고장. 달랑 부고장 하나 보내고 다른 연락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부고장 하나 던져놓고 다른 말이 없다니, 너무나 괘씸했다. 그가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동안 조금 쌓인 것도 있었고 해서.. 뭔가 좀 사연이 있었음... 계속 그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그는 그 이후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그와 잠시 멀어져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 사건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와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예 전화기가 꺼진 상태였다. 진짜 장난이 아니다 싶어 이번엔 SNS를 뒤졌다. SNS 닉네임을 알지 못해 대충 그를 알 거 같은 사람들을 다 뒤지다, 결국 찾아냈다. 누군가 그의 부고장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부고장에 올라온 이름은 내가 그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와킨은 내가 알지 못하는 본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알던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연락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라 미안했지만, 진상을 알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와킨의 본명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제야 와킨이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병명을 들었는데, 그런 병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증상이었다.


와킨은 내가 개인사이트를 운영할 때 처음 알게 된 친구였다. 나처럼 무언가를 과잉으로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금방 친해졌다. 소싯적에 머라이어 캐리의 광팬으로, 한국 머라이어 팬클럽 회장도 지냈고, 그녀가 내한해서 방송에 출현했을 때는 회장 자격으로 만남도 가졌다고 자랑했었다. 당시 난 휘트니파여서 꽤 투닥거렸지만, 와킨이 알려준 머리이어 캐리의 'love takes time'을 듣고는 머리이어도 쬐금 좋아했었지...

내가 사진기를 만지작 거리며 슬슬 출사를 나가볼까 할 때 이미 전국을 다 다니며 사진 찍기에 열을 올렸던 것도 그렇고, 김연아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함께 아이스쇼도 가면서 덕질을 공유했고, BTS도 그랬다. 생각해 보니 아주 많이 닮았었다, 우리.


본인은 아주 말랐는데, 통통한 게이를 좋아하다 보니, 언제나 연애시장에서 을이 되어야 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다 결국 사십이 넘더니 나잇살을 무럭무럭 키워내서 배 나온 아저씨가 되긴 했는데, 연애 시장에서 갑이 된 것 같진 않았다. 만날 때마다 안 팔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애 이야기, 덕질 이야기, 가족 이야기 - 특히 재혼한 아버지 이야기(주로 욕)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하고 또 했다. 최근엔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고 곧 돌아가실 거 같다고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옅어졌다면서. 그래서 내가 부고장 이름을 그의 아버지 이름으로 착각한 것이다.

하여간 한번 자리에 앉으면 세 시간은 너끈히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였다.


와킨의 페북에 들어가 보니 그동안 살아온 하루하루가 소소하게 박제되어 있었다.

몸을 만들고, 산을 타고, 친구를 만나고, 집안을 꾸미고, 식집사로 화초를 키우고, 썩 좋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먹으며 살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친구가 말 같지도 않은 병으로 한순간에 죽어버렸다.


인생은... 진짜 뭘까?


이제 겨우 나이 오십 갓 넘겼는데, 벌써 죽은 지인이 너무 많다.

하나같이 관계가 소원해지고, 이제는 거리를 둬야하나 고민하는 시점에서, 난데없이 손 쓸 겨를도 없이 죽어버렸다.

그래서 항상 후회가 남는다.

더 긴밀해졌을 때 보낼 수 있었다면.

불현듯 세상을 등졌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알았었으면.

충분히 그 자리에 가서 펑펑 울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했었으면.


누군가에게 모질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앞으로 너를 기억해야겠다.

거기서는 좋아하는 사람 많이 만나서 덕질 실컷 하고 즐겁게 살아라.

잘 가라, 와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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