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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5] 3. "왜 꼭 해야 하는데"라고 물을 때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세상 곳곳에 도배되어 있다. 클라우드가 그러했고 AI가 그러했듯이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누군가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해 어느덧 세상을 휩쓰는 거대한 바람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글을 쓰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나 화젯거리를 정리해 두는 종이첩을 뒤적이다가 오래전 적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진정한 모빌리티의 혁신은 "왜 꼭 가야 하는데"라는 물음이다'


라고 적어놓은 한 문장. 문장을 읽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걸 언제 적어 놓았었는지, 혹시 내 생각인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생각인 건지 등등. 

  그리고 생각했다. 자동차의 동력이 내연기관에서 전기기관으로 변화하는 것은 엔진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지 사람을 태우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람이 이동해야 한다는 기본 개념에는 변함이 없음을. 전기차 역시 사람이 직접 타고 움직여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된 관념이 적용되는 것이다. 적어도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작은 변화일 수는 있어도 혁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진정한 모빌리티의 혁신, 더 나아가 친환경 에너지의 혁신은 차량의 진화가 아니라 다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굳이 사람이 가지 않아도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세상말이다. 


  그러다가 보안의 영역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진정한 보안의 혁신은 무엇일까 라는 작은 물음. 그리고 하나의 작은 화두를 던져보았다.


'진정한 보안의 혁신은 "왜 꼭 설치해야 하는데"라는 물음이다'


  PC에, 서버에, 네트워크에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보안제품들. 그저 당연히 설치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제품들. 법 때문에, 인증 때문에, 예산을 만들려고, 다른 회사들은 다 도입하니까 등등의 갖가지 이유와 핑계로 도입된 바로 그 제품들. 직원들로부터 업무에 불편하다는 불평이 나오도록 만든 제품들. 하나하나 도입될 때마다 운영을 위해 보안조직의 자원을 소모시키고 있는 제품들.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꼭 이것들을 설치해야만 했던 것인지, 혹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설치에 따른 보호의 효과는 충분히 검증되었는지, 도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 그리고 깨달았다. 나 스스로도 제품의 도입에 따른 효과에 대해 확신이 없음을. 자신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 제품들이 도입되어 지금 직원들의 PC에, 서버에, 네트워크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어쩌면 그때 그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 윗선의 지시였거나 혹은 그룹의 선택이었거나 혹은 와보니 이미 저질러져 있었거나 혹은 침해사고의 여파로 부득이하게 외부에 보여줄 것이 필요했거나. 여하튼 그 결과들이 지금도 내 눈앞 컴퓨터에서 실행되고 있다. 대체 PC에만 몇 개가 도입된 건지 보안을 하는 나조차도 헛갈릴 정도이다.


  너무 많이 설치된 보안제품에 스스로도 질려서 최근에는 보안제품 다이어트라는 용어를 각종 강의 등에 홍보하고 있다. 꼭 필요한 기능들만 간추려 집약한 하나의 보안제품인 All-In-One 제품 즉 슈퍼제품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보안의 혁신은 "왜 꼭 설치해야 하는데"라는 물음이다'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나서 다시 되물어보고 있다. 직원들 PC에 꼭 슈퍼제품을 설치해야만 하는지, 더 정확히는 모든 직원들 PC에 슈퍼제품을 설치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이다. 


  쉽지 않은 질문. 오래전에 이미 했어야 하는 질문. 그리고 지금부터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다. 지금의 이 결정이 맞고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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