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리뷰
2020.11.23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승부한다.
반 다이크, 조 고메즈, 알렉산더 아놀드, 티아고 알칸타라, 제르단 샤키리, 옥슬레이드 챔버레인, 조던 헨더슨 등, 어느 팀에서든 주전으로 뛸 법한 선수들이 전부 부상으로 낙마했음에도 - 심지어 모하메드 살라마저 코로나 양성으로 결장했음에도 - 불구하고, 8R 기준 EPL 1위 레스터 시티를 깔끔하게 완파했다.
사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레스터 시티의 빠른 공격을 초토화된 리버풀 수비진이 막아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샘솟고 있었다. 나 역시도 무승부만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리버풀의 승리를 손쉽게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리버풀은 디펜딩 챔피언의 모습답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냈다. 남아 있는 선수들이 자기 몫을 충분히 함으로써 주전급 선수들의 공백을 최소화했고, 경기를 탄탄하고 노련하게 운영함으로써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마치, 모든 선수들이 이미 구축된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플레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리버풀은 이미 완성된 팀이었다.
올 시즌 라이브로 보지 못한 첫 리그 경기다. 본래 이 경기는 일요일 새벽의 경기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월요일 새벽으로 일정이 조정되었다. (추후에 알기로는 동시간대 경기 중계를 피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방송사의 꼼수였다고 한다)
아무리 14년 차 콥일지라도, 월요일 새벽 4시 경기는 부담이 크다. 결국 라이브를 포기하고 다음날 저녁에 재방송으로 풀경기를 봤다. 결과를 알고 보는 터라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지만 경기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경기력은 어땠는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리뷰를 쓰려면 풀경기를 봐야 한다는 신념도 한 몫했다)
리버풀은 공격 라인을 제외하고 모두 생소한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마팁 - 파비뉴 센터백 라인은 처음 보는 조합이었지만 제공권, 패스 차단, 인터셉트 등에서 우위를 보여주며 수비를 견고히 했다.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한 밀너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본래 포지션이 오른쪽 풀백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중앙 미드필더 또한 색다른 조합이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매끄러운 패스 전개로 공격진에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공격진은 뭐 두 말할 것도 없이 압박과 연계 플레이가 눈에 띌 정도로 강력했다. 반면에 레스터 시티는 3-4-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수비할 때는 5-4-1, 공격 전환 시에는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빠르게 공격 대열을 갖추며 마냥 내려앉아만 있지는 않는 플레이를 하였다.
전반 20분, 코너킥 상황에서 레스터 시티 수비수 조니 에반스가 자책골을 넣으며 리버풀이 먼저 앞서 나갔다. 백헤딩으로 넘기려던 것이 잘못 맞으면서 골문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1분 뒤, 로버트슨의 크로스를 받은 피르미누가 공을 골대 안으로 집어넣었지만 골키퍼 차징 파울로 취소되었다.
전반 40분, 추가골이 터졌다. 로버트슨이 알브라이튼을 제치고 올린 환상적인 궤적의 얼리 크로스를 쇄도하던 조타가 헤더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 골은 무려 30번의 패스를 주고받은 후 터진 골이라고 한다. 또한, 조타는 홈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리버풀 역사상 최초로 홈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린 선수가 됐다.
리버풀 공격의 핵심은 측면이다. 로버트슨과 아놀드 두 풀백들이 측면 공격의 활로를 열어젖히고, 중앙 미드필더(헨더슨) 또는 윙포워드(살라)와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낸다.
오늘 경기에서는 아놀드-헨더슨이 결장하면서 오른쪽 측면 공격이 다소 부진했으나, 로버트슨과 마네가 왼쪽 측면을 지배하면서 오른쪽 측면 공격의 부진을 상쇄시켰다. 특히, 마네와 포파나(레스터 오른쪽 풀백)의 대결은 거의 뭐 부숴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마네의 압도적인 완승이었다.
후반전이 시작한 지 5분 만에 나비 케이타가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전반전에 번뜩이는 플레이로 기대를 심어주었건만, 역시나 고질적인 부상 앞에 또 무릎을 꿇었다. 이쯤 되면 등번호 8번이 정말 무색할 정도다.
케이타를 대신해서 네코 윌리엄스가 들어왔고, 밀너가 풀백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위치가 변경되었다. 밀너는 중원에서 상대 미드필더 메디슨마저 무력화시키며 측면, 중앙을 가리지 않는 만능 멀티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여러 선수들이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가출형 공격수 피르미누다. 피르미누는 56분과 76분에 연이어 골대를 맞추며 오늘도 득점에 실패하나 싶었으나, 85분경, 밀너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2전 3기 끝에 득점에 성공했다. 사실 골보다는 76분경에 나온 골라인 판독기 장면이 압권이었는데 거의 무슨 종이 한 장 차이로 득점이 되지 않았다.
3-0으로 점수차를 벌려놓은 리버풀은 남은 시간 별 무리 없이 플레이하며 경기를 끝마쳤다. 승점 3점을 얻은 리버풀은 선두 토트넘과 승점 타이를 이루었지만, 골득실이 밀려 2위에 랭크되었다.
홈 64경기 무패. 리버풀은 또 한 번 구단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2017년 4월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홈에서 패배한 이후 안필드에서 패배가 없다. 64경기 동안 53승11무를 기록했으며, 169골을 넣고 42실점을 기록했다. 무득점 무승부는 5차례에 불과하며, 클린시트 경기는 34경기다.
기록이 증명해주는 바와 같이 리버풀은 강하다. 매년 강해지고 있으며, 매년 성장하고 있다. 스쿼드 뎁스도 두꺼워지고 있고,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마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여전히 일정은 타이트하고 부상 같은 마이너스 변수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리버풀이 이 모든 것을 충분히 극복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감히 낙관한다.
리버풀은 원래 위기에 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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