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자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법
근대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세 시대 사람들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신을 믿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일은 정당화되었으며, 사회는 신 중심 세계관으로 통제되었다. 그들에게 신은 곧 진리였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신으로 귀결되는 사회에 반기를 들고 가장 확실한 진리를 증명할 때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데카르트는 기존의 세계관에 대해 의심하며 그 정당성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이성 중심 사회로 한 시대의 세계관을 뒤집는 단초 역할을 하게 된다.
1930년, 시대의 세계관을 뒤집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르티니크 섬 출신의 유색인 ‘프란츠 파농’이다. 파농은 자신이 집필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작동하고 있는 식민주의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이에 대하여 고발한다. 그리고 식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마르티니크 섬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스 백인들의 식민화 전략이 ‘인종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지배자 백인은 피지배자 흑인에게 백인 우월주의 프레임과 세계관을 그려준다. 흑인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프레임과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흑인의 세계관에는 '백인 우월주의'가 남게 된다.
백인의 세계관 안에 갇힌 흑인들은 백인처럼 살고자 한다. 백인의 언어, 백인의 문화, 백인의 가치를 습득하고 백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백인답지 못한 삶은 열등한 삶이며, 백인다운 삶이야말로 우월한 삶이라는 심리기제가 형성된다. 그 심리기제를 통하여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인종주의를 재생산하며, 그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소외를 통한 소외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백인의 세계관 속에서 흑인은 열등한 존재다. 오직 백인만 우월하다. 따라서, 흑인은 흑인이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은 언어 체계에서 나타난다. 마르티니크인에게 프랑스어는 백인의 증표이다.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록 그들은 백인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대해 경탄을 표한다. 그것이 우월한 백인이 되는 길이고 열등한 흑인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재된 열등 콤플렉스는 사랑의 관계에서도 작용한다. 흑인은 백인을 만나기 원한다. 그들은 백인을 만남으로써 자신이 백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백인으로서 인정받는 길은 백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은 또한 백인과 결혼하는 것이 피지배자들을 지배하는 인종과 완전히 동등해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열등 콤플렉스로부터 비롯된 보상심리와 우월감 증명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백인의 세계관 속에서 흑인은 야만적이고 저급한 존재로 규정된다. 백인은 흑인을 자신의 열등감, 공포, 죄책감 따위를 해소하는 매개물로 사용한다. 그들은 흑인에게 흑인 공포증, 야만인 이미지, 성적인 이미지 같은 특정 이미지를 고착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수동성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이미지들이 결합된 흑인은 스스로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백인을 이상화하게 되는 괴리 속에서 정신 병리를 갖게 된다.
파농은 흑인들이 백인이 되고자 하는 것, 백인을 만나고자 하는 것, 열등감을 느끼고 정신 병리를 가지는 것 모두가 개인적 산물이 아닌 문화·구조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백인 우월주의 세계관을 흑인의 사회 구조 속에 – 또는 백인 사회 구조 속에 – 주입하고 교육함으로써 그들을 세뇌시키고 식민주의 심리기제를 내재화시킴으로써 자신이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배자들이 문화화하고 구조화한 세계관 속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흑인들은 어떻게 해야 백인우월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흑인들은 백인우월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저항 의식을 가지고 투쟁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차별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인의 세계관에 동화되기를 원하지 않는 흑인들은 '네그리티드 운동'이라는 격렬한 투쟁을 통해 저항한다.
그러나, 파농은 동화와 투쟁 모두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차용하여 정(동화)도 아니고 반(투쟁)도 아닌 '합'이라는 다른 모습의 저항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모습을 서두에서 언급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의심하며 질문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의심하며 질문하는 것)은 파농이 꿈꾸고자 했던 자기 존재의 실현이자 이상적인 세상을 실현시키는 방법이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에 의심하며 질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배자의 세계관과 식민주의 내재화를 깨뜨리는 것이 아닐까. 책의 말미에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던 파농의 울림은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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