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리뷰
2020.12.28
9승 4무 1패 vs 1승 4무 9패
데칼코나미처럼 승무패가 대칭적인 두 팀이 만났다. 기록만 놓고 보면 객관전인 전력 차를 비교할 필요도 없을 만큼 결과가 뻔히 보이는 경기였다. 게다가 장소는 원정팀들의 무덤 '안필드'. 14년 차 콥인 나 역시도 2-0 혹은 3-0의 승리를 예견했다.
리버풀 입장에서는 추격팀과의 승점 차이를 벌리며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 날 레스터 시티(2위)와 맨유(3위)가 비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WBA에 새로 부임한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리버풀에게 승점 3점을 헌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 전 인터뷰의 말대로 그는 안필드 원정에서 보너스를 얻고 돌아갔다. 새벽을 지새우며 끝끝내 역전골을 기다렸던 나에겐 보너스를 압수당하는 것 같았다.
리버풀은 현시점 베스트 일레븐으로 나섰다. 딱히 소개할 것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는 라인업이었다. WBA는 4-5-1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온전히 수비에 치중하겠다는 전략이 뻔히 보이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WBA는 들고 나온 포메이션과 달리 실제 경기 운영은 4-6-0으로 했다. 전방에 공격수 한 명 없이 전원이 두 줄 수비에 가담하며 수비를 극대화했다.
전반 11분, 사디오 마네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리버풀 수비수들이 패스 줄기를 찾기 위해 후방에서 볼을 돌리며 간을 보다가 상대 수비 라인에 균열이 생긴 틈으로 롱패스 뿌렸다. 균열 사이로 헤집고 들어간 마네가 가슴 트래핑으로 볼을 받았고,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골을 뽑아냈다.
리버풀의 공세는 계속됐다. 리버풀은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WBA 수비를 혼란시켰다. 쉴 새 없는 포지션 스위칭으로 박스 안에 누가 들어갈지 모르도록 상대를 교란하며 기회를 만들어갔다. 헨더슨의 킥의 퀄리티가 살아난 것도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포지션이 수비에 가담하는 WBA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 앞에서 리버풀은 결국 한 골을 넣는데 그치며 1-0으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후반전에 들어서야 축구다운 축구가 시작됐다. 전반 내내 수비만 하던 WBA가 후반이 되자 한 걸음 올라서며 공격의 비중을 높였다.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전반전과 후반전의 경기 양상을 다르게 가져가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데 오늘도 그랬다.
WBA는 탄탄한 지역 수비로 리버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빠른 커버링으로 압박을 가했다. 공격 시에는 원톱 공격수 로빈슨을 활용하여 세컨드 볼 선점을 통한 카운터 어택을 시도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역습 과정에서 유효슈팅과 오프사이드를 만들어 내며 공격 빈도를 점점 높여갔다. 반면에, 리버풀은 좀처럼 WBA의 밀집 수비를 공략하지 못하며 찬스를 만들어 내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후반 57분, 리버풀에 악재가 찾아왔다. 클리어링을 하던 마팁이 부상으로 쓰러지며 리스 윌리엄스로 교체되었다. 이로써 리버풀은 또다시 전문 센터백 없이 경기 일정을 치르게 되었다. 이래도 1월에 센터백 영입이 필요 없을까..?
WBA는 연이은 교체로 공격의 옵션을 다양화했다. 후반 70분, 발이 느린 리스 윌리엄스를 공략하던 그랜트가 기어코 일대일 찬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알리송 골키퍼의 선방으로 리버풀은 위기를 넘겼다. 경기가 이러한 흐름으로 진행되어 가는 도중 후반 82분, WBA가 끝내 동점골을 터뜨렸다. 시발점은 커티스 존스의 무리한 드리블에 이은 패스미스였다. 이 패스미스가 코너킥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흘러나온 볼을 소이어스의 크로스를 아자이가 헤딩하며 공이 골대를 맞으며 골문으로 들어갔다.
경기가 막바지로 흘러가자 공수 간격이 벌어지면서 양 팀이 바빠졌다. 후반 44분, 피르미누가 오프사이드를 뚫으며 결정적인 헤딩 슈팅을 날렸지만 존스톤 골키퍼의 선방으로 추가 득점에 실패했다. 결국 경기는 1-1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It does feel like a defeat
위르겐 클롭 감독은 '패한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경기를 평했다. 경기를 지배하고 볼을 점유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좌절감이 패배와 다름없이 느껴진 것이다. *고도리에게 **고도리를 당한 느낌은 이런 것일까
유달리 안필드에서 강했던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오늘도 안필드에서 패하지 않으며 안필드 무패행진을 4경기(1승 3무)로 늘렸다. 팀의 상성 관계인지, 단순히 운인 건지, 리버풀 상대로 지지 않는 축구를 몇 년째 보여주는 앨러다이스 감독의 지략이 놀랍기만 하다.
연말 박싱데이를 맞이하는 시점, 부상자들의 복귀가 절실하다. 특히, ***교수님의 강의가 너무 그립다.
* 고도리 : WBA의 한국 버전 별칭. 엠블럼 안에 새가 있어서 붙여졌다.
** 고도리 : 화투 용어
*** 교수님의 강의 : 티아고 알칸타라의 플레이를 뜻한다.
#해외축구 #리뷰 #리버풀
#SUN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