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강의에서 프랑스 사회가 말하는 중산층의 조건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프랑스에서 중산층이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한 가지 있고,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하나 있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하나가 있으며,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회에서 중산층의 조건을 말하라고 하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이 자산의 규모와 월 소득, 아파트 평수나 고가의 자동차 보유 현황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실제 리서치에서도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가 지나치게 물질적인 논리에 젖어 있다는 것의 반증이자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양적 위주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나 역시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길러지면서 물질만능주의를 체험적으로 습득하게 되었고, 지나온 삶의 양상들 대부분이 시장 논리에 의거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브 앤 테이크 논리다. 기브 앤 테이크 논리는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법칙이자 사회생활의 기본이지만, 이 논리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언가 계산적이고 기회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한 마디로, 기브 앤 테이크 논리는 삶을 메마르게 만든다.
나는 메말라 가는 나의 삶에 단비를 내려주고 싶었다. 기브 앤 테이크 논리가 일상인 삶을 타파하고, 기브만 있고 테이크는 없는 선행 논리를 - 프랑스 사회의 중산층의 조건을 - 삶에 적용하고 싶었다. 마침 선행을 꾸준히 실천하는 연예인 '션'의 인스타그램에서 '션과 함께하는 사랑의 연탄나눔활동'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곧바로 신청해 참가하게 되었다.
찬바람이 잠든 피부를 깨워주는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며 삶을 반추해보았다. '내가 봉사활동 시간 같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직이나 단체의 권유가 아닌 순전히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나?' 아마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아, 그동안 얼마나 자본주의적 인간처럼 살아왔는가) 자발적 봉사활동에 대한 첫 마음 덕분일까? 나는 날씨 어플에 쓰여 있는 영하 10도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산뜻한 기분으로 집합 장소까지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오늘의 연탄 봉사활동 장소는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이었다. 이곳은 청계천 판자촌에 살던 주민들이 정부의 도심 개발로 인해 강제 이주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가뜩이나 마을이 언덕 위에 지어져서 올라가기가 힘든데 도시가스마저 나오지 않아 겨울 내내 연탄을 때면서 지낸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을 듣고 나니 내가 사는 삶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대한민국 온도 1도 올리기'라는 슬로건으로 사랑의 연탄나눔활동을 하고 있는 '션'은 어느덧 본 활동이 127번째 활동이라고 한다. 단 한 번의 봉사활동 실천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 시대 속에서 127번씩이나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 그의 삶이 정말 값지게 느껴졌다. 그것이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도전이 되었다.
연탄은 총 2250장이었다. 봉사활동 멤버들은 이곳저곳 골목길을 드나들며 약 15가구에게 150장씩 나누어드렸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높이는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힘을 들여가며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날랐다. 각기 다른 삶의 배경들과 모양, 색깔들을 가지고 이곳에 모였지만, 선행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대의식의 싹을 틔울 수 있게 된 묘한 순간이었다.
약 2시간 동안의 연탄나눔활동을 마치고 나니 찌든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늘상 내 일만 생각하고, 나의 삶만을 위해 지냈던 일상을 깨뜨리고 타인을 생각하고 타인의 삶을 위해 살아낸 오늘의 일상이 새롭게 다가왔다. 받는 거 없이 주는 삶이라는 논리는 직접 체험을 해야 습득할 수 있는 논리다. 체험하지 않으면 그저 관념 속에만 머무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행동으로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좋은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미덕을 실천하고 습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 동의한다. 도덕적 미덕, 즉 선행의 습득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시장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질적인 삶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그것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오면서 '인간은 공헌감을 느낄 때 자기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는 아들러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남을 돕기 위해 지어진 존재, 타인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지어진 존재, 그것이 인간 존재의 이유이며, 우리가 삶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가한다는 프랑스의 중산층처럼, 나 역시도 오늘과 같은 일상과 선행 논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 본 활동은 질본부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켰으며, 봉사활동은 사적인 모임에 해당하지 않아 49인 이하의 모임까지 가능하다는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