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리뷰
2021.03.07
미루다 미루다 이제야 썼다.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린 지 무려 4일이나 지나고서야 말이다. 심지어 주중 챔피언스리그 경기마저 끝난 후에 썼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본 경기 리뷰를 얼마나 쓰기 싫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가지 않았다. 응원하는 팀이 패배한 경기의 리뷰를 써야 한다는 굴욕감과 비참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느덧 9번째 패배인지라 이제는 체념할 만하지 않을까 싶지만, 패배의 리뷰를 쓰는 건 언제나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가뜩이나 글쓰기 행위 자체도 창작의 고통을 수반하는데 말이다.
또 하나의 기록이 깨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을 갱신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승격팀 상대로 홈경기 10년 무패 기록이 깨졌고, 128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홈 5연패 기록을 넘어 홈 6연패 기록을 달성했다. 가히, 어메이징 & 센세이션 하다.
센터백 조합을 보자마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량, 경험치, 속도 등 모든 면에서(높은 신장을 제외하고) 가장 최하위에 있는 두 명의 센터백 '나다니엘 필립스'와 '리스 윌리엄스'가 선발로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버풀은 전 포지션에 걸쳐서 로테이션을 대거 돌렸는데 주중 챔스 경기를 대비하는 차원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과감하게 돌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경기 초반부터 풀럼은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하지만 완전히 공격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공격이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특히, 공격 시에는 지공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주로 안데르센의 롱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면서 루크먼 등 발 빠른 공격수들이 리버풀의 배후 공간을 공략하는 모습들을 자주 선보였다.
반면, 리버풀은 좀처럼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케이타와 샤키리가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네코 윌리엄스도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상대 공격수 루크먼에게 자주 뒷 공간을 내주며 여러 차례 찬스를 허용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결국 먼저 웃은 건 풀럼이었다. 전반 45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흘러나온 세컨드 볼을 살라가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자 뒤에서 압박하던 마리오 르미나가 빠르게 볼을 탈취해 곧장 중거리슛으로 연결시켰다. 이 공은 정확히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 네트를 흔들었다.
결국 전반전은 선제골을 넣은 풀럼이 앞서가며 마무리되었다.
선제 실점을 허용한 리버풀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전반전에 비해 풀럼의 미드필더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리버풀이 공격 주도권을 가져갔다. 특히, 조타의 움직임이 돋보였는데 전방위적으로 날렵한 움직임과 위협적인 침투를 보여주었다. 유효슈팅으로 연결되었던 발리슛도 상당히 임팩트 있었다.
공격을 시도하는 것에 비해 동점골을 뽑아낼 기미가 보이질 않자 클롭 감독은 일찍이 승부수를 띄웠다. 후반 60분, 바이날둠이 아웃되고 마네가 투입됐다. 조타와 살라가 상대 수비진을 중앙으로 유도하고, 측면에 있는 마네와 샤키리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며 기회를 만들어냈다.
후반 75분, 밀너와 네코 윌리엄스가 아웃되고 파비뉴와 아놀드가 투입되며 풀럼을 더욱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아레올라 골키퍼의 미친 선방, 풀럼 수비진의 엄청난 집중력 그리고 리버풀 공격진의 최악의 골 결정력이라는 삼단콤보가 합을 이루면서 리버풀은 또 한 번 무득점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경기는 전반전에 터진 선제골을 끝까지 지키며 버텨낸 풀럼이 1-0으로 승리하며 종료되었다.
리버풀은 최근 46일 동안 지난 5시즌을 합친 것보다 많은 홈경기 패배를 기록했다.
리버풀의 홈경기 6경기 연속 실점 또한 1부 리그 기준 첫 기록이다.
리버풀은 PL 출범 이후 홈경기 최다 슈팅 무득점 기록을 갱신했다. (PK 제외 115개)
옵타나 풋몹 등 여러 매체에서 최악의 기록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FSG 보드진의 무능? 줄부상이라는 악재? 선수들의 체력적 과부하? 무관중 경기? 감독의 역량적 한계? 그 무엇이 됐든, 이 사태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나마 오늘 경기에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파비뉴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투입된 후, 경기력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게 그냥 느낌인 건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그러한 건지는 다음 경기에서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경기에서 꼭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기를!
PS. UCL 경기 이후, 그냥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났다. 역시 선수는 자기 포지션에 맞게 뛰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