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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02. 2021

에세이의 존재 이유 <참 애썼다, 그걸로 되었다>

- 일상 속 인사이트


   서점가에 한창 에세이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가 있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단을 에세이 분야의 책들이 점령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의 광고 피드에는 온통 에세이 글귀들이 넘쳐나던 그런 시기.


   많은 이들이 에세이에 열광했다. 이에 따라 많은 출판사들도 에세이집을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에 맞춰 출판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색감과 심플하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담긴 책의 표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고, 무겁고 깊게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가볍고 짧은 글귀는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의 감성과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사실 책 제목은 어느 분야나 장르와 무관하게 소비자들로 하여금 책을 구매하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마케팅 기법을 가장 많이 쏟아붓는 영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마케팅에 현혹되어 책 제목만 보고 샀다가 책 자체에는 별 내용이 없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에세이 분야가 그렇다. 사실 막상 에세이집을 읽어보면 별 내용도 없고, 지식을 더할 만한 정보나 깊이 사유할 만한 통찰 역시 부족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저 자기 인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드러내거나, 사람들에게 뻔한 위로와 근거 없는 낙관과 달콤한 말들로 감성팔이나 하는 글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래서일까? 내게는 에세이집을 완독 하기가 인문학 서적을 완독 하는 것보다 어렵게만 느껴진다.


   물론 에세이 작가들의 삶과 노력을 결코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에세이도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깊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사유하는 풍조가 사라지고, 심사숙고함 없이 감성만을 자극하며 가벼운 텍스트만 줄기차게 뻗쳐 있는 책들이 서점가를 지배하는 현상과 세태에 반감을 느끼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에세이집을 사지 않는다. 일반 책을 구매할 때도 기본적으로 서점에 직접 가서 목차와 내용을 충분히 훑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3년 전, 평범치 않던 삶의 역경과 무게들을 짊어지고 갔던 시절, 뼈속까지 우울이 각인되고, 깊은 절망의 멜로디가 끊이지 않던 그 시절, 나는 우연히 SNS에서 어떤 책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 광고를 유심히 지켜보며 책 제목을 읽던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곧장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에세이집을 결코 사지 않는 내가 책의 내용도 보지 않고, 심지어 목차도 보지 않은 채, 그저 마음속 어딘가에서 물컹해진 감정의 결을 따라 제목만 보고 충동적으로 에세이집을 구매한 것이다.


   그 책의 제목은 이랬다.



참 애썼다 그걸로 되었다




   3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내 감정의 그릇 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책을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어쩌면 고단한 삶을 하루하루 견디며 버티고 있던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책의 제목을 빌려 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지지와 격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었던 그 갈망이 무의식 속에서 뛰쳐나와 나를 움직인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그 말 한마디를 구매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시기와 상관없이 지지와 격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의 말이 언제나 필요하다. 다정한 말에 꽃이 피듯이, 지지와 격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의 말은 우리가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고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게 추동하는 연료로서 우리의 삶과 마음속에 강력하게 피어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자주 듣고, 이런 말들을 자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스스로에게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라는 영역은 꼭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에세이 열풍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나의 마음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에세이가 베스트셀러 순위표를 지배하는 현상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존재로서 조용히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에세이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


   3년 전 샀던 이 책은 결국 몇 페이지 안 읽고 역시나 덮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지와 격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 책 값은 그걸로 되었다.



에세이의 존재 이유 <참 애썼다, 그걸로 되었..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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