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리뷰
2021.05.14
축구팬으로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일까? 역전승을 거둘 때? 결승전에서 승리할 때?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을 때? 많은 순간들이 있겠지만, 나는 라이벌 전에서 승리할 때가 가장 짜릿하게 느껴진다. 그것도 승리를 거둔 장소가 적진이라면 더더욱!
7년 만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승점 3점을 넘어 승점 6점의 값어치가 있는 승리였다. 일반적으로 라이벌 팀에게 승리를 하든, 원정에서 승리를 하든, 큰 점수 차이로 승리를 하든, 승리를 했을 때 획득하는 승점은 3점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승리의 가치가 3점이라는 수치만으로 동일하게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승리의 가치는 팀이 현재 처한 상황과 시즌의 맥락 속에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리버풀에게 오늘의 승리는 흔히 말하는 승점 6점의 가치가 있는 승리였다. 승점 3점을 획득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라이벌 전 승리라는 의미와 선수들에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향한 강렬한 열망과 동기부여까지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리마다 가치가 다른 이유다. 승리의 부가가치랄까나.
사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승리는 고사하고 최소 무승부만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두 팀의 시즌 흐름이나 전력상 리버풀이 패배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맨유는 이 경기를 위해 직전 경기에서 패배를 감수하고서라도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그만큼 맨유와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는 두 팀에게 모두 어떤 경우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라이벌 전이었다.
선발 라인업을 보고 내심 우려가 컸다. 발 빠른 공격수들이 즐비한 맨유를 상대로 발이 느린 센터백 두 명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파비뉴가 센터백으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파비뉴는 반드시 미드필더로 출전해야만 했다. 마네 대신 조타가 선발로 나온 공격진을 제외하곤 모든 포지션이 베스트 멤버로 출전하였다.
전반 초반부터 홈팀 맨유의 기세가 거셌다. 맨유는 높은 위치에서부터 압박을 가하며 리버풀의 빌드업을 방해했다. 이로 인해 리버풀은 여러 차례 패스미스를 범했고, 경기를 매끄럽게 이끌어가지 못했다. 결국 전반 9분,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골을 터뜨렸다. 완 비사카의 측면 패스를 받은 페르난데스가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슈팅을 했고, 이 볼은 필립스를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는 말이 절로 내뱉어졌다.
리버풀은 실점 이후 전열을 재정비하며 흐름을 잡아오려고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전반 중반 이후부터는 볼 점유율을 늘려가며 맨유를 괴롭혀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전반 25분에는 VAR 판독 결과 취소가 되긴 했지만,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등 점점 기세를 올렸다.
주도권을 쥔 리버풀은 전반 33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코너킥 이후 경합 상황에서 필립스가 땅볼 터닝 슈팅을 하자 골문 앞에 서 있던 디오고 조타가 공의 방향을 살짝 바꾸는 동작을 취했다. 맨유 골키퍼 헨더슨은 갑작스럽게 바뀐 공의 진로를 따라가지 못했고,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조타의 센스가 돋보이는 골이었다.
동점골 이후로 기세가 살아난 리버풀은 전반 추가시간에 기어코 역전골까지 성공했다. 우측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얻은 세트피스를 찬스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프리킥 키커 아놀드는 크로스를 깊게 올렸고, 깊은 위치에 있던 피르미누가 포그바와의 몸싸움에서 이기며 헤딩을 따냈다. 피르미누의 헤딩슛은 강력하게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스코어를 2-1로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경기 전개에 나는 얼떨떨한 기쁨을 취했고, 전반전은 리버풀이 2-1로 리드한 채 마무리되었다.
전반적 막판에 득점에 성공한 리버풀은 그 기세를 이어가기라도 한 듯이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또 한 골을 추가했다. 후반 46분, 맨유의 빌드업 실수를 낚아챈 아놀드가 과감하게 전진하며 슈팅을 하였으나, 헨더슨 골키퍼가 쳐냈다. 그러나 쇄도하던 피르미누가 흘러나온 볼을 가볍게 골문 안으로 집어넣으며 스코어를 3-1로 만들었다.
2골 차로 격차를 벌린 리버풀은 조타가 골대를 맞추는 등 계속해서 맨유를 압박했다. 그러자 맨유는 경기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프레드를 빼고 그린우드를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했다. 흐름을 되찾은 맨유는 후반 67분, 발이 느린 리버풀의 뒷 공간을 공략하며 래시포드가 만회골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맨유는 지속적으로 찬스를 만들어내며 리버풀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후반 72분, 조타와 바이날둠이 아웃되고 마네와 커티스 존스가 투입됐다. 교체 카드를 통해 중원에서의 기동력을 키운 리버풀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팽팽한 중원 싸움을 벌였다. 간혹 맨유에게 위협적인 찬스를 내주기도 하였으나, 수비수들이 혼신을 다해 커버하고 세이브하였다.
시간이 막바지로 흘러가자 맨유는 패배를 모면하기 위해 수비수 에릭 바이를 빼고 미드필더 마티치를 투입하며 공격에 무게를 가했다. 그러나 이 교체 카드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후반 89분, 파비뉴가 맨유의 전진 패스를 끊어냈고, 이를 받아낸 존스가 곧바로 전방의 살라를 향해 전진 패스를 하였다. 살라는 빠른 스피드로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냈고, 침착한 슈팅으로 득점을 뽑아냈다. 경기를 끝내는 결승골이자 리그 21호 골!
승리를 확신한 리버풀과 패배를 직감한 맨유는 더 이상의 공방전 없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경기는 리버풀의 4-2 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기대치도 않았던 맨유 원정에서 너무나도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향한 간절함과 열망이 리버풀 선수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특히, 결승골을 넣고 포효하던 살라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리버풀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챔피언스리그를 고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시즌 맨유와의 경기에서도 살라는 경기 막판 결승골을 넣으며 포효한 바가 있다.
이제 리버풀에게 남은 것은 승리뿐이다. 경우의 수를 따질 것도 없이 남은 3경기에서 전승을 하면 자력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능하다. 즉, 리버풀 스스로만 잘하면 문제없다는 것이다. 남은 일정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WBA, 번리, 크리스탈 팰리스 모두 특별한 동기부여가 없는 하위권 팀이기 때문이다.
다만, 변수는 리버풀이 올 시즌 하위권 팀을 상대로 유난히 약했다는 점이긴 하지만..
[20/21 EPL 35R] 맨유 vs 리버풀..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