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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PL 36R] WBA vs 리버풀

- 해외축구 리뷰

by Sun


2021.05.17

사진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새벽에 소리를 질렀다. 온몸엔 전율이 돋았고, TV에 비친 내 눈동자는 화면만큼이나 커졌다. 믿을 수 없는 이 현실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Wonderful, Fantastic, Dramatic, Sensational, Amazing, Shocking 등, 그 어떤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내 축구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전무후무한 골, 경기 종료 1분 전 골키퍼의 헤딩 역전골을 본 것이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골의 여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이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또 느꼈다. 그래도 가라앉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승점 3점이 가장 절실한 경기에서, 경기 종료 1분 전에, 필드 플레이어도 아닌 골키퍼가, 발도 아닌 헤딩으로, 다른 골도 아닌 역전골을 터뜨렸으니까 말이다.


이것이 내가 리버풀을 응원하는 이유다. 리버풀은 드라마도 이렇게 만들면 욕먹는 경기를 매 시즌마다 보여준다. FC바르셀로나전, 도르트문트전, AC밀란전, 노리치전, 아스톤 빌라전 등등, 내 기억 속에는 리버풀이 창출한 수많은 역전의 신화들이 즐비한다. 아마 대부분이 이러한 맛에, 이런 매력에 콥이 되었을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90분 이후에 결승골을 넣어 이긴 경기 1위 타이틀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ㅣ전반전


디오고 조타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남은 경기들은 마누라 라인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다. 맨유전 이후로 공격수들의 폼이 올라온 모습이 있다한들, 추가적인 공격 옵션을 잃은 것은 뼈 아픈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오잔 카박도 시즌 아웃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비 라인 역시 오늘 라인업대로 마지막까지 가게 될 상황이 된 것이다. (제발 부상 소식이 더는 없기를)


전반 초반부터 웨스트브롬위치알비온(이하 WBA)은 라인을 올리며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했다. 롭슨 카누와 마테우스 페레이라가 선봉장에 서서 발이 느린 리버풀의 수비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에 맞서 리버풀은 롱볼 빌드업으로 상대의 뒷 공간을 노리는 공격을 시도했지만 생각보다 잘 먹히지 않았다.


전반 15분, WBA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중원에서 공중볼 경합 이후 떨어진 세컨드 볼을 리스 윌리엄스가 차지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세컨드 볼은 페레이라의 몫이 되었고, 페레이라는 리스 윌리엄스가 나온 뒷 공간을 향해 전진 패스를 넣어주었다. 전방에 있던 롭슨 카누는 이 공간을 제대로 파고들며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고,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WBA는 득점 이후, 라인을 내리며 수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버풀은 커티스 존스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쓰리톱 중 두 명이 중앙으로 좁혀졌고, 이러한 위치 조정은 짧은 패스를 통한 중앙 지향적인 공격 플레이가 수월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이후, 리듬을 탄 리버풀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시도했지만, WBA의 수비 집중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전반 32분, 리버풀이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중원 지역에서 주심의 시야 방해로 얻은 볼을 파비뉴가 곧바로 전개했고, 이 볼을 받은 마네가 상대 아크 서클에서 살라에게 가까스로 패스했다. 살라는 지체 없이 논스톱 왼발 슈팅을 날렸고, 이 볼은 골대를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심의 드롭볼 상황이 애매하긴 했으나, 어찌됐든 살라의 시즌 22호 골!


전반 막판에 필립스가 저돌적인 플레이로 인해 뒷 공간을 노출하며 실점을 내줄 위기에 처할 뻔했으나, 아놀드의 빠른 커버로 모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1-1로 마무리되었다.


사진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ㅣ후반전


WBA는 전반 초반과 마찬가지로 후반 초반에도 강하게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이후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취하며 리버풀의 뒷 공간을 호시탐탐 노렸다. 반면 리버풀은 파비뉴까지 공격에 가담시키며 역전골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전반전에 센터백 라인이 뒷 공간을 자주 노출하면서 수비가 불안한 요소들을 보여주었지만, 수비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반 58분, 커티스 존스가 아웃되고 샤키리가 투입되었다. 날카로운 킥으로 공격의 질을 높이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교체는 악수가 되었다. 샤키리는 기본기부터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WBA는 역습에서의 날카로움은 떨어졌지만, 코너킥을 얻어내는 등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역습 기회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결국 후반 70분, 코너킥에서 WBA의 캡틴 바틀리가 골을 터뜨렸다. 이번에도 공중볼 경합에 이은 세컨드 볼을 놓친 것이 화근이었다. 공중볼 경합 이후 골문으로 향하는 세컨드 볼을 바틀리가 건드리며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VAR 판독 이후, 상대 수비수 맷 필립스가 알리송 골키퍼의 시야를 방해한 것으로 인정되어 오프사이드 선언이 되었다. 리버풀로서는 천만다행인 순간이었다.

리버풀은 70분 이후로 공격에 많은 힘을 실었다. 그러나 WBA 수비는 상당히 견고하였다. 특히, 캡틴 바틀리는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며 골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실상 경기가 끝났다고 보는 후반 94분, 기적이 일어났다. 리버풀이 마지막 공격 찬스(코너킥)를 얻었고, 코너킥에 가담한 알리송 골키퍼가 정확한 헤딩슛으로 상대의 골네트를 뒤흔든 것이다. 몇 번을 돌려봐도 너무 완벽했던 헤딩슛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마크를 하지 않은 것이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결국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한 리버풀은 끝까지 한 골 차 리드를 지키며 경기를 2-1로 마무리지었다.


사진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올 시즌 베스트 경기, 베스트 골이 아닌가 싶다. 골을 막음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골키퍼가 골을 넣음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인가. 이 경기는 정말이지 두고두고 회자될 경기이자 순간인 것 같다. 리버풀의 팬으로서 이 경기를 라이브로 본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알리송 골키퍼의 모습이 더욱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알리송 골키퍼의 시즌은 꽤나 다사다난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다수의 경기에 결장했으며, 중반에는 아버지가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심지어 코로나 19로 인해 장례식에도 참가하지도 못하며 홀로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멘탈에도 영향을 끼쳐 잦은 실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픔을 딛고 일어선 끝에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축구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다시는 행할 수 없고 다시는 볼 수 없을만한 그런 순간을 말이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순히 극적인 승리라는 승패의 여부를 떠나서 한 선수의 인생 스토리가 담겨 있는 휴머니즘 드라마 말이다. 그래서 스포츠를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획득했으면 좋겠다. 힘든 시련을 이겨낸 알리송을 위해서라도, 하늘에서 알리송의 결승골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 알리송 골키퍼의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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