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ccer Report
2020년은 감옥 같은 한 해였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박탈당한 채 집에만 있었으니 말이다. 국가대표 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프로축구 경기들을 강제 집관하였다. 숱한 명경기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그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현실이 스포츠의 묘미를 희석시키는 것 같아 참으로 야속한 한 해였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축구판을 뒤흔들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즌 중단과 일정 재조정은 다반사였고, 코로나 확산세에 따라 무관중 경기와 부분 유관중 경기가 오가며 팬들의 발걸음을 들었다 놨다 하였다. 가장 발걸음이 바빴던 사람들은 구단 프런트 직원들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떻게든 팬들과 스킨십을 하며 소통하고자 비대면을 활용한 다양하고 참신한 콘텐츠들을 바삐 양산해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구FC의 '집관 티켓'이었다. 경기장을 방문하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구단이 티켓을 집으로 배송시켜주는 마케팅이었는데, 창의적인 굿즈 판매 전략으로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만회하고자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구단 자체 제작 다큐멘터리나 선수들끼리 K리그 랜선 토너먼트 같은 피파온라인 대회를 펼치는 등, K리그 개막을 향한 기대감이 식지 않게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직관할 때 참다운 맛을 느낄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팬들은 그런 맛을 느끼기 위해 경기장을 방문한다. 선수들과 팬들이 경기장 안과 밖에서 함께 호흡하며 자아투영을 통해 동질감이라는 본질을 꿰뚫을 때, 비로소 직관의 의미와 가치가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이 홈팀이며, 응원팀에 따라 승패를 표시)
1. 성남FC vs FC서울 (1-2 패)
/ K리그 / 탄필드
2. 성남FC vs 부산 아이파크 (1-1 무)
/ K리그 / 탄필드
3. FC안양 vs 서울이랜드FC (1-1 무)
/ K리그 / 아워네이션
4. FC안양 vs 수원FC (1-2 패)
/ K리그 / 아워네이션
2020년 직관 기록 : 2무 2패
ㅣK리그2 24R <FC안양 vs 서울이랜드FC>
최고의 경기는 늘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최고의 경기는 수준 높은 경기력을 보여준 경기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 최고의 경기는 다득점 끝에 승리를 거둔 경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20시즌 나에게 최고의 경기는 수준 높은 경기력도, 다득점 승리 경기도 아니다. 그저 별 볼 일 없이 서울이랜드FC와 1-1 무승부로 끝난 FC안양의 홈경기다.
응? 왜냐고? 아 그건 여자친구와 함께 직관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뭐든 안 좋으리 :)
생각보다 강력했다. 한두 달 내로 종결될 것만 같았던 전염병은 산소탱크를 장착한 것마냥 지치지 않고 달렸고, 인간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버리는 것을 넘어 인류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어버렸다. 두 말할 것도 없다. 2020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언컨대 '코로나 19 바이러스'였다.
초유의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상 최초로 K리그 개막이 5월로 미뤄졌고, 리그 일정도 대폭 축소되었다. 코로나의 확산세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는가 하면, 선수들이 감염되어 경기가 취소되기도 하였다. 부분 유관중 경기가 진행될 때에도 육성 응원 금지, 좌석 3칸 이상 거리두기, 현장 티켓 발급 금지(무조건 예매를 통해 티켓 발급) 등 경기장 안팎으로 생전 보지 못했던 일들이 마구마구 생겨났다.
너무나도 당연시했던 것들을 잃어버리자 그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든지 축구를 보러 갈 수 있는 자유로움. 선수들의 숨소리와 잔디 냄새를 맡으며 90분 내내 오감을 자극하는 생생한 경험. 학교를 마치고 또는 직장을 마치고 경기장으로 한껏 달려가, 현장에서 티켓을 끊고, 캔맥주 하나 사들고, 원하는 좌석에 앉아서, 여유롭게 경기를 보던 때가 그립다.
아쉬움만 가득한 한 해였다. 우선 축구 직관 통계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낮은 직관 횟수를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4경기도 준수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가 다소 잠잠해져 부분 유관중으로 경기장이 개방되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또 내가 프로 직관러임을 감안한다면 4경기는 아쉬운 횟수다. 갈 수 있었을 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직관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한 몫했다. 다양한 색깔의 아시아 축구를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ACL조차 코로나로 인해 일정 변경은 물론이고 경기 장소, 대회 운영 방식까지 모조리 변경되면서 사실상 내년을 기약해야만 했다. 뭐 결과적으로 K리그 팀(울산 현대)이 우승을 해서 뿌듯하긴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러 갈 수 있는 수도권팀들이 부진했던 것이 아쉬움을 배가시켰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FC안양의 추락이었다. 지난 시즌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안양을 플레이오프까지 캐리했던 공격 삼각편대(조규성-팔라시오스-알렉스)가 모두 이적하면서 사실상 엑소더스가 발생했다. 에이스들의 이탈을 제대로 메꾸지 못한 안양은 시즌 내내 삐꺼덕거렸고, 결국 최종 성적 9위로 마감하며 지난 시즌 대비 6위나 하락한 성적을 거두었다. 개인적으로, 조규성 선수의 활약에 고무되어 2020시즌을 겨냥하고 유니폼을 샀는데 곧바로 떠나버려서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았다.
내년에는 이러한 아쉬움들을 털어낼 수 있을까? 적어도 2021시즌은 일상에서 축구가 배제되지 않는 시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