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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Sep 29. 2021

[서평] 에니어그램과 영적 성장 2부 / C. 휴어츠

- 더 깊은 자기 이해와 온전한 인격에 이르는 길


   이 책(에니어그램과 영적 성장)은 영적 성장으로 가는 나만의 독특한 길을 3단계에 걸쳐 안내한다. 첫 번째는 정체성 형성 단계다. 에니어그램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를 통해 자기 유형 및 정체성의 구조를 이해하는 자기 인식의 단계다. 에니어그램은 인간의 성격 구조 전형의 9가지 유형을 가르쳐준다.(31) 9가지 유형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며,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구조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조차 다르기 때문에 자기 유형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를 알고 이해해야 타인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시야와 품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해체의 단계다. ‘나’라고 생각했던 거짓 자아와 정체성을 해체하고 자기 유형의 격정과 고착으로부터 벗어나는 단계다. 각 유형에게는 자신의 기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근본 두려움이 있다. 이들은 이 근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특유의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격정과 고착으로 빠지게 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2번 유형은 돕는 자(Helper)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번 유형의 사람들은 자비롭고 너그러우며,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를 먼저 챙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라는 근본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만약 이들이 이 두려움에 중독되어 버리면 어떻게든 사랑받기 위해서 일방적인 자기희생도 불사르는 격정(2번에게는 자만)과 타인을 조종해서라도 사랑을 얻어내려 하는 고착(2번에게는 아첨)에 빠져버리게 된다. 따라서, 2번은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사랑받도록 스스로를 허용하는 미덕(2번에게는 겸손)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132)

  

   마지막은 복원의 단계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재정립하도록 도와줄 표지판을 발견하는 단계다. 이것은 관상 영성과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신의 유형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까지 나아간다.(212) 저자(크리스토퍼 휴어츠)는 ‘자기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보고 관계 맺는 방식의 길이다’라고 말하며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도구로 ‘관상 영성’을 제안한다. 관상 영성의 실천이야말로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자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길이라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관상 영성의 개념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심지어 한국 교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조명받고 있는 개념이다. 관상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의 발굴과 수도원 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그 예이다. 침묵 가운데 온전한 자아의 통합을 발견하는 관상 영성은 진정한 자아로 향하는 집으로의 여정으로 초대를 받는다.(180)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듣기 위해 가슴을 여는 준비를 갖춘다. 오늘날처럼 온갖 말이 쏟아지고 다양한 언어가 상존하는 시대 속에서 침묵을 통해 교감을 형성하는 새로운 경건 생활(관상 영성)을 받아들일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관상 영성의 실천에는 기도 자세와 기도 의도가 있다. 기도 자세에는 ‘고독, 침묵, 멈춤’이, 기도 의도에는 ‘동의, 참여, 쉼이 있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유형들은 자기 유형에 맞는 기도 자세와 기도 의도가 존재하고, 각자의 관상 영성 실천에 몰두할 때 영혼이 성장하고 미덕이 꽃을 피우며 진정한 자아가 드러난다. 관상 영성의 실천은 우리의 본질이 드러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을 밝혀주어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열어준다.(201)


   정리해보면, 거짓 자아의 속삭임(각 유형의 격정과 고착으로의 중독)은 진정한 자아(격정과 고착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사고와 미덕을 실천하는 것)로의 연결을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들은 우리 정체성에 대한 거짓 자아의 속삭임을 해결해 준다. 에니어그램으로 인한 자기 인식은 관상 실천과 짝을 이루어, 이런 확신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도와준다.(207)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듣기 위해 필요한 훈련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날마다 죽음을 연습해야 하는 일이다. 생명(거짓 자아)은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싸우기 때문에 새생명(진정한 자아)을 얻기 위해선 죽음을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 부인을 하는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본래의 자아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거짓 자아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격정과 고착에 중독되지 않으며, 기도 자세와 기도 의도에 맞는 관상 영성의 실천을 통해 각 유형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고와 미덕을 실천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사진 출처 - IVP

           

자신의 진정한 모습, 즉 좋은 면과 나쁜 면과 추한 모습까지도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은혜의 선물이다. (119)


   나는 가슴 중심의 3번 유형이다. 3번은 효율성을 무기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사람들로부터 매력을 끄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형이다. 3번의 성공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모습은 타인들로 하여금 동기부여와 존경을 이끌어내고, 카멜레온 같은 적응력은 어디에서든 의욕적이고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내가 3번인 것이 싫었다. 3번은 기회주의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3번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타인을 도구와 수단으로 삼는다. 또한,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늘 화려하고 멋진 가면을 쓰고 다닌다. 절대로 실패한 이미지를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행동 양상들을 보이는 3번들 또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본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3번의 고착(중독)이자 격정이다. 3번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가슴에는 기만이라는 갑옷을 머리에는 허영이라는 감투를 쓴다. 실패한 이미지와 추한 모습을 스스로에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어쩌면 그것이 진실된 자기 모습일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내가 그동안 3번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도 보잘 것 없고 별 볼 일 없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사람들에게 최고의 모습만, 이상적인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스스로를 기만했던 것이다.


   그래서 3번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자신을 다른 유형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3번은 진리와 진실성을 반영한다. 본질적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132) 그럼에도 본질과 분리된 채 사랑을 갈구하며 인정받고 존중받고 가치 있으려고 끊임없이 성취의 세계를 헤맨다. 때론 이런 3번의 모습이 측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애쓰는가. 언제나 그 답은 사람들(관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에니어그램은 나에게 더 이상 자기 정체성에 대한 거짓말에 속지 말고, 사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극복하라고 말한다. 실패해도 괜찮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무언가를 증명하고 성취할 필요 없다. 훌륭한 모습으로 보일 필요 없다. 3번의 정체성은 그러한 것들에 있지 않다. 조금 못나도 어떤가. 실패해도 어떤가. ‘나’라는 존재는 타인(관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데. 성공한 이미지를 붙들려는 거짓 자아를 깨부수고 자기 내면의 모습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3번 만의 특성(ex. 효율성)을 자기중심이 아닌 자기희생을 위해 사용하라.



3번의 전통적 미덕은 진심 어린 다정함, 진정한 관심, 참된 진실함에 나타나는 진정성이다. 중심 잡힌 3번은 이들이 성취하거나 성취하려는 모든 일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135)


   허영과 기만을 쫓아가며 사는 3번이 사실은 가장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는 유형이라는  문구가 내게 따뜻한 위로를 가져다준다. 마치 3번인 나를 향해 하나님이 들려주는 은혜의 말씀처럼 말이다. 이것에니어그램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성장과 내면의 자유다. 이렇게  깊은 자기 이해를 통해 나의 영혼과 인격이 온전함에 이르는 (성화) 날마다 걸어 나갈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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