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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Dec 28. 2021

인생을 조금 더 풍성하게 사는 방법

- 일상 속 인사이트


   나는 싫어하는 게 참 많았다. 어렸을 때는 쓴 맛이 나는 음식을 싫어했고, 수영을 싫어했다(물이 무서웠다). 학창 시절에는 과학을 싫어했고(과학을 싫어해서 문과에 갔다), A라는 가수와 B라는 가수를 싫어했으며(당연히 그들의 음악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 영화를 싫어했고(겉멋과 사대주의에 빠져있을 때였다), 야구를 싫어했다(축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야구는 축구의 적(敵)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종종 불만을 표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싫어하는 대상이 주로 사물(콘텐츠)이 아닌 사람으로 향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오면서 그런 경향이 심해졌다. 이런 사람을 싫어했고, 저런 사람을 싫어했다. 내게 비호의적인 사람을 싫어했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을 싫어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싫어했고, 내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람을 싫어했으며, 나와 이념이 반대인 사람을 싫어했다.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을 싫어하고 싫어했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고 싫어하다 보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내게 주어진 기억도, 추억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무언가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싫어하는 게 많을수록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고, 결국엔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학창 시절에 싫어했던 가수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노래가 참 좋았다. 당시에 싫어했던 감정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긴 했지만, 노래를 듣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감정의 잔재로 인해 더 많은 생각을 품으며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가수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이 이제서야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 곡 한 곡 듣다 보니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어느덧 풍성해졌고, 다채로운 음악적 감각으로 하여금 귀르가즘을 느끼게 해주었다.


   때때론 나와 반대의 이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싫어하는 사람의 글도 읽는다. 물론 마음 한켠에선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한사코 거부하지는 않는다. 한 번쯤은 경청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본다. 비록 그들의 이념에 완전히 동의할 순 없다 할지라도, 그들이 말하는 세계를 상상해봄으로써 삶을 입체적으로,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열린 사고를 통해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조금 더 풍성하게 살기 위해선 싫어하는 것을 줄여야 한다. 싫어하는 게 많아지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 싫어한다는 것은 그것을 거부한다는 의미고 내 삶에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고, 무한한 경험의 가능성과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결국 풍성하고 다채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게 된다.


   싫어하는 것을 줄여보자. 싫어하는 것과 화해하고 그것을 음미해보자. 누려보자. 즐겨보자. 어쩌면 인생을 살아오면서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과 풍성하고 다채로운 삶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을 좋아할 수는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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