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강 영화 속 철학 이야기: 마을의 삶
현대 사회에서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일까? 답은 '피로'다. 한때 독일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한병철 작가의 저서 <피로사회>는 현대 사회가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해 인간을 무한한 성과의 탑을 쌓게 하는 자기착취적 성과주체로 만든다고 서술한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인간을 끊임없이 피로하게 만들고, 더욱더 피로하게 만든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네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한 긍정, 성과, Yes We Can 같은 메시지가 아니다. 바쁘게 굴러가는 거대한 톱니바퀴로부터 벗어나 멈춤과 사색의 의미를 고찰하고, 그 속에서 쉼을 통해 위로와 치유와 회복을 누릴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BUT, HOW?)
역곡동 골목학교 <철학학교> 1강에서는 그 '어떻게'를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통하여 고찰한다. 이 영화는 우리의 삶의 근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근본은 뿌리다. 뿌리내린 곳은 곧 시작점과 출발점을 의미하며, 뿌리내리는 곳은 새롭게 시작하고 출발할 곳을 의미한다. 이처럼 리틀 포레스트는 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더 나아가 뿌리를 통한 힐링을 이야기한다. 뿌리를 통한 힐링, 그것은 무엇인가?
영화 속 주인공인 시골 소녀 혜원은 성인이 되자마자 호기롭게 도시로 나간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도시 생활에서의 만족감을 얻지 못하고 지친 심신과 피로만 가득히 담은 채 끝내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다시 이전처럼 농촌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밭을 갈고, 농작물을 키우고, 그걸로 밥을 지어 먹고, 함께 지냈던 마을 사람들과도 다시 교류를 시작한다. 그렇게 이전에 살았던 삶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사계절을 보낸다.
그러자 혜원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 지친 심신이 회복되고, 도시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된 것이다. 함께 지냈던 마을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마주했던 농촌의 풍경을 보고, 논과 밭을 가는 노동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음식들을 먹는 것, 즉 과거에 주인공이 행했던 삶의 기본 습관들과 삶의 형태들이, 익숙한 삶의 자락들과 일상이 도시로부터의 피로와 지침을 치유하고 회복시킨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농촌이라는 장소가 아니다. 귀농이나 슬로우라이프라는 삶의 방식도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뿌리내린 삶으로의 귀환이다. 혜원에게 뿌리내린 삶이란 가족과 마을 공동체와 함께 지냈던 익숙하고 편안했던 삶이다. 그 과거의 삶을 오늘 다시 재경험함으로써 자신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했던 정서를 느끼고, 자기답게 지낼 수 있는 삶의 방식과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뿌리를 통한 힐링인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나만의 작은 숲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막을 내린다. 이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곳으로의 - 뿌리내린 곳으로의 - 귀환을 넘어서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라는, 즉 새로운 뿌리를 내리라는 메시지다. 나만의 숲을 찾고 만드는 것. 그것은 뿌리내린 곳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이 뿌리내리고 열매는 맺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일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동성이 극대화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치유와 회복을 누릴 수 있는 뿌리를 찾고, 또 그럴 수 있는 뿌리를 만들어가야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삶의 뿌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뿌리를 내려야 할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2021 역곡동 골목학교 <철학학교> 1강 영..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