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강: 나의 공간과 글쓰기
1주일도 안 돼서 같은 공간을 또 방문했다. 세 번째 강의 역시 오프라인으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한번 가봤던 공간이어서 그런 것일까? 첫 방문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심리적으로 조금 더 편했고, 신체적으로 조금 더 수월했다. 아마도 나의 기억 속에 이미 흔적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방문한 공간은 같았으나, 함께 한 사람은 달랐다. 이번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갔다. 여자친구는 항상 나만의 공간을 꿈꾸며, 그런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었는데, 마침 오늘 강의 주제가 그런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주제라 설레는 마음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겼다. 게다가 역곡동 모퉁이돌 카페가 일반적인 카페가 아닌 2층짜리 단독주택의 카페라서 감성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 꽤나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았다.
카페에 입장하자마자 정겹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날 나의 흔적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 그런 것 같았다. 차를 한 잔씩 들고(모퉁이돌 카페에서는 매 강의 때마다 오프라인 참석자에게는 차를 한 잔씩 무료로 제공해준다.), 강의 장소인 2층에 도착하니 대면 참석자들이 여럿 보였다. 생각보다 꽤 많은 대면 참석자들이 있어 - 한번 와 봤음에도 불구하고 - 조금 어색한 느낌으로 자리에 주섬주섬 앉았다.
2021년 역곡동 골목학교 <철학학교>의 3번째 강의는 에라스무스의 이민희 강사님께서 '나의 공간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하셨다. 강의는 제목처럼 나의 공간 파트와 글쓰기 파트로 나눠서 진행되었는데, 나름 흥미로운 두 가지의 키워드를 조합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제목의 힘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강의에서는 글쓰기 파트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글쓰기는 사실 글을 써야 느는 것인데, 강의 시간에 직접 글을 쓰기엔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자신의 글을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누기엔 조금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쓰기 파트는 '글쓰기는 노동'이라는 강사님의 글쓰기 철학만을 나눈 채 넘어갔다. (사실상 글쓰기는 어그로였던 것이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나의 공간 파트다. 내가 서론부터 '공간'이라는 단어와 공간이 내게 주는 느낌들을 많이 서술했는데, 본 강의를 듣고 공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의 공간 파트에서는 공간 읽기라는 개념을 통해 공간 읽기란 무엇이고, 공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은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곳, 실존하는 곳이다. 나라는 존재는 3차원이라는 공간 안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며,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는 나의 감각, 경험, 기억, 가치판단, 관계 등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 때문에 공간은 '나'라는 고유한 존재를 식별할 수 있는 곳이 된다.
따라서 공간을 읽는다는 것은 곧 고유한 존재를 읽는다는 것이다. 고유한 존재의 이야기, 흔적, 궤적을 읽는다는 것이다. 마치 한 사람의 생이 담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그 고유한 존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간 삶의 맥락, 상황, 조건을 이해하고 읽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간 읽기는 객관성보다 주관성이 중요하다. 내 공간에 담긴 의미 있는 이야기는 오직 나로부터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은 곧 실존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이야기는 반드시 나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있다. 공간은 나만의 의미와 나만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고유한 곳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더해진 그 고유한 공간을 우리는 '장소'라고 부른다. 즉 산다는 것은 결국 장소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장소적인 존재다. 인간은 장소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으며, 장소에 담긴 고유한 의미와 경험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때때로 나의 이야기가, 나의 감정들이 선명하게 묻어 있는 장소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연인과 함께 갔던 카페라든가,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꼈던 곳이라든가, 의미 있는 경험을 했던 장소들 말이다. 그런 장소들은 왠지 모르게 애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장소애가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장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만의 장소, 내가 가지고 싶은 장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누구나 장소애를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 제공과 누구든 특정 장소로부터 배제되지 않는 환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이 시대에, 지나친 방역규제로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이번 강의는 꽤나 울림이 있는 강의가 아니었나 싶다.
2021 역곡동 골목학교 <철학학교> 3강 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