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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Jan 28. 2022

2021 역곡동 골목학교 <철학학교> #5

- 5강: 다양한 사랑의 얼굴들


   대망의 마지막 강의다. 벌써 다섯 번째 강의라니. 2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음이 새삼 실감이 난다. 갑자기 4강이 아닌 5강 이야기를 꺼내서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4강 <어른들을 위한 철학동화: 마을, 마음, 정치>는 필자의 개인 사유로 인해 수강하지 못했다. 혹여나 기대하신 분들에겐 양해 부탁드린다.


   마지막 강의는 유종의 미를 장식하기 위해 오프라인으로 신청했다. 장소는 동일하게 역곡동 모퉁이돌 카페. 어느덧 세 번째 방문이다. 그래서일까? 첫 번째 방문했을 때보다는 새로움이나 설렘, 호기심 같은 감정이 덜 느껴졌다. 아니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져 버렸고, 적응을 끝마쳐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은 같으나, 내용은 달랐다. 그래서 또 다른 새로움이 느껴졌다. 무료로 제공해 주는 차의 종류를 다르게 선택했고, 참석자들의 수가 달랐으며, (당연하겠지만) 강의의 내용도 달랐다. 그렇게 다름의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고, 펜과 다이어리를 꺼낸 채, 강의를 들을 준비를 하였다.



   2021년 골목학교 <철학학교> 5강은 임지연 강사님께서 '다양한 사랑의 얼굴들'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다양한 사랑의 얼굴들이라는 주제를 보니 오늘은 다양한 사랑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겠구나를 예상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오늘은 2강에서도 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근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랑론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랑은 일종의 탁월성이거나 탁월성을 수반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中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랑은 탁월성의 일종으로서의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은 친애(philia)라고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애나 우정의 감정 같은 게 아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친애)은 - 2강 행복론에서도 언급됐듯이 - 중용에 따른 올바른 품성 상태를 습관화했을 때 생기는 탁월성을 기초로 하는 사랑이다.


   탁월성을 기초로 하는 사랑은 상대방 자체의 좋음에 의해 성립된 사랑이다. 그 자체로서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좋음이란 곧 탁월성을 발휘하는 것이며, 탁월성은 지속적인 것이므로, 탁월성을 기초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 자체로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변함없이 서로에게 좋음을 선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탁월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예를 들면, 유익이나 즐거움(쾌락) 같이 우연적으로 속하는 것에 의해 성립하는 사랑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완전한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익이나 즐거움(쾌락)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상대방에게 주지 못하게 될 경우, 그들의 사랑도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적인 사랑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엘리트주의적인 면모가 보인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의 이론들이 하나같이 탁월성을 전제하고 있고, 탁월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자들은 행복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복도, 사랑도 중용에 따른 올바른 품성 상태의 습관화를 통해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너무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천점은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주인공은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사랑을 정념의 한 종류라고 보았다. 정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의 지각, 감각, 감정이다. 정념에는 경이,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 등 6가지의 기본 감정과 질투, 존경, 경멸, 수치 등 특수하게 파생되는 감정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만 알아볼 것이다.


   데카르트는 사랑이라는 용어와 종류가 대상에 따라 다양하다고 말한다. 즉 대상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용어와 종류가 각각 다르게 사용되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자신 이하로 평가할 때,
그 대상에는 단순한 애착을 가질 뿐이다.
대상을 자신과 동등하게 평가할 때,
그것은 우애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을 자신 이상을 평가할 때,
인간이 갖추고 있는 정념은 헌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데카르트 <정념론> 中



   마지막으로, 데카르트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위한 사랑은 자존감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즉 자기애와 이타심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최대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관대함(놀라움의 일종)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할 수 있음(자기애)은 곧 스스로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 말은 즉 타인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소리다. 따라서 그는 서로의 자유의지 존중을 위해, 공존을 위해, 전체의 선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사랑론 강의를 마쳤다. 사실 '사랑론'하면 언급할 학자들이 정말 많다. 롤랑 바르트, 알랭 바디우, 에리히 프롬, 알랭 드 보통 등등. 개인적으로 앞서 열거한 학자들의 개념과 이론들을 공부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 강의에는 언급되지 않아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강의가 이론 중심이라 그런지 좀 딱딱한 면도 있었기에, 머리를 많이 쓰면서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강의 후에 강사님과 또 주최 측 분과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꽤 유익했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소규모 대면 모임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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