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
오늘도 공부를 한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다. 나를 사랑하고, 타자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앎이 필요하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기 때문이다. 앎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앎의 분야가 다양해질수록, 내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들을 발견하고 탐구하게 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고 했다. 즉 사랑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관심은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상의 이야기를 듣고, 대상의 현실을 이해하고, 대상의 삶을 알아가는 것. 나는 이것이 사랑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은 대상의 개별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앎을 위한 여정 중에 있으며, 앎을 위한 장소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학교는 앎을 위한 장소다. 대학교를 흔히 지성의 요람,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학교는 앎을 공급하고, 앎을 실천하고,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변화가 사랑을 낳는다. 따라서 나에겐 - 어쩌면 우리에겐 - 학교가 필요하다. 단순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학교를 넘어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그런 학교 말이다. (그렇다고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학교가 이런 기능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정 나이 혹은 자격 요건을 갖추면 졸업을 해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말한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2021 역곡동 골목학교는 앎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장소로서의 전초적인 역할을 했다. <철학학교>와 <소통학교>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문학적 언어와 이야기들을 공급했고, 이를 통해 사유의 길을 터놓음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다양하고 조그마한 자극들을 톡톡히 주었다. 또한, 주관기관이 과거부터 다양한 인문 프로그램들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지속가능한 배움과 앎을 위한 장소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같았다.
본 프로그램 <철학학교>는 정규 프로그램을 위한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규 프로그램을 위한 예고편이었다는 셈인데, 예고편치고는 꽤나 획기적인 출발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가치를 잃지 않고 타자와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메시지가 전체 강의를 관통하며 마을, 뿌리, 행복, 공간, 타자, 사랑 등의 주제를 파생시킴으로써,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 삶이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멈춰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철학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교들도 생겼으면 좋겠다. 문학, 심리학, 과학, 신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여, 주어진 삶을 넓고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앎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또한, 특정 인물의 저서와 이론을 탐구하는 강좌나 하나의 주제만을 탐구하는 강좌도 시리즈 형식으로 열리면 흥미로울 것 같다.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인문학적 언어 공부를 통해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어서 유익했고, 이렇게 다시금 기록함으로써 강의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함이 느껴진다. 본업이 창업보육매니저인지라 창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는데, 이런 인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도 내게 어울리고 꽤나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언젠가는 인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